자가실험 두 번째 시리즈
내 삶은 내게만 오래 기억된다.
어디선가 봤던 글이었다. 삶은 내게만 오래 기억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정말 내가 내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줄까. 내가 위인전에 남을 만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아니니까. 결국 나는 내 자신을 가장 중요히 생각하고,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 나이와 시기에 따라 찾아오는 생각들을 기록하기로 시작했다.
내가 과거에서 현재로 내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떤 생각을 제일 아끼며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어떤 습관들을 과거에 버리고 왔는지. 나를 다시 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기기 위해, 나는 오늘 나 자신에 대한 얘기들을 써보려고 한다.
한창 시험 때문에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요즘이다. 미술 대학에 다니는 나는 시험 대신 과제 대체로 중간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동기들이랑 매일매일 밤을 지새우고, 화상통화를 하면서 스터디를 한다.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채로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며 통학을 하고, 날짜에 대한 감각 없이 당장 눈앞에 해야 할 것들을 처리하기에 급급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번아웃이 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 시기에 번아웃이 오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점점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막심한 불안감, 주변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들. 분명히 몸도 힘들고 마음도 고생하는데, 그만큼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것. 그런 생각들이 점점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
한때 나도 스스로를 채찍 하여 크게 힘들었던 적이 있다. 가벼운 비교는 나의 실력 향상에 탄력을 주지만, 그게 더 과해진다면 열등감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불안정한 청춘들이, 지금 이 시기를 온몸으로 기꺼이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꽃은 건조해도 아름답다’
언제부턴가 나의 신념이 된 문장이 있다. '꽃은 건조해도 아름답다'라는 말이었는데, 그 뒤로 내 인생에 들어와 평생을 함께하게 되었다. 나만의 해석으로 그 말을 어떤 위대한 명언보다도 더 뛰어난, 나만의 명언으로 만들었다.
꽃은 분명히 피고 진다. 이 말을 가슴속에 품고 살고 나서부터, 나는 내게 오는 모든 고난과 시련, 실패를 사랑하게 됐다. 어떤 문제에 온 몸을 떨면서 두려워하기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더 의연하게 헤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나를 삼킨 거친 파도에 의해 온 몸이 부서진 게 아니었다.
서퍼가 파도를 타지 않고 당장 눈앞의 파도를 보낼 때, 그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수면 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럼 물속에서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릴 들을 수 있다고. 천둥이 치고 태산이 흔들리는 것 같이 너무나도 무서운 소리가 난다고. 그것을 듣는 순간은 분명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렵겠지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다음 파도를 타기 위해 몸을 밀고 나간다. 오로지 그다음 파도만 바라본다. 이전에 들은 무서움은 상기하지 않는다.
휩쓸리지 않고 돌파한다는 것이다. 다음 파도를 타기 위해 앞으로 헤엄친 것뿐이었다. 결국, 내게는 이 모든 과정들이 결국 꽃이기에 아름답다는 말이었다.
‘사람은 울면서 세상에 왔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울음으로 시작한 세상. 웃음으로 서두를 시작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는 말도 확립된다. 인간은 애초부터 슬픔 속에서 피어났다는 것이었다. 늘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가 슬픔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탄생했고, 고통과 좌절이 있어 희망과 축복이 생겨난 게 아닐까. 지금 내 감정이 시간이 지나 점차 수그러들면 그에 상반되는 감정이 올라오니까.
인간으로 세상에 내려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 중에 그 어떤 것도 외면받아야 할 감정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강한 힘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고통과 울분, 회한이 바로 자신의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으로, 이 추하고 무서운 생을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이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발음해보며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와 저 자식 아직도 쓰고 있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며 징그럽게 계속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