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일기] 보물찾기 1탄. 햇살사냥꾼, 아뽀로

보물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이야기

by 웃는샘 이혜정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알람시계가 요란하게 울린다. 아뽀로는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살며시 뜬다. 오늘도 그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눈가에 잠기가 아직 남아 있지만, 아뽀로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옷을 갈아 입고 세수를 한다. 늘 하던 대로, 별생각 없이 로봇처럼 하게 되는 일들이다.

오늘 아침 식사는 걸러야 될 것 같았다. 어젯밤에 먹었던 구운 꽃눈빵이 소화가 안 되었는지 영 입맛이 없다. 여유 있게 소화시켜 가며 먹기에는 시간도 모자랐다. 대신 늦은 아침 식사로 챙겨 먹게 도시락을 준비해서 얼른 집을 나선다. 오늘의 도시락 메뉴는 구름 샌드위치 두 조각과 빗물 쥬스! 요리를 그리 잘하지 못하는 아뽀로에게 딱 맞는 메뉴이다.

일하러 가는 길은 좁고 한적한 오솔길이다. 아뽀로는 이 길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다.

‘10년 전쯤이었나? 꾀나 오래 되었군.’

이 길은 아뽀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로띠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선물이다. 오직 아뽀로를 위해 말이다.

바람을 맞은 얼굴이 차가워진다. 겨울이 오나보다고 생각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뽀로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되면 아뽀로는 조금 늦게 출근을 한다. 그리고 조금 빨리 퇴근을 한다. 일이 적어서 좋을 텐데도, 사실 아뽀로는 이 겨울을 제일 싫어한다.

“어이! 아뽀로! 일하러 가는 길인가봐.”

그 때, 오솔길 옆 소나무 아래에서 보일 듯 말 듯, 숨은 듯 안 숨은 듯한 두더지가 말을 건낸다. 사실 지금은 해가 뜨기 전이라 흙바닥 구멍에서 고개만 쑥 내민 채 바라보고 있는 두더지를 발견하는 것은 하늘 보고 글을 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뽀로는 그가 집짓기의 장인이며 수다쟁이인 두더지 캐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늘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 오니스 마을에서는 누가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냥 아는 일이었다.

“상쾌한 아침이야. 캐로!”

아뽀로는 아주 평범한 인사를 무뚝뚝하게 건냈다.

“아뽀로! 잘 지냈나? 난 밤새 집을 만드느라 허리가 아프네. 어이구…….”

캐로가 허리를 두드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얼마나 입을 씰룩거리며 말하는지 수염이 삐죽삐죽 섰을 정도이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일을 하면 안되지. 신경 좀 쓰게나. 평생 이렇게 일하려면 몸도 관리해야지. 레스또에게 가서 편히 쉴 수 있게 의자 좀 만들어 달라고 해. 나도 며칠 전에 사무실 의자를 바꿨는데, 훨씬 일하기 편해졌어.”

“아, 그래야 겠군. 레스또라면 나의 허리에 딱 맞는 의자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신경 써줘서 고맙군. 아뽀로. 아차! 자네, 내가 만든 땅속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나? 내가 만든 집에는 방 안에 또 다른 방이 있지. 그리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진흙을 좀 섞는데, 그 비율도 나만의 노하우가 있어. 비밀의 방이 있는 이 튼튼한 집이 요즘 가장 인기 있다네.”

“……. 캐로!”

아뽀로가 조심스레 캐로를 불렀다.

“그 비율은 말이야……. 사실 비밀이었네만……, 내가 특별히……자네에게는……”

“캐로!”

아뽀로가 이번에는 좀 단호하게 캐로의 말을 잘랐다.

“어? 왜?”

“사실 내가 말이야. 지금 바로 일하러 가지 않으면 지각이라네.”

“지각? 에잇, 좀 늦으면 어때? ”

“좀 늦으면 어떻냐구? 이보게, 햇살을 기다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 쉽게 말하는 거야?”

“햇살이 조금 일찍 뜨고, 아주 조금 늦게 뜬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너무 안타깝군. 그리 애태우지 말게나.”

“…….”

“그냥 가던 길이나 얼른 가라구. 허허. 말 걸어서 미안하군. 잘 가게. 우리의 햇살 사냥꾼!”

아뽀로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내뱉어버리는 캐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밤낮 캄캄한 곳에서만 지내는 너 같은 애가 햇살의 행복을 알기나 해? 으잇, 역시 캄캄이 캐로와는 대화가 안돼.’

로띠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오솔길 끝에는 커다란 콩나무가 있다. 이제 아뽀로는 그 나무 위로 올라간다.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가 바로 여기에도 있다. 다른 점은 콩나무 끝에 천국이 아닌, 짙은 초록 덩굴로 만들어진 커다란 주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이 아뽀로의 직장이기도 했다. 아뽀로는 힘든 내색 없이 콩나무 끝까지 올라간다. 한 계단 한 계단 튀어나온 줄기 계단을 밟아가며 한참을 올라가야 사무실에 닿을 수 있지만 아뽀로는 절대로 투덜대지 않는다. 그는 뭐든 부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뽀로의 일은 좀 특별하다. 그날의 햇살을 사냥하는 일이다. 햇살을 어떻게 사냥하냐고? 햇님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사무실 책상 앞, 레스또가 만들어 준, 솜사탕 방석이 매력인 그 의자에 앉아 퇴근 전까지 쉬지도 않고 편지를 쓴다. 물론 아뽀로 혼자서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겠는가? 이곳에는 아뽀로처럼 성실하고 착한 직원들이 무수히 많다. 그들은 거대한 덩굴 속 사무실 안에 듬성듬성 앉아 열심히 편지를 쓴다. 이들 중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쟁에 나가는 무사들처럼 그들은 총 대신 깃털 펜을 부여잡고 뭐가 그리 진지한지 웃거나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편지만 적고 있다. 아뽀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덩굴 사무실 앞에는 커다란 콩 우체통이 있었다. 햇님에게 쓰는 편지는 그대로 이 우체통에 전달된다. 과학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이제는 직접 우체통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3년 전만 해도 이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우체통으로 간 편지는 바로 햇님에게 전달된다. 그리고는 바로 답장이 온다. 햇님도 얼마나 부지런한지 보내기 무섭게 답장을 준다. 마치 요술 같다고 해야 하나? 암튼 이것은 아주 유능한 마법사도 해내지 못할 일들이다.


추워지면 햇님은 좀 멀리 이사를 간다. 그래서 지금처럼 호호 입김이 서리는 겨울이 되면 편지가 가고 답장이 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아! 그래서 아뽀로가 겨울을 그렇게도 싫어하나 보다.


To. 햇님에게

루피에게도 햇살이 가기를……

From 아뽀로


오늘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 편지의 답장만 받으면 아뽀로의 오늘 일은 마무리가 된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그 많던 직원들은 모두 퇴근해 버렸는지 쌀쌀한 분위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뽀로는 혼자 고개를 두 번 끄덕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으면 친구들이 떠난 걸 알아채지도 못하니?’

‘암튼……. 아뽀로, 오늘도 수고했다네.’ 라고 아뽀로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준다.

아뽀로는 이 일이 참 좋다. 춥거나 덥거나 사람들은 누구나 햇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햇살을 위해 햇님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 햇살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행복과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 것이다. 엄청 멋진 일이지 않은가?

당연히 힘들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이 보람찬 일을 위해서는 참고 견디어야 하겠지? 누군가를 위한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아뽀로는 햇님의 마지막 답장이 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저녁 시간이 되었는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콩 우체함을 열어 보았다.

‘답장이 왔어!’

흐뭇한 마음에 편지를 얼른 펼쳐보았다.


‘루피에게 오늘의 마지막 햇살을 선물합니다.’


아뽀로는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을 들었다. 또 콩나무를 한참 동안 내려가야 하니까 얼른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 햇살이 끝나기 전에 콩나무를 내려가야만 무사히 다치치 않고,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해가 져서 밤하늘이 캄캄해졌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눈으로 스프를 만들어 볼까? 튀김을 만들어 먹을까?’

배가 고파서 그런지 집으로 가는 내내 먹을 것만 생각한다.

그런데, 집 앞에 이런 쪽지가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뽀로!

네 덕분에 오늘 나의 과수원에 열매가 맺혔단다. 정말 고맙다.

너는 우리의 햇살과도 같단다. 너도 햇살같이 멋진 저녁을 보내렴.

정원사 마루 아저씨가


아뽀로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스프나 튀김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아뽀로는 깜깜한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고 있을 햇님을 떠올렸다.

참 행복했다.

아뽀로가 웃는다.

오늘 아뽀로의 햇살을 받았던 당신을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