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찾기 위한 두 번째 이야기
오늘도 레스또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빗님의 의자를 어떻게 만들까?’
쌓아 두었던 재료 상자를 열어 보았다.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공예용 과자도 있고, 셋째 아기돼지가 집 짓는데 사용했던 벽돌도 있었다. 수십 가지 재료를 살펴보았는데도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이번엔 아이디어 공책을 꺼내 보았다. 그 공책에는 1쪽부터 1002쪽까지 빽빽하게 레스또의 의자 역사가 담겨 있다. 레스또는 의자를 만들고 나면 늘 이 공책을 꺼내 그 의자에 대하여 기록을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부분에는 꼭 ‘의자에게’ 라는 문구를 넣어서 만든 의자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쓴다. 물론 그 의자는 주인에게로 가버린 후라 그 편지를 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모두들 레스또를 의자 아이라고 부른다. 그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의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햇살 사냥꾼 아뽀로의 사무실 의자도 레스또의 작품이다. 햇님에게 하루종일 편지를 쓰느라 힘든 아뽀로에게 저 산 넘어 무지개 동산의 솜사탕 나무에서 가장 큰 열매를 따다 의자를 만들어 주었었다. 힘들지 않냐고? 아니. 전혀. 레스또는 이런 일들을 참 좋아한다. 누군가를 위한 일 말이다.
레스또가 운영하는 의자 가게 이름은……, 글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단지 문 위에 ‘레스또의 의자 가게’라는 아크릴 물감으로 쓴 듯한 글이 있을 뿐이다. 간판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나보다.
요즘에는 의자가게에 손님들이 참 많다. 의자를 만들어 주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레스또지만, 요즘같이 바쁠 때는
‘아……, 하루쯤은 쉬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한밤중이었던 것 같다. 아, 아니. 해가 뜨기 직전이었나 보다. 낡은 가게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큰 소리라서 벼락이 내리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책에서만 보던 늑대거나 도둑아저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주 잠깐 무섭기도 했다. 덕분에 잠에서 깼지만 말이다.
‘이 시간에 손님인가?’
거의 눈을 감은 채, 레스또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아침이 오지 않았는데, 문으로 가는 길이 밝았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분명 어두워야 할 시간이었다.
“누구시지요?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문을 슬며시 열어 보는데…….
그곳에는 아직 잠이 덜 깬 빨간 햇님이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햇님이셨구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죠? 혹시 일하러 가시는 길에 들리신 건가요? 그러기에는 저에게 참 부담스러운 시간이네요.”
“우리의 착한 레스또!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줄 수 있나?”
“저에게 부탁을요? 저는 의자 만드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걸요.”
“내가 왜 그걸 모르겠어? 나는 의자가 필요하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출근해서 퇴근까지 계속 서 있는 게 무리라네. 어때? 레스또, 나를 위해 의자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너무 갑작스러워 레스또는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말이다. 사실 모두가 아는 아주 유명한 레스또였지만, 햇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너무 떨리기도 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처음이고. 햇님은 레스또에게 텔레비전 속 영화배우와 같은 존재였다.
“부탁하네. 레스또. 오늘은 영 잠이 오질 않아서 이렇게 출근 전, 찾아온 거라네. 너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인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이 시간 밖에는 여유가 없어.”
그 순간 레스또는 햇님이 불쌍했다. 늘 햇살을 보내주기 바쁜 햇님이 아닌가? 그리고 햇님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레스또는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해 버렸다.
“좋아요. 제가 어떻게든 햇님의 의자를 만들어 드릴 거에요.”
사랑하는 햇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었다.
그 후로 3일이 지났을 때에도 레스또는 햇님의 의자를 만들지 못했다. 머릿속에 햇님의 의자 설계도들이 한가득 있었지만 '아, 이거야!'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잠깐잠깐 찾아오는 손님들의 의자를 만들긴 했다. 하루는 연꽃 로투쓰의 의자를 개구리밥으로 예쁜 장식과 함께 만들어 주었고, 그다음 날에는 안개 뽀기의 의자를 장미 덩굴로 뚝딱뚝딱 근사하게 완성했다.
흔들 의자에 앉아 레스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그래, 그거야!’
드디어 햇님의 의자가 떠올랐다.
……
그날 어둑어둑 깜깜한 저녁이 되자마자 햇님이 똑똑 문을 두드렸었다. 연락을 받고 온 햇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안그래도 화사한 햇님인데, 이제는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레스또, 너는 나에게 최고의 의자를 만들어 주었어. 내일부터 나는 출근 후와 퇴근 전에 잠깐씩 저곳에 앉아 쉬게 될 거야. 이제 힘이 나서 더 많은 곳에 햇살을 나누어 줄 수 있겠구나. 정말 고맙다. 레스또. ”
......
빗님의 의자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창 너머로 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앉아 있는 햇님도 함께. 햇님이 앉아 있는 산은 더 푸르러 보였다.
‘우리 햇님, 의자가 마음에 드세요?’
오늘따라 햇살이 더 많이 들어오고 있다. 레스또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만드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라고 생각하며 새삼스레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빗님의 의자이다. 계절마다 빗님은 많은 일을 하신다. 빗님 덕분에 이곳엔 늘 활기가 넘친다. 그뿐 아니라, 꽃님들도 자라고,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이런 빗님이 레스또를 찾아온 건 바로 어제 점심 때였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레스또는 해바라기 도너츠를 먹고 있었다. 빗님이 창 밖에서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레스또! 나에게도 의자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니? 비를 세상 만물에 뿌리는 일은 나의 기쁨이란다. 하지만 하루종일 일하는 나에게 스스로 선물을 주는 것도 멋진 일이지 않겠니? ”
레스또는 도너츠를 한 입 베어 먹으면서
“좋아요. 모레까지는 만들어 드리지요.” 라고 말해버렸다.
약속한 날은 내일인데, 레스또는 아직 빗님의 의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슬 차를 따뜻하게 끓인 후, 제일 좋아하는 노란색 머그잔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 소파에 앉았다. 작업실 소파는 참 포근했다. 안개와 구름으로 만든 소파였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낡아버렸는데, 포근함은 여전했다.
‘난 이 소파가 너무 좋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번떡!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지금 레스또는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지 두 장을 꺼내어 하나는 구름님께 하나는 안개님께 보내는 거였다.
사랑하는 구름님께,
구름님, 안녕하세요. 레스또에요.
빗님이 가끔 구름님을 찾아갔을 때, 따뜻한 의자가 되어 주세요.
분명 행복한 일이 될 거예요.
레스또 올림
사랑하는 안개님께,
안개님, 안녕하세요. 레스또에요.
가끔씩 빗님을 찾아가 의자가 되어 드리는 건 어떨까요?
분명 행복한 일이 될 거예요.
레스또 올림
그리고 편지지를 한 장 더 꺼냈다. 마지막으로 빗님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빗님께,
빗님, 안녕하세요. 레스또에요.
저는 빗님을 많이 사랑해요.
며칠 동안 빗님에게 드릴 의자 선물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구름과 안개님께 빗님의 의자가 되어 주기를 부탁드렸어요.
이제 잠깐씩 수다를 떨고 싶거나, 낮잠을 주무시고 싶을 때, 안개님과 구름님을 찾아가시면 돼요. 혹시 모르죠. 구름과 안개님이 빗님을 찾아올지도…….
분명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 될 거예요.
레스또 올림
레스또는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세 통의 편지를 집 앞 자그만 나무 우체통 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동물들이 자신의 의자 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자라 등껍질 의자에 앉아 있는 토끼가 맞은편 바위 옆 떡갈나무에 사는 생쥐와 게임을 하고 있다. 생쥐는 특수 제작된 그물망 의자에 앉아서. 이것도 물론 레스또 작품이다. 토끼와 생쥐가 주사위 돌을 던지다 레스또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레스또! 오랜만이군. 늘 가게에 박혀 있더니, 오늘은 안 바쁜가 봐!”
토끼 레비뜨가 말했다.
“안 바쁘긴요. 요즘에 얼마나 손님이 많은데요.”
레스또가 약간은 거들먹거리며 답했다.
“하긴, 의자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하고 아주 친한 리찌 알지? 아주 덩치 큰 고양이 말일세. 리찌가 어마어마한 저택에 살고 있는 거 알고 있나? 저 아래 호수 옆, 방이 10개나 되는 큰 집 말이야. 그 친구는 의자를 20개나 넘게 가지고 있지. 안그래? 레스또?”
생쥐 마쓰가 약간 잘난 척하며 말했다.
“그래요. 정확히 25개의 의자를 저희 가게에서 주문했었지요. 중요한 건 그 25개의 의자의 용도가 모두 다르다는 거죠. 물론 재료도 저만의 특별한 것들로 사용했구요.”
레스또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업적을 늘어놓았다.
“맞아, 맞아. 역시 자네는 최고의 의자 장인이야. 자네가 만든 의자에 앉아 있다니, 참 영광이네. 레스또.”
레비뜨가 엄지 손을 들어 레스또를 치켜 세웠다.
“감사해요. 다음에 또 필요하시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저는 남은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볼게요.”
레스또는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빗님의 일도 마쳤고, 보너스로 레비뜨와 마쓰의 칭찬이라니......
환상적인 저녁이다.
저 멀리 햇님은 또 산 의자에 편히 앉아 있다.
‘햇님! 이제 조금 쉬다 주무시러 가시겠네요. 미리 인사드릴게요. 굿나잇.’
길 가 꽃님들도 레스또가 만들어 준 잔디 의자 위에서 꽤 수다스럽다.
레스또는 너무 행복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계속 미소를 짓는다.
‘다들 제 의자에서 오늘 하루도 편히 쉬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