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한다.
동작을 할 때마다
너무 아프다.
아픈데
왜 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파서 하게 된다.
펄벅의 소설 ‘동풍 서풍’을 보면,
고통을 선택하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자신의 고통을 남편이 알아주는 것이 사랑이며,
그 사랑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긴다.
그렇다면
내가 고통을 선택하는 것 또한
그저 사랑일까?
비싼 필라테스 학원을 다닐 때,
내 아픔에 대한 과한 배려에
난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멀쩡한 몸으로 집에 들어오던 날,
나는 고통없음에 미안했고,
들인 시간에 아까웠다.
땀을 많이 흘려야,
좀 아팠어야,
다음날까지 몸이 고되야 했다.
그 고통이
내 몸에 대한 사랑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 고통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나는 또
고통을 선택한다.
‘이 고통만큼 널 사랑해’
라고 위안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