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종하는 게 아니었어.
이봐!
내가
끌려가고 있잖아!
새벽부터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진다. 글을 쓰다가, 블로그에도 잠깐 들렀다가, 뉴스 기사까지 훑어보았다. 7시 20분쯤 되어 ‘이쯤 되면 아이들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깨웠다. 아이들은 나의 지시에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내가 준비해 둔 옷과, 아침밥에 토 한번 달지 않고,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일터로, 그들은 학교로 가서 각자의 사회생활을 했다. 내가 짠 방과후 루틴에 따라 아이들은 움직인다. 틈틈이 아이들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와 바깥에서 놀다가 방과후 가도 되는지, 물어본다. 나는 그때그때 상황을 보며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준다.
저녁시간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취미생활을 해도 되는지, 좀 늦게 자도 되는지 등은 오롯이 나의 오케이 사인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아이들이
내 꼭두각시라고 생각했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나는 또 새벽 시간을 조용히 즐겼다. 7시가 넘어 자는 아이들을 보러 갔다.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아이들이 어제 몇 시에 잤더라?’ 시간을 계산하며 아이들 얼굴을 살폈다. 피곤해 보여 최대한 늦게 깨우기로 했다.
아이들이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다. 잘 먹고 있나 흘깃 살펴 보았다. 영 입맛이 없는 눈치다. 아이가 좋아하는 떡 간식을 데워 주며, 슬쩍 밥을 덜어 신랑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이제 아이가 웃으며 먹었다.
퇴근시간, 차 속을 가득 메우는 라디오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머릿속으로 아이들의 하루를 떠올려 본다,
오늘 학교 방과후 수업이 무엇이었는지, 몇 교시 수업인지, 숙제가 있는 날인지, 오늘 아침 컨디션이 어땠는지 등을 내 글쓰기 할 때 보다 더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어떤 당근과 채찍을 내릴지 결정했다.
퇴근 후 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참 반갑다. 하지만 그도 잠시, 정리해야 할 집과 준비해야 할 저녁밥, 챙겨야 할 아이 공부를 떠올리면 마음이 급해져서 아이들을 마음으로 대할 수가 없다. 일적으로 만나는 상사와 부하직원 같다.
자, 나는 또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자, 밥 먹고 나서 일기 숙제부터 먼저 하고, 수학해. 너희들 샤워할 때, 엄마가 채점해 놓을게. 아, 그 뒤에는 책 읽는 거 알지?”
아주 현명한 결정이다.
저녁 시간을 알차게, 낭비 없이 보낼 수 있는 건 나의 이런 지혜로운 조종 덕이다.
그런데, 큰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 나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어요.”
둘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저 오늘 땀 많이 흘려서 먼저 샤워하고 싶어요.”
나는 또다시 머리를 굴린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을 해서 지시를 내려주어야 했다.
“아, 그래? 그럼 둘 자 먼저 씻자.”
씻고 나온 큰 아이는 피곤한 몸으로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 모습을 숨어 보다가,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화정아, 오늘은 그거 안 해도 돼. 그냥 먼저 자자. 푹 자고 내일 일어나면 더 재밌게 풀 수 있을 거야.”
“그럼, 엄마 내일 더 풀게요.”
아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8시도 안 된 시각에 잠에 빠져 버렸다.
둘째 아이는 샤워하고 나와, 침대로 들어가는 형아를 슬쩍 살피더니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엄마, 형아 자는데, 엄마와 나랑 둘이서 오랜만에 데이트 하면서 놀면 안 돼요?”
내 머리는 또 바빴다. 어떤 선택과 지시를 할지, 빨리 생각해야 했다.
“안돼. 일기 쓰고 나서, 수학 두 바닥은 풀자.”
아이는 처벅처벅 자기 자리로 가서 일기 숙제를 한다.
나는 또 아이의 그 모습을 몰래 보고는,
다가가서 이렇게 귓속말을 했다.
“일기만 쓰고, 엄마라 보드게임하면서 데이트 하자.”
그리고는 다 정리해 놓은 식탁 위에 쥬스와 빵, 보드게임을 셋팅했다.
나는 아이들이 내 꼭두각시인 줄 알았다.
내 손 안에서 그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아이들이 나를 움직였다.
아이들의 표정, 몸짓, 생각 등이 나를 이리로, 저리로 움직이게 했다. 그들은 별 말도 안 하고, 나를 조종했다. 정말 무서운 녀석들이다.
또 손잡이가 움직인다.
내 손이 그리로 따라 간다.
내 마음까지 그쪽으로 쫓는다.
이렇게 난,
꼭두각시 엄마였다.
*꼭두각시 : 남의 조종에 놀아나는 사람. 우리나라의 고대 민속 인형극인 '박첨지 놀이'에서 박첨지의 아내 역으로서 '나무로 깎아 만들어 기괴한 탈을 씌워서 노는 젊은 색시 인형'을 꼭두각시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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