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를 참 좋아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하고 많은 풀꽃 중 하나라고 쉬이 보지 말고, 오래 지켜보다 보면 그 아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응원의 시이다.
그러니 하찮은 존재는 없다고, 사회 속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는 착한 시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 초가 되면, 미술 시간에 꼭 이 시구절을 이용하여 게시판을 채운다. 아이들에게 시구절을 한 글자, 두 글자씩 배분하여 주고, 그림 글씨로 예쁘게 꾸며 게시판에 다다닥 붙인 후, 함께 읽기도 한다.
그렇게 교실 속 소외된 아이들에게까지 응원해주고,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시 내용이 너무 조건적이다.
누군가 예뻐해 준다는 것을 크게 ‘사랑’으로 본다면, 이건 조건적인 사랑일 것이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예쁘고 빛난다. 내 가까이 있는 나와 마주한 이들 모두 그저 아름답고 귀한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굳이 오래 보지 않아도 그냥 예뻐야 되는 내 사람들이다.
초록 초록한 풀잎들 속에 자란 풀꽃들은 굳이 오래 보지 않아도 그 예쁨을 숨길 수 없다. 꽃은 그냥 다 예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냥 엄청 예쁘다.
하물며 나와 함께하는 이 풀꽃 같은 아이가 나만 쳐다보고 있다. 내 사랑을, 관심을 원한다.
“잠깐만! 기다려봐. 너 며칠간 지켜보고 예뻐해 줄게.”
“어……, 어디 예뻐할 데가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이러다가, 아이가 더이상 내 사랑과 관심을 원하지 않게 되면, 그때 얼마나 후회할까?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던, 지금은 아이들 저 뒤에 줄 서 있는 신랑이 날 쳐다보고 있다. 내 배려와 애틋함을 원하는 눈치다.
“여보, 잠시만! 며칠 잘하는 것 같으면 나도 똑같이 배려해 줄게.”
“어……, 보자. 예전의 그 좋았던 부분이 보이지 않는데……, 배도 나오고 이마도 좀 훤해진 것도 같고…….좀 자세히 보고 나서 안아 줄게.”
그러다가 꼬부랑 노부부가 되고 나서 사과와 후회로 여생을 보내게 될 수 있다.
조건적 사랑은 내 자존심을 지켜줄 지는 몰라도,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시간을 챙겨주지는 못한다.
오늘 나는 미술시간, 아이들과 함께 교실 게시판 글을 이렇게 바꾸었다.
자세히 안 보아도 예쁘다.
오래 보지 않아도 사랑스럽다.
우리 모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