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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는샘 이혜정 Sep 23. 2021

[웃는샘의 그림일기] 핑곗거리 _ 체력변명썰

웃는샘의 그림일기 _ 핑곗거리




또 놀자고?


얘야,

엄마는

체력이 안 돼서

같이 못 해.


저쪽으로 가서 엄마 빼고 해 줄래?


뭐?

그런데 어떻게 새벽에 글을 쓰냐고?


음……,

그건……






아주 오랜만에 동생네를 만났고, 잠깐 네 살배기 조카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게 되었다. 내 손에 전해지는 보드라운 조그만 손이 몇 년 전의 그리움을 톡톡 건드리는지, 순간 우리 아이 어릴 적이 생각났다.


‘맞아. 우리 화정이도 어릴 때는 참 귀여웠는데, 이렇게 꼬옥 손을 잡고 얼마나 걸어 다녔다고.’


조카는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앙증맞은 말들을 쉬지도 않고 내뱉었다.


‘그래. 우리 우영이도 이런 외계어로 말했었는데. 그리고 내가 그 모든 걸 통역했었지.’


아이의 그런 흐물흐물한 말들은 괜히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 귀염댕이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를 본 것이었다.


뒤따라 달려가기에는, 내 몸이 너무 무거웠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아이를 쫓아 다니며 “집에 들어가자.”라는 말만 연신 쏟아냈다. 결국, 그날 난 아이의 호기심을 따라 다니다 20분만에 녹초가 되어 버렸다.




“엄마, 그래서 아이는 젊을 때 키워야 하나 봐. 체력이 안 돼서 잠깐인데도 못 보겠더라고.”



그날 일로, 나는 친정엄마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난 내 저질 체력과 아쉬운 나이에 하소연을 했다.



“체력은 무슨? 지금 그 나이에 아이 낳고 키워도 너 예전처럼 할걸. 체력이 없어도 마음으로 그렇게 되는 거지.”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내 체력을 이유로 많은 것에 선을 긋고 있었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엄마 목이 아프면 안 돼. 내일 학교 가서 수업해야 하잖아.”


아이가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면,

“그냥 아빠랑 해. 엄마는 좀 쉬고 싶어.”



아이가 같이 물놀이 하자고 바닷가로 끌고 들어갈 때는,

“엄마 물놀이 하면 몸살 날 수도 있어. 너희들끼리 놀아. 엄만 여기서 보고 있을게.”




늘 ‘그다음’을 고민하고, 내 체력을 핑계 삼는 나는 아이와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아이를 낳았을 때, 그때라고 내가 힘이 있었겠는가. 지금과 다른 건 그 체력과 나이보다, 내 ‘마음’이었다.



내 시간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이었고,


내 상쾌한 내일을 위한 걱정이었으며,


아이들과 부대끼기 싫은 귀찮음이었다.



그것을 모조리 묶어 난 ‘체력이 안 좋아서.’ 라는 핑계로 대치했다.




집 근처 바닷가에 돗자리를 폈다. 파라솔 아래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읽을 책을 꺼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애들아, 물놀이 신나겠다. 오늘 바다는 더 예쁘네. 자, 얼른 물속으로 들어가! 엄마는 여기서 기다릴게.”



둘째 아이가 묻는다.


“근데, 엄마는 왜 안 들어가요? 매일 우리보고만 물놀이 하라고 하고. 그럼 여길 왜 왔어요?”



큰애가 둘째에게 말한다.


“엄마는 물놀이 힘들어 하셔. 찝찝한 것도 싫어하시잖아. 우리끼리 그냥 가자. 넌 눈치도 없냐?”



그리고 저 멀리서 신랑이 아이들에게 손짓한다.


“애들아, 엄마 방해하지 말고, 얼른 놀자. 그러다 엄마 화낸다.”





 ‘아…….’


나는 조용히 책을 덮고, 스피커를 껐다.


그리고 돗자리 위 장식품이기만 했던 구명조끼를 걸치고 우리집 세 남자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와의 시간에 이리저리 계산대지 않겠다고,

더이상 내 체력을 핑계삼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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