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웃는샘 이혜정 Oct 06. 2021

[웃는샘의 그림일기] 사람 조심 (좁히는 인간관계)

웃는샘의 그림일기 - 사람 조심



알림장 마지막에 이렇게 또 쓰라 했다.


“사람 조심”



선생님! 낯선 사람 조심해라는 거죠?


나쁜 사람도요?



아니.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조심해야 해.



알고 있는 사람도요? 누구요?



음……, 그건…….






알림장 쓰는 시간이었다. 요즘에는 그다지 숙제도 많이 없고, 준비물도 웬만큼은 학교에서 다 제공된다. 그래서 적을 게 많지 않다.



1. 코로나 방역수칙 잘 지키기


2. 책 읽고 독서기록장 쓰기


3. 주제 일기 쓰기


4. 개인 물 들고 다니기


5. 차조심, 사람 조심



새로운 것 없이 매일매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마지막 말, ‘사람 조심’을 적을 때,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낯선 사람 조심’이라고 적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한다.



“아니지. ‘나쁜 사람 조심’이라고 해야지.”



자기들끼리 난리다.



그래서 나는 그 소란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그냥 내가 알던, 모르던 모든 사람을 조심하긴 해야 해.”



아이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며 반박하겠다고 더 소란스러워진다. 비판적 사고를 키워주겠다고 애썼던 게 후회스러울 정도다.



“그럼, 엄마도 조심해요? 친구도 조심해야 해요?”



“선생님도 조심해야겠네요.”



내 말의 꼬투리를 잡았다고 기세 등등하다.



“응. 다 조심해야 해.”



“말 많은 사람도 조심해야 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조심해야지. 나와 같은 여자면 여자라서 조심해야 하고, 나와 다른 남자는 달라서 조심해야 하지. 의리 없는 사람도 조심하고, 남을 이용하는 사람도 멀리해야 하는 거야. 나쁜 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조심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럼 도대체 누굴 만나야 돼요?”



“그러게. 그렇게 따지고 보니, 만날 사람이 없네.”







그렇게 아이들과 알림장을 쓰며 잡담한 날, 난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하상욱 시인이 책에서 그랬다.


인간관계는 넓히는 게 아니라 좁히는 거라고.




난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나와 맞는 몇 명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서 나는 나쁜 사람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이리 따지고 저리 계산하면서 나에게 혹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생각되면 사전에 울타리를 쳤다.






웃긴다. ‘다양성’을, ‘공감과 소통’을 가르쳐 왔으면서 정작 나는 나와 다르다고 끊어버리고 소통을 마다했다.


나의 생각대로라면 정말 만날 사람은 없다. 그저 혼자 방에 콕 박혀 살아야 한다.



인간관계를 좁히되 나처럼 닫아버려서는 안 되는 데 말이다.



내일부터 알림장에는 이렇게 적어야겠다. 더 길어졌다고 아이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사람 조심(조심하되, 노력은 해보기. 나쁜 사람, 낯선 사람 빼고!!)”








작가의 이전글 [웃는 샘의 그림일기] 엄마들의 관계파라독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