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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unyee Feb 22. 2021

희망아 사라지지 말아 줘 (공황장애와 결혼#17)

집중할 대상이 사라지려 하자 다시 불안이...

다음 날, 친구들과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LA로 향한다. 가는 길은 영화에서나 보던 끝없는 사막이다. 다시 한번 이런 대자연 속에서의 ‘나’라는 존재는 아주 작은 존재임을 느낀다. 그런 내 안에 있는 공황장애라는 녀석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찮게 느껴진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그렇게 5시간 정도를 달려 LA카운티의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LA에 사는 친구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할리우드에서 영화 관련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온 친구 역시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와서 지금은 그 지역에서 꽤나 큰 수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두 친구 모두 과거 미국 이민 1세대들이 보통 서비스업에 종사했던 것과는 달리 나름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활약을 하고 있다. 이민 초기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을 텐데. 성인이 되어 타국으로 넘어와 정착한 친구들이 대단하다.




LA의 친구 집은 한국으로 치면 타운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수천 평 정도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서로 비슷한 구조의 2층짜리 집이 모여 있다.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그냥 보통의 마을에 있는 것 같지만 모든 집은 동일한 건설사가 지은 소위 같은 브랜드인 것이다. 땅이 큰 나라라 그런지 빌리지 내부의 길도 시원시원하게 크다. 각각의 세대에는 모두 차고가 있어 도로에 주차된 차가 없다. 그래서인지 길도 더욱 깔끔하고 넓게 느껴진다. 도로 양 옆으로 빼곡히 주차된 한국의 풍경이 익숙한 나에게는 여기에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게 맞나 할 정도로 낯선 풍경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 빌리지 내의 야외 공용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복 차림으로 마을을 활보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했지만 친구들은 모두가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나도 애써 익숙한 듯이 보이려 애썼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수영장에는 노부부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두 팀이 있었다. 모두 여유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 빌리지 내에서 지금껏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정도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구에게 이런 곳은 사려면 얼마 정도나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우리 돈 약 4억 5천만 원 정도라고 한다. LA 주변에 방 4개에 화장실 3개를 갖춘 2층 집이  정도라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얼마 동안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뒷마당에서 친구 아내가 이른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한국식 삼겹살이다. 뒷마당은 넓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성인 대여섯 명 정도가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프라이빗한 장소였다. 평소에도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아 종종 뒷마당에서 이렇게 식사를 한다고 한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맘먹고 미리 계획해서 해야 할 야외 식사가 여기서는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눈물이 핑 돈다. 내가 뭔가 힘들게 살고 있는 느낌이다.

식사를 하면서 한국 식료품점에서 사 온 소주가 점점 들어가자 이런저런 속마음이 나온다. 워싱턴에서 수영클럽을 운영하는 친구는 이민 3년 차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대학시절 취득한 수영강사 자격증으로 현지인이 운영하는 수영클럽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조그마한 수영클럽을 인수했는데 그 클럽의 회원들이 점점 많아져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클럽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지역의 클럽 중에서 회원수로만 따지면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니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LA 친구는 컴퓨터 그래픽 관련 엔지니어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그래픽 기술자로 일을 하고 있다.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한 이 친구 또한 타국에서 밥을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보기 좋다.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보기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골 출신 세 남자의 이야기는 밤늦게 까지 계속됐다.




다음 날, LA 국제공항이다. 여행의 끝이 늘 그러하듯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혹시라도 ‘그녀’와 잘 돼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신혼여행으로 다시 미국에 올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친구들과 헤어졌다.


미국 여행 9일 동안 한 번도 공황장애 증상을 경험하지 않았다. 지금 이 마음가짐이라면 한국에 돌아가도 크게 두렵지 않다.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놈이 오는 빈도가 줄어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놈이 온다고 해도 그 충격으로 그동안 해왔던 내 모든 노력을 부질없는 짓이라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미국에 오기 직전, 한동안 없었던 공황장애 증상을 터널에서 만난 후 크게 상심하여 그동안 내가 했던 노력을 쓸데없는 짓이라며 스스로를 너무 나무랐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삶의 의욕도 잃어 우울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렵게 여기 미국에 와서 약 9일 정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했으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것으로 이번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 어머니의 환갑 기념 여행이었지만 나에게 큰 활력을 불어넣는 의미 있었던 여행이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왔다. 약 2주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하루 이틀 정도 적응하느라 고생했지만 이내 적응이 된다. 늘 그렇듯 내 일상은 출근, 외근, 출장, 퇴근의 반복이다. 이제는 공황장애 약을 매일 먹지 않는다. 다만 뭔가 증상이 올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재빨리 먹는다. 가방에는 항상 조그만 생수병을 갖고 다닌다. 약은 손이 닿는 어디에는 놓아둔다. 가방, 지갑, 차 안의 여기저기에 둔다. 그리고 중간중간 약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빼먹지 않고 했던 운동은 꼭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만 간다. 그러다 보니 이틀에 한 번 꼴로 가는 것 같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미국에서의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나만 그런지 다른 남자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그녀에 대해서 이름도 모르고 몇 마디 대화밖에 나눠 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 왠지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말하면 ‘왠지 이 사람과 결혼할 것 같고 이 사람과 아이를 낳고 살 것 같다.”가 맞을 것이다. 지금 나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더구나 이 사람의 이름도 모른다. 심지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는 강한 확신이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남아 있다.


사실 나는 한국에 돌아오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가이드에게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볼 계획이었다. 물론 아무리 가이드라고 해도 타인의 개인정보를 발설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또한 왠지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에 차 있었다.


가이드의 연락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날밤 새벽 3시 즈음에 나는 가이드에게 메시지로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일부러 가이드가 있는 LA의 낮 시간 대에 맞춰 메시지를 남겼다. 그만큼 내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우회하여 알리고 싶었다. 가이드 역시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그녀의 연락처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다가가 보라고 권했던 가이드의 말에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가족들과 함께 여행 와서 여자에게 집적대는 모습으로 보일까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가이드는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그런 맘이 바뀌지 않는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맘은 바뀌지 않았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한국에 돌아와 정확히 5일 만에 가이드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눈을 떠보니 휴대폰에 가이드에게서 온 메시지가 보인다. 반갑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확인하자 그녀의 이름과 함께 휴대폰 번호가 보인다. 큰 파도를 하나 넘은 것 같은 희열이 밀려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상하다 평소 그놈이 올 때 두근대는 심장 박동과는 확실히 다른다. 뭔가 기분 좋은 건강한 두근거림이다. 고객의 정보를 이렇게 알려줬기 때문에 혹시 이 고객이 본사에 클레임이라도 제기하면 본인은 해고될 가능성도 있지만 내 진심이 느껴져 이를 무릅쓰고 알려주는 것이니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다. 매우 고맙고 왠지 미안하기도 하다. 




회사에 출근했지만 머릿속엔 온통 언제, 무슨 말을 시작으로 그녀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뿐이다. 행복한 고민이다. 일한다는 핑계로 거의 10여 년 동안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봐서 그런지 도무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내는 거다.


‘안녕하세요. 저는 OO라고 합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라스베이거스에서 100불 건네었던 사람입니다. 여행 기간 OO 씨가 맘에 들어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지만 식구들도 있었고 사정상 제대로 말을 건넬 기회가 없이 한국에 들어왔네요. 그런데도 계속 OO 씨가 생각이 나서 실례를 무릅쓰고 미국이 있는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어렵게 연락처를 받게 됐습니다. 시간 되실 때 꼭 한 번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점심시간이 될 무렵까지 몇 번을 고민하고 수정한 끝에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가 이 글을 읽으면 숫자 ‘1’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든 답장이 올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답이 어떻게 올지 기다리면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게 된다. 아직 회신은 없다. 숫자 ‘1’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읽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휴대폰을 계속 확인한다.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 확인했지만 여전히 숫자 ‘1’은 남아 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회신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일주일이 넘었지만 숫자 ‘1’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나는 혹시나 가이드가 알려준 전화번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다시 가이드에게 확인해 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가이드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참았다. 혹시라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를 그녀가 일부러 읽지 않는 것일 수 있으니 다시 한번 더 보내 볼까 생각했지만 이 또한 인연이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단념했다.


하긴 일주일 전에 보낸 메시지에 회신이 없다는 것은 이유야 어찌 됐든 인연이 아닐 것이다. 아쉽지만 미국 여행 기간 동안 내가 공황장애를 생각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해 준 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기로 한다. 일주일 전 메시지를 보낸 첫날의 두근거림은 강했지만 답장이 없이 서서히 시간만 흐르면서 지금 그 두근거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이런 두근거림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너무나 아쉽다.


다시 나와 공황장애만 남아 있는 기분이다. 하필 오늘은 금요일 오후다. 이런 기분에 내 차가 금요일의 러시아워에 갇히게 된다면 그놈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집에 가자. 




내가 사는 오피스텔의 8층에는 우리 회사 대리점 사장님의 사무실이 있다. 사장님의 가족들은 부산에 살고 있고 현재는 주말부부다. 사장님은 나보다 나이는 13살이나 많지만 내가 신입사원 때부터 알고 지낸 꽤나 친한 관계다. 보통 대리점이라고 하면 소위 갑과 을의 관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장님은 우리와 거래가 거의 없어 오히려 더 친하게 됐다. 회사 일이나 금전적으로 얽힌 것이 없으니 일로 알게 된 관계라고 해도 부담이 없다. 참 아이러니한 관계다. 더구나 잦은 공황장애 증상으로 급하게 옆에 사람이 필요했을 때 사장님의 신세도 몇 번 졌을 정도로 가깝다. 사장님께 커피 한 잔 하러 가도 되는지 전화를 해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으니 오라고 한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결국은 차인 거네?”라고 한다.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작과 동시에 차였다고 결론 내는 것이 맞다. 사장님은 이럴 때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실 게 아니라 대학교 근처의 1층 커피숍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활기 넘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뭐 나쁘지 않다. 지금은 집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 그렇다고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다. 집 근처의 대학으로 향했다. 8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4시 대학가는 확실히 젊음이 느껴진다. 외부가 잘 보이는 1층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는 않아도 뭔가 공기가 다르다.


갑자기 사장님이 나에게 일대일 농구를 하자고 한다. 이 더위에 무슨 농구냐고 하자 나의 처진 어깨가 보기 싫다고 한다. 더우니까 땀이 금방 날 것이고 땀을 흘리고 들어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고 한다. 나는 내심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50이 훌쩍 넘은 대리점 사장님이 이것저것 많이도 알아서 참 좋겠다고 투덜대면서도 이내 아무도 없는 농구 코트로 향했다.


농구를 하자던 사람이 농구공이 없다. 축구공이 있어 아쉬운 대로 축구공으로 1:1 농구를 시작했다. 한 여름 땡볕에 대학교 운동장에서 51세, 38세 남자 둘이 양복을 입고 농구를 하고 있다. 그것도 축구공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농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멀리서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저 사람들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몇 분 운동을 했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골대 아래에 두었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순간 왠지 모르게 그 메시지가 그녀에게서 왔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계속됐던 강한 확신에게 그렇게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농구를 멈추고 메시지를 확인하자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가 맞았다. 메시지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지금 이 순간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가쁜 숨과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해 내 상기된 표정이 가려져 다행이다. 조심스레 내용을 확인한다. 답장이 늦어져 미안하다는 내용과 미국에서 이틀 전에 돌아왔는데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이틀 동안 내리 잤다는 내용이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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