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오랜 꿈이 떠난 뒤에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준 것은 먼 타지의 삶이다. 꿈이 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끌리고 있는 방향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더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오래 간직해 오던 소망이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애착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늘길이 열린 뒤 뉴욕으로 떠났다. 별 뜻은 없었지만 이 도시의 힘을 빌려 20대의 찬란을 채우고 싶었달까. 노랗게 물든 센트럴파크의 나무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눈 떠 보니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보인다. 뉴욕은 수많은 다양성의 공존이 서로 힘을 주고받아 폭발적인 에너지를 매일 분출하는 도시다. 서핑할 때 파도를 잡아 물결을 타지 않으면 파도에 먹히듯이, 뉴욕에서도 까딱하면 잠식될 수 있다. 나는 뉴욕에서 큰 파도가 덮쳐 짭조름한 바닷물을 잔뜩 마시거나 파도에 쓸려 나가도 내가 잡을 수 있는 파도를 기다리며 나만의 서핑을 즐긴다. 이 도시가 나를 밀어내는 힘마저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지내던 어느 새벽, 마테오에게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단단하지 않은 관계로부터 받는 연락은 이상하게 의문부터 드는 이 습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와 나는 사제지간이다. 기숙사 사감 선생이던 그는 겨울 방학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동남아와 유럽 여행을 다니고는 했다. 나는 당시 두 번 정도 여행을 가게 될 기회가 있긴 했는데 결국 가지 않았다. 돈 문제로 매번 다투는 부모님을 앞에 두고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낼 만큼 철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그는 어엿한 사업가가 되어 여행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와 좋은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 애매하다. 몇 년 전, 호주로 캠핑카 투어 상품을 늘리고자 했던 그는 내가 호주에서 지내다 온 것을 알고 나에게 연락했다. 나는 서울에서 그가 있는 지방까지 먼 길을 내려가 사업과 취업 관련된 미팅을 마쳤는데, 이후 돌아온 것은 흐지부지한 행태였다. 나는 더 이상 그의 안부를 묻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다. 나는 특히 불필요한 기억을 빠르게 잊어버리는 성향이 강하다. 좋은 점은 스트레스가 없는 편인 것이며 안 좋은 점은 다른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테오에게 이번 연락이 왔을 때도 남아있는 감정이 없는 상태였다.
마테오는 대뜸 2월경 미국에서 캠핑카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하며 내가 언제까지 미국에 체류하는지 궁금해했다. 투어에 참여하길 바라는 건지 정보가 필요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전에 귀국할 예정이라 불가능함을 밝혔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구나! 1월에는 유럽 투어를 한 달간 진행할 예정인데 여학생을 담당할 인솔자를 구하고 있어. 관심 있니?"
근사한 말들이 이어졌다. 끝으로 "같이 갈래?"라는 그의 물음에 나는 큰 고민 없이 "좋아요!"라고 답했다. 말 한마디가 여행의 발단이 되어 버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좋아하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에 비치는 내 모습은 거침이 없나 보다. 나는 그저 남들보다 모험심이 조금 더 강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낙천적일 뿐이다. 동경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방향에 닿아 있다.
한국에 돌아와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여정을 위해 e-sim을 구매하고 아이클라우드의 용량을 늘린다. 유난히 재즈를 좋아하는 내가 유럽에 간다는 것은 털이 꼬불꼬불하게 말려 실눈을 뜬 갓 부화한 병아리와 같은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수많은 재즈 음악이 나를 지구 반대편 어느 장소로 늘 데려다주었는데, 이제는 알을 깨고 세상을 마주할 때가 된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아기자기한 도시의 한 조각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속에 잔잔한 기쁨이 일렁거리다가도 장거리 비행을 또다시 해야 한다는 배부른 걱정이 밀려온다. 이쯤 되면 인간의 양면성이 나에게만 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걱정 아닌 걱정이 있다면 인솔자가 된 나의 모습이다.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촌들도 이제 다 성인이 되어서 청소년들을 마주할 일이 없었는데 '낯선 땅에서 아이들의 적응을 내가 도울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걸까', '요즘 학생들의 사춘기는 어떨까'와 같은 잔열 같은 불안이 몸에 남아 나를 서서히 달궈댄다.
이번 여행은 차로 이동이 잦아 간결한 짐이 필수이다. 하도 큰 캐리어만 끌고 다녔어서 이제는 다소 작게 느껴지는 24인치 캐리어를 거실에 펼쳐두고 넣다 빼기를 반복하며 짐꾸리기를 한다. 옆에서 tv를 보던 오빠가 있어 장난스레 여행 얘기를 꺼내다가 다음의 문장이 오고 갔다.
나 (여행 가서) 애들한테 기 빨릴 것 같아.
오빠 애들 기를 네가 받을 수도 있지.
덤덤한 오빠의 대답으로 인해 그렁그렁 맺힌 걱정이 한순간에 멎었다. 긍정적인 사고가 혈관을 타고 주입되는 정맥 주사처럼 몸 전체에 돈다. 유연한 마음을 장착하고 출국일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