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있냐는 질문은 여러모로 괜찮은 이야깃거리다. 음식 취향은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을 부담 없이 꺼내놓기 좋고, 누군가와 처음 함께하는 식사자리라면 상대가 싫어하는 음식을 선택지에서 제거하는 배려심을 선보일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내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은 조금 애매해진다. 딱히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야 당연히 있으나 (예를 들면 호박고구마나 채 썬 양배추 샐러드, 지나치게 단 맛이 나는 음료 같은), 그렇다고 손도 안 댈 만큼 거부감이 들거나 알러지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쓸 때는 얼마든지 솔직해질 수 있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표출하는 건 쑥스럽다. 새우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새우를 피하는 것과 내가 채 썬 양배추를 피하는 것은 어쩐지 무게감이 좀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콩을 못 먹었다. 정확히는 밥에 섞여 있는 콩이 싫었다. 콩을 입에 넣으면 불쾌감이 몰려와 씹어 삼킬 수가 없었다. 우선은 콩자반같이 더 나은 요리법도 많은데 왜 굳이 밥에도 콩이 들어가야만 하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둘째로는 반드시 콩밥을 먹어야만 건강하고 의젓한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를 혼내는 어른들에게 반항심이 들었다. 나는 콩밥 같은 거 안 먹어도 건강한데. 멸치도 잘 먹고 김치도 잘 먹고 우유도 좋아하는데. 꼭 밥에 들어 있는 콩을 모두 먹어야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밥에 섞여 있는 콩도 그저 무념무상 집어먹게 되었다. 굳이 콩을 골라내는 것도 귀찮았고, 불필요한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것보다는 내 선에서 처리하는 게 간편해서 잠깐의 불쾌감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쓰레기 버리는 데도 돈이 드니까. 게다가 나는 요리를 잘 안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식당 직원이든 일단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음식을 그저 먹기만 하면 된다는 것 자체로 감사할 일이지, 요리도 안 해놓고 이런저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껄끄럽다. 이렇게 이상한 데서 발휘되곤 하는 너그러움의 결과로, 결국 나는 딱히 못 먹는 음식이 없는 뜨뜻미지근한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콩을 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싫어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꺼내게 되는 단어가 바로 연근이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그렇게 대답해온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입 안에 들어오는 순간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연근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연근마저도… 눈앞에 있으면 먹는다. 심지어 맥주 안주로 연근튀김이 나오면 제법 잘 집어먹기도 한다. 하지만 이 대답의 진짜 장점은 연근이 다소 마이너한 식재료라는 데에 있다. 살면서 연근을 주재료로 쓴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일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 내가 연근을 진짜로 싫어하는지 검증할 길이 없다.
죄 없는 연근이 내 스몰 토크의 희생양이 된 것은 순전히 어린 시절 급식 탓이다. 요즘에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급식 지도라는 명분 하에 못 먹는 음식까지 어떻게든 싹싹 비워내고서 식판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급식으로 나오는 연근조림은 항상 다른 반찬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지고 식감도 유쾌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조리 해치워야 했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서 ‘안 좋아하는 음식’ 카테고리 쪽으로 분류되어 버린 것이다. 연근이라는 뜬금없는 대답의 이유는 죄 없는 콩과 연근과 숙주나물 등을 죽도록 미워했던 그 시절의 잔해인 셈이다.
지구상에 8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니, 잘은 몰라도 세상에는 대략 80억 가지의 음식 취향들이 있을 것이다. 비율의 차이일 뿐 모든 식재료는 호불호가 갈린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지 물어보면 항상 의외의 대답들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저마다의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그 음식을 먹다가 체한 기억 때문에, 입안이 미끄덩거리는 기분이라, 향수 냄새가 나서, 식감이 이상해서… 세상에 이런 맛을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음식마저도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고 있는 걸 보면, 마냥 사랑만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앞으로 마주칠 수많은 음식들을 좀 더 친절한 태도로 대해 줘야겠다. 그 또한 누군가로부터는 반드시 미움을 받고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