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와의 첫 대면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걸음마를 뗀 직후부터 맞벌이를 하셨는데,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 용건도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별 용건 없이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들도 아마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어쨌든 직장에 다녀보고 나서야 깨달은 건 바쁜 와중에 걸려오는 전화는 썩 반갑지 않다는 사실인데,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 엄마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무시하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나는 보통 “냉장고에 있는 우유 먹어도 돼?” 같은 시답잖은 질문을 했고, 엄마는 “응, 먹어도 돼. 할머니한테 부탁해서 빵도 먹고 과일도 먹어.”라며 매번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 외롭고 서럽고 울적했던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얌전히 부모님의 귀가를 기다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전화기라는 물건과의 첫 조우가 내게 나쁜 기억은 아니었던 것이다. 통화의 대상은 가족 아니면 친구뿐이라 누군가로부터 '싫은 전화'가 걸려올 일도 거의 없었다. 물론 휴대폰은 없고 집전화기만 있던 시절이라 친구에게 전화를 걸 때는 누가 받을지 모르는 긴장감을 안고 예의 바른 인사 멘트를 준비해야 했지만, 통화 자체가 무섭거나 싫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화 벨소리가 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내 소유의 휴대전화가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중학생 때 휴대전화를 처음으로 갖게 됐는데, 이는 내 명의의 재산이 생겼을 뿐 아니라 활동반경이 좀 더 넓어졌다는 뜻이라 갑자기 훌쩍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모두 '나'를 찾는 전화라는 점에서 집전화기와 큰 차이가 있었다. 집전화기는 우리 가족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포함하여 당시 5명) 중 한 명을 찾는, 그리고 높은 확률로 ‘어른’을 찾는 전화였기에 내가 반드시 응답해야 할 의무 따위는 없었다. 그와 달리 내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의 응대는 무조건 나의 몫이었고, 별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을 기분이어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거절을 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아프다거나, 잤다거나, 샤워 중 혹은 수업 중이라서 등등.
문자메시지와 달리 전화에는 어떤 긴박함이 있다. 벨소리는 항상 예고 없이 울리기 마련. 그러면 나는 길어야 1분 남짓의 벨소리가 끊기기 전에 서둘러 응답 버튼을 누르고 ‘혼자 있기’ 모드에서 ‘함께 있기’ 모드로 태도를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화 벨소리 자체가 무섭거나 싫다기보다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스위치를 올렸다 내리는 일이 내겐 약간 부담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연락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내가 혼자 있고 싶은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바깥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하는 때도 부지기수다.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자기 몫의 일을 하고 돈을 받는 직장인에게 '연락이 잘 안 된다'라는 건 어떤 업무적 결함을 뜻한다. 싫은 전화든 반가운 전화든, "안녕하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라는 태도로 즉각 응답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나는 꼭 필요할 때만 전화를 건다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걸려오는 전화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자 있기’ 모드에서 ‘함께 있기’ 모드로 전환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영 고립되어 있기는 싫고, 어느 정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받고 싶을 때. 바로 그럴 때 나는 SNS에 접속해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파티를 열고 있을 때 혼자 창문 밖에서 맥주 한 잔 들고 앉아 그들을 염탐하는 고독한 산타 클로스가 된 기분으로. 하지만 딱히 불행하다거나 소외감이 드는 건 아니다. 나만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때로는 남들이 재미있게 노는 걸 그저 지켜만 보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살면서 몇 번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매번 내 수중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잃어버린 걸 알아챘을 때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의 기분은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을 때 느낄 법한 두려움과 비슷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익숙한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막막한 기분. 외투나 공책, 신용카드, 아니면 다른 어떤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와는 또 다른 상실감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니, 그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면 실제로 그건 무인도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식당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이 조그만 기계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대단해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로 세계의 출입증이 되려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동시에 그 대단한 기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분명 없이도 잘 살았던 물건이 생필품이 되었을 경우 입장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애초에 휴대전화를 갖기로 선택한 것도 나고, 값을 지불한 것도 나지만 이제 가끔은 그것이 나를 소유하는 기분이 든다. 예고 없이 울리는 벨소리처럼, 이 물건이 어쩌면 나의 통제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기묘한 긴장감과 함께 그저 계속 살아갈 뿐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내일도 휴대전화를 목숨처럼 쥐고 출근길에 나서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