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 홍조-안 부끄럽고, 안 취했고, 안 아파요

by 바삭

삼국지에서는 관우의 얼굴을 묘사할 때 ‘중앙절 대추와 같이 붉은' 얼굴이라는 표현을 쓴다. 대추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얼굴빛이 제법 붉은 편이다. 아주 평온한 상태여도 기본적으로 술톤에 가깝고, 덥거나 술에 취하면 그보다 좀 더 붉어지는 식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 “얼굴 빨개졌다!” 라든가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같은 코멘트를 듣지 않을 확률이 아주 낮다. 누군가는 내게 “홍조는 귀엽기만 한데 왜 다들 치료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홍조인의 삶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수줍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붉은 얼굴은 종종 귀염성 있는 수식어와 연결되곤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쓸데없이 자존심이 셌던 내게 그런 수식어는 뭔가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처럼 느껴져 탐탁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수식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데. 나는 안면 홍조 그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특정한 이미지로 규정되는 게 싫은 것이다.


이십 대 초반 즈음이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며 여느 때처럼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그걸 소재로 약간의 ‘자학 개그’를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붉은 얼굴에 대한 코멘트에 질려버린 나머지 누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선수 쳐서 농담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한참을 실없이 낄낄거리는데 갑자기 친구가 자신의 얼굴은 너무 노랗고, 시체처럼 생기가 없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자학 개그를 하는 내 장단을 맞춰주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이 대화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외적인 것으로 평가당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기에 농담이랍시고 스스로에게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해대고 있는 걸까?


그때의 나는 피부가 안 좋은 편도 아니었는데 붉은 얼굴을 숨겨 보려고 매일매일 화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남들이 무심하게 한두 마디씩 건넬 때마다 격렬한 반항심이 들었고, 되도록이면 그런 피곤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사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악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일상에서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도 들고, 혹시라도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의 말 한마디 얹고 싶은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심기가 단단히 꼬여 있을 때의 나는 그 가벼운 한 마디조차 괜히 짜증스럽다. 그럴 때는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심정으로 “저 얼굴 원래 이래요.” 하며 뾰족하게 대답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속 편히 남들만 탓하고 있을 상황은 못 된다. 나 역시 상당히 미성숙한 인간인지라 수없이 많은 실언을 내뱉으며 살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선의 노력은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타인을 향해 쓸데없는 말 한마디를 얹고 싶을 때마다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입을 닫는다. 나는 한 번 뱉으면 끝이지만 듣는 사람은 아마 평생 질리도록 들어온 말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에 대해 설명할 때는 키가 작은 사람, 키가 큰 사람, 어떤 부위에 점이 있는 사람 등 외적인 특징으로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말 한마디의 힘은 너무 세서 아무리 조심해도 가끔은 엇나가기 마련이므로, 애초에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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