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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앙 Sep 17. 2021

유성우 내리던 밤, 사랑의 씨앗이 활강했다.

  별은 두 발 딛고 선 나를 작게 만들기도, 그래서 아득한 해방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면서 아찔한 낙하를 상상했고, 소원은 중력의 방향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만 같았다. 별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우주를 마주치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응하게 된다. 초여름의 목을 축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알도 우리 태양계의 주인이 몸소 키운 것이었고, 별과 눈을 마주치는 나 또한 우주의 일부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또 다른 이 역시 우주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별은 까마득한 우리의 존재를 가장 어렵지 않게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별을 보며 나의 우주가 너의 우주를 확인했고, 너의 우주를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때는 산란하는 버드나무 밑에 앉아 청승을 떨어도 채울 길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던 시기였다. 이 별에는 탄생석 같은 인연 하나 없다며 절망하던, 그 흔한 복학생이 바로 나였다. 수학이 안 되니 역사책을 펴고, 집중을 못해 다시 영어회화책을 펴도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 있다는 식의 깨달음으로 무작정 여행 모임에 동참했다. 여행지는 별들이 좋아하는 모래의 바다, 몽골이었다. 탄생석 하나 감별하지 못하는 내가 별들의 바다 몽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의 별이 떨어지며 향하는 저마다의 방향을 축하해주며, 혹시 나에게도 떨어질지 모를 행운에 기웃거려보는 것 외엔. '사랑하게 해주세요.' 빌어보는 것 외엔. 사랑은 내 20대 젊음을 관통하는 작은 도전이었다.     


  여행 모임 멤버는 학교 승마 동아리원들로 구성되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우린 공항에서 만났다. 힙합을 좋아하는 그녀는 검은 스냅백을 쓰고 신난 듯 '유사 탈춤' 같은 것을 추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스스럼없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무의식에 이끌려 여행 내내 그녀의 행동을 살피며 그녀가 웃을 때 함께 웃는 나를 발견했다.     


  즉흥적인 취미이든 철저한 계획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든 그 시작의 주체는 언제나 '나'였다. 나만 정신을 맑게 한다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그땐 있었다. 물론 나는 머리를 채 기르지 못한 복학생이었다.

  사랑은 달랐다. 사랑은 정말이지 내 것이 아니었다. 정갈한 옷차림을 하고 석양이 지는 평온한 저수지를 함께 걷다가 근사한 저녁을 먹고 이루어진 인연이라 한들 삐그덕거리기 일쑤였다. 나에게 사랑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작디작은 별이었다. 간혹 나의 탄생석인 듯 착각하게 만드는 별들이 지나갔지만 잠시 빛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습도 낮은 바람에 몸을 옹송그리는 초원의 밤이 찾아왔다. 우리는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에 설레었고, 때마침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었다. "이불 덮고 누워서 보자." 누군가 말했고, "우리 손 잡고 보자."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손을 잡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 새벽 두 시 정확히 열 번째 유성우가 떨어졌고, 내 지구상 유일한 희망인 사랑을 빌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 움켜쥐었다.     


  사랑은 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여행이 끝난 뒤 우린 일상으로 돌아왔고, 여행지의 설렘은 오빠와 동생 사이 어느 애매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나는 다른 연애를 했고, 3년 뒤 우린 같이 졸업했다. 우리는 서울과 광주로 멀어졌다.     


  연인이란 초행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동행하는 인연일 수도 있다. 나에게 연인이란 너무나 아름다워 계속 마주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연인과 함께 같은 곳을 본다는 건, 사랑과 성공 두 가지를 모두 원하는 이들의 사치였다. 


  사회인이 된 나는 스냅백 쓴 그녀가 계속 떠올랐고, 우리 둘 모두를 아는 친구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옆에 앉은 그녀는 그간 생각의 깊이를 아우르는 말들을 털어놓았고, 난 그 말들이 3년 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린 가까워졌고, 새벽 네 시의 깊은 밤 택시를 타고 서울의 동쪽을 활보했다. 서울의 방을 내어 준 그녀의 친구 집 앞에서 우린 연인이 되었다.     


  그녀와 만난 지 6개월, 아름다운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은 어느덧 나를 관통해 세상을 향해 있었다. 이제 나는 그녀를 통해 다른 우주를 보기 시작했다. 벅차는 아름다움이 내 생활 전반에 들어와 함께 해주는 행운이 덤으로 주어졌고, 날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사랑은 100년을 살아도 결코 완성되지 못할, 고마움이다. 사랑이 뚜벅뚜벅 걷는 일이기를 소망한다. 별이 생을 다하고 빛나는 유성우가 되기까지 영위한 시간만큼 우리 사랑도 은은하게 빛날 수 있었으면 한다. 스러지는 별이 되어가는 지구, 초원의 비포장도로를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 그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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