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나고 한국여행을 오는 학생이 많아졌다.
한국어 강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가난한 전업주부였고 매달이 빠듯했다. 외벌이 남편의 월급으로는 세 식구가 여유롭게 살기는 힘들었다.
남들 다 시키는 학원을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저축은커녕 마이너스가 나기 시작했다.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 손으로 번 돈의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달 수입이 10만 원, 다음 달이 50만 원, 세 달째 되는 달에 100만 원이 들어왔다. 매달 배로 수입이 늘었다. 물론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건 맞지만 수업하는 게 너무 재밌었기 때문에 목이 아픈 걸 빼고는 스트레스가 없었다. 스트레스 없고 재미도 있는데 돈까지 들어오다니!
난 요즘 말하는 MBTI로 극 I성향이다. 그 어떤 모임에도 나가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모임에는 늘 약속이 깨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막상 나가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 모임은 절대 나가지 말아야지 다짐해 버린다. 아마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저번에는 잘 놀아놓고.. 왜 갑자기 잠수?" 이런 느낌이다.
그런 내가 온라인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혹시 나는 일본인과 잘 맞는 건가? 온라인수업이라 그런 걸까?
수강생들은 수업을 리드하는 날 보고 항상 밝고 재미있는 성격으로 본다. 하지만 내 수업과 사생활은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아주 편한 소수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자리에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아주 좁다.
그런 내게 당황스러운 일이 연달아 생겨버렸다.
코로나가 끝나고 수강생들이 대거 한국여행에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선생님 저 한국에 가요! 우리 점심 먹어요!"
"아 네... 그래요? 시간이 맞으면 만나요!"
"선생님 드디어 한국에 가게 됐어요! 드디어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요!"
"우와! 네네... 만나요..."
여러 학생들에게 점심을 먹자는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내 성격상 난 거절도 못한다.
그럴듯한 핑계를 대야 하는데 사실 거짓말도 못한다.
사실 몇 년간 수업을 한 사이니까 편하게 만날만도 한데 어딘가 모르게 학생을 직접 만나는 게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이건 수강생을 만나는 게 싫다기보다는 약간의 긴장 상태에서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하는 그 자체의 행위가 나에게는 너무나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을 못하는 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달에 한두 번씩 수강생들을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한두 번 만남을 계속해보니 오프라인 만남은 생각보다 재밌고 즐거웠다.
온라인으로 몇 년을 수업을 했던 터라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처음 수업을 받기 전 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한국어로 말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뿌듯함도 밀려왔다.
'조금 불편해서 만나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그들의 만남을 기다리기도 한다. 얼마 전 출산을 하고 약간의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한국을 방문한 수강생과의 짧은 만남은 얼마나 달콤했는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일본인들의 특성상 만나면 늘 손을 무겁게 맛있는 선물을 가득 가지고 온다. 일본에서부터 나의 만남을 기대하며 각종 선물을 싸들고 오는 수강생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한국어 선생님과 수강생으로 만났지만 나이가 비슷해서 친구처럼 되어버린 수강생들도 많다.
아마 이들은 내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하고, 집에서만 지내길 좋아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이 직업은 나를 세상 밖으로 이끌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아무리 즐겁대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이런 약속을 절대 잡지 않는다. 역시 난 집이 제일 좋은 집순이임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