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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여러 개인 시대

N잡러가 된 이유

by 해원

최근 'N잡러'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N잡러는 수를 뜻하는 'Number'와 직업을 뜻하는 '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er'이 합쳐진 신조어다.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투잡을 넘어선 쓰리잡, 포잡 등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N잡은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파이어족이나 디지털 노마드, 디지털 파일 등과 맞물려 더욱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N잡으로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모티콘을 제작하거나 크몽이나 클래스101 등 플랫폼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유튜브로 부가 수익을 올린다. 이외에도 책을 출간하거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한다.


약 7-8년 전 과거를 떠올려 보면 N잡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을뿐더러 N잡을 꿈꾸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만 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는 것을 생각했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본업 외에 사이드잡, 부업 등의 개념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기를 꿈꾸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해왔고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현재 나도 N잡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직장이라는 본업을 두고 부업을 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사이드잡을 병행하고 있기에 형태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하고 기업 대표님들이 주로 읽는 매체에 실리는 인터뷰 기사를 썼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 일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기에 회사 월급 정도만큼의 수입을 만들어야 했다.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찾아보며 먼저 정해둔 '희망 근로 조건'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일이 눈에 띄면 지원했다. '재택근무'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일은 대체로 '교육업' 분야였다. 온라인 형태의 화상 교육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학생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직업의 형태나 수도 달라졌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화상 교육 서비스의 강사 채용에 지원했다. 5-13세 대상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화상 독서 교육 서비스의 선생님이었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기에 집에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평소 다독가는 아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시절 교육 봉사 활동과 영어학원 조교 선생님으로 일한 경험 덕분인지 아이들을 대하고 가르치는 일도 친숙했다. 흥미와 적성 면에서 본다면 나와 적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지원 후 다행히도 면접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면접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관은 나의 지난 이력과 지원 동기, 앞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포부 같은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질문했고 그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답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기본적인 인성이나 자질 같은 것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장기근속할 수 있는 선생님을 원한다고 했다.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나 강사를 관리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것 같았다.


사실 얼마나 오래 일할지 나조차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으나 면접관이 어떤 대답을 원하고 질문을 하는지 의도를 인지한 이상 원하는 대답을 하는 것이 맞았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친근하고 재밌게 수업할 수 있으며 적성에 맞는 일이기에 오래 일할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다. 면접관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합격하게 된다면 참여해야 하는 교육 일정을 알려주었고 면접은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며칠 후 나는 다행스럽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고 4일간의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루 7시간씩 진행된 교육은 꽤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실시간 강의를 진행할 때 사용해야 하는 플랫폼, 교사 사이트, 학생과 학부모 응대 방법, 학부모 상당 기법 등 구체적인 내용으로 교육은 구성되어 있어 나름대로 알찬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면서는 행정, 기획 업무를 주로 해왔었는데 강사로서 필요한 역량에 대한 교육이 흥미롭기도 했다. 교육을 이수한 후 나는 독서 지도 온라인 수업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수업 첫 주, 아이들과 처음으로 대면해 인사를 나누고 화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당연히 그랬겠지만 그 나이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상 수업의 특성상 학생과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게 어려웠고 간혹 수업 참여를 거부하거나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나름의 고충은 항상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더 크게 느끼고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여러 번 직업을 바꾸고 처음 하는 일을 경험할 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기 마련인데 소모적인 일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변화에서 활력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된 변화를 겪으면서도 변화의 흐름에 스스로를 맡긴 채 적응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업의 변화를 맞이하고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하면서 얻는 장점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줄곧 하게 되면 그 분야에 대한 숙련도와 전문성이 높아진다. 그 시간이 쌓였을 때 회사에서 인정받고 업계에서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강의나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 후배 양성에 힘을 쏟을 수도 있다. 더불어 연차가 높아질수록 안정감과 연봉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고 연륜이 쌓이는 만큼 그 외에는 잘 알기 어렵다. 이는 달리 말하면 회사 타이틀을 떼고 회사 밖에 나갔을 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며 성과를 창출하는 것과 회사 밖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다.


반면 직업이나 일의 변화가 잦았을 때는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을 쌓기 어려울 수 있으나 다양한 일을 경험함으로써 얻는 스킬이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업무에서 기획과 실행 역량을 쌓을 수 있을 것이고, 프리랜서로 자신의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한 PPT나 상세페이지 제작 등 홍보, 마케팅 역량을 기를 수 있다. 강사로서는 강의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고객 관리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역량들은 회사 밖에 나왔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으로 연결되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Connecting the Dots (커넥팅 더 닷)'은 말 그대로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것이다. 살면서 보고 겪고, 살펴보고 공부하고 하는 모든 것들을 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문성의 크기가 점의 크기와 비례한다면,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이 적은 그저 관심 있는 분야들은 점의 개수와 비례할 것이다.






한 영역에 수년에서 수십 년간 집중해서 전문가를 넘어선 장인이 되는 시대가 있었고, 여전히 그런 영역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영역파괴나 업계의 융합이 보편적으로 되었고 박학다식(달리 말하면 넓고 얕은 지식)의 컨셉이 유용하게 쓰이거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스티브잡스는 '걸어온 길(점)을 돌아봐야만 미래와 언젠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믿었던 직관과 운명이 절대로 배신하지 않고 변화를 만들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미래에 무슨 역할을 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거의 점들이 서로 연결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점의 개수가 많을수록 창의적인 선과 융합의 선을 그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우연히 그려온 점들이 지금의 나를 N잡러로 이끌게 되었다. N잡을 통해 부가적인 수입을 올리고자 하는 요즘 직장인들의 N잡의 이유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나의 N잡은 시작되었다. 물론 나도 여러 일을 하면서 수입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N잡의 시작은 여러 일들로 월급에 버금가는 수입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이 중 어떤 일이 주 수입원으로 자리 잡게 되거나 그러한 일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원래 N잡의 의미대로 일을 이어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점이 그려지기도, 있던 점이 커지기도 하는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넓게 파는 노력이 깊게 파는 지름길이 될 것이고, 내가 걸어온 길의 점들이 언젠가 미래의 점과 만나서 그어지는 훌륭한 선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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