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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Dec 29. 2023

스타트업의 점심시간

스타트업 근무일지 #4

지금까지 2번의 이직과 2곳의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첫 번째 스타트업은 IT 교육 기업, 두 번째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이었다. 두 곳의 스타트업의 점심시간에 대해 느낀 점을 써보려 한다. 스타트업 점심시간? 다 비슷하지 않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대개 스타트업은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점심시간도 대체로 비슷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느낀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아닌 일반 회사의 점심시간과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 지도 얘기해 보겠다.


내 경우엔 첫 직장생활을 공기업에서 시작했기에 통상 얘기하는 조금은 보수적인 기업의 점심시간은 함께 근무하는 팀끼리 먹는 경우가 많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팀장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팀원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이때의 분위기는 조금 과장해서 '묵언수행'이랄까.


구내식당이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어선지 한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이야길 하면 다른 테이블에서 들리는 경우가 많고 밥을 먹으면서 상사와 이야기를 많은 나누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구내식당에서 팀원들과 밥을 먹느냐? 또 그건 아니다. 점심회식이 있거나 외식을 하고 싶으면 팀 전체가 나가서 먹고 들어오기도 하고 동기들과 점심 약속이 있으면 자유롭게 나가서 먹고 들어와도 되는 분위기이다. 어디까지나 비중으로 따지자면 팀 전체가 함께 먹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첫 번째 스타트업의 점심시간은 어땠을까. 공기업에서 근무하다 스타트업으로 처음 이직했을 때 두 곳의 조직문화는 정반대라고 느꼈다. 다소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에 있다가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를 경험하니 그야말로 신.세.계. 


스타트업에서의 생활은 일을 비롯해서 모든 것이 '자율과 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의지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행동하는 권리를 얻는 대신, 그에 마땅한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책임이었다. 점심시간도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이었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자신의 업무 스케줄에 따라 즉, 오전에 화상회의가 있거나 외부 미팅이 있는 경우라면 오전 시간은 재택근무를 하고 오후에 회사로 출근해서 근무해도 괜찮았다. 


오전 재택근무를 하니 처음에는 마치 오전 반차를 낸 기분이 들어 '아, 이렇게 자율성이 보장되는 곳이 스타트업이지'라고 생각하며 꽤 만족스러웠다.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는 것을 얼마 가지 않아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럼 식사를 집에서 하고 오후 1시까지 출근을 해서 업무를 봐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면에서 스타트업의 장점임은 분명했다.


또 한 가지는 점심시간을 조금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강남의 공유 오피스에 위치해 있었던지라 점심시간에 식당가로 나가면 어딜 가나 직장인들이 줄을 지어 서서 밥을 먹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른 시간에 식사하러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사람이 많지만 12시 땡 하면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빨라야 11시 50분에 나오곤 했었는데 스타트업에서는 훨씬 일찍 식사할 수 있어서 사실 좋을 때도 많았다. 내가 다닌 곳은 자율 재택근무였기 때문에 같은 팀이더라도 날마다 회사에 출근하는 팀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날 함께 출근한 팀원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미리 언제 같이 출근하자고 약속을 정해두는 경우도 많았다. 


아, 그리고 공유 오피스의 지점이 다양하게 있어 여러 곳의 공유 오피스를 이용해 볼 수도 있었다. 지점 근처의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다시금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스타트업 점심시간의 장점이 꽤나 많았다. 그때 당시 함께 일했던 팀원들과 친밀하게 지냈기에 더 좋은 기억이 많이 나는 것 같다. 






세 번째 푸드테크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1차 패치가 된 상태라 자유로운 분위기가 제법 익숙했다. 자유로운 만큼 모두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임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타트업은 생존을 위한 성장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그러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장지향형 직원들이 많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모를 자극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바꿔 말하면 워라밸보다는 워크의 비중이 훨씬 많은 생활 패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사람이다 보니 적절한 휴식이 필요한 법인데 스스로 일과 삶의 비중을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면 힘든 생활이 될 수도 있다. 단 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더 빨리 지치는 느낌도 들 수 있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이곳의 점심시간은 자유로운 것은 물론, 자율성을 넘어서 가끔 가다 '군중 속의 고독'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왜 그런고 하니 같은 팀이라고 해서 팀끼리 식사를 함께 하는 문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약속이 있거나 업무 차 미팅 겸 식사가 없는 날이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날도 종종 생겼다. 물론 회의실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시켜 먹는 날도 있었다. 이전 스타트업에서는 자율성 속에서도 팀끼리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기에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평소에는 혼밥을 잘했지만 회사에 출근해서 혼밥을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느껴졌다. 항상 동료들이 있었기에 나에게는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처음이 어렵지 어쩌다 보니 하루, 이틀 혼밥하는 날이 늘면서 어느 순간 이 또한 편하게 느껴졌다. 약속이 없으면 어떤 날은 회사 근처 샐러드 맛집에서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비 오는 날엔 칼국수를, 한식이 먹고 싶을 땐 한식 뷔페에 가기도 했다. 군중 속의 고독감이 느껴지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밥을 먹으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며, 온전히 그 1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일찍 끝내고 일을 좀 더 하거나 여유롭게 커피를 내려 쉬기도 했다. 


그렇게 커피를 한 잔 하고 오후 근무를 시작하면 재충전이 된 기분으로 업무를 시작한다는 느낌도 좋았다. 회사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점심시간 문화는 나와 잘 맞았다. 아마 많은 MZ세대들이, 어쩌면 윗분들도 오히려 더 좋아하실지도 모르겠다. 


스타트업은 젊은 직원들이 많다지만, 보통은 회사라는 곳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조직의 목표를 이루어가기 위해 모인 곳이다. 윗 세대들이라고 나이 어린 후배들이 마냥 편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 직장 경험을 떠올려보면 점점 젊은 직원들의 비율이 많아지면서 차장, 부장급 선배님들이 젊은 직원들에게 많이 맞춰주려고도 하시고 속된 말로, 눈치를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혹여나 발생할지도 모를 기분 상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초에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그 세대교체라는 것의 과도기 단계라 중간중간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 겪어야 할 일이라면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본다. 언제까지나 나이와 직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후배들을 무시하거나 직원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 회사의 조직문화도 건강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기식의 명목상, 표면적으로만이 아니라 그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조직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관이 모여 하나의 조직문화를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조건 스타트업의 자율적인 문화가 좋다, 조직이라면 빠른 의사결정과 효율적인 일 처리를 위해 위계질서가 갖춰진 문화가 좋다는 식으로 이분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두 조직 모두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어떤 식의 변화가 되었든 하향식의 일방적인 변화를 강요하거나 급진적인 변화가 아닌 조직원 모두가 동의하고 수용하여 실행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소한,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우리 조직에서는 어떤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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