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서로 조금씩 알아가던 연애 초반, 계절은 어느새 한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둘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거 좋아해서 부산에서 아내를 차에 태우고 언양까지 가서 불고기를 사 먹었다.
치아가 안 좋아서 다른 고기는 잘 못 드시지만 언양불고기는 야들야들해서 잘 드시던 아버지 덕에 몇 번 갔던 곳이 기억났다. 그 많은 불고기 가게 중에 제법 익숙한 가게로 들어가서 맛있게 먹고 아내에게 점수도 따서 나왔다.
문제는 아내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언양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에 네비 설정을 잘 못한 바람에 국도로 빠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네비는 자꾸 외진 산으로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앙선도 없고 급기야 눈으로 덮인 오프로드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네비는 산 정상을 넘어가라고 단호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산너머 리프트가 움직이고 있는 걸로 봐선 양산 에덴밸리 스키장 근처였던 것 같다.)
부산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했던가... 언양에 갈 때는 고속도로로 금방 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왜 이 모양인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뭔가에 씌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슬슬 아내는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이제 산길에는 야생동물 발자국만 눈길 위에 간간히 보일 뿐이어서 긴장도 됐다. 시야가 좁아지고 괄약근도 긴장했다.
연애 초반인데.....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도 없는 눈 길 위에 차를 세우고 나는 "잠깐..."이라며 아내에게 말도 다 못 끝내고 후다닥 차 문을 열고 아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의 과민한 대장이 반란을 일으켰다.
얼마가 지났을까 차가운 눈 밭에서 급한 불을 끄게 된 내 표정은 한층 여유를 되찾았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굉장히 밀려드는 수치심을 숨기며 네비에 귀신이 씌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는 다시 오던 길을 돌아 나와 가까운 톨게이트로 진입했다.
그때 네비는 왜 국도로 가라고 길안내를 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불고기로 점수 겨우 땄는데 눈 밭의 똥 사건은 아직도 처가 식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단골 안주거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