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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an 16. 2024

친구와의 밤낚시

얼마 전 친한 친구랑 카톡을 주고받다가 만난 지도 오래된 것 같은데 주말에 한 번 시간 맞춰서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처자식이 있는 40대 가장입니다. 주말 낮에 친구를 만나기에는 제약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우선 제 주변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주말 낮에 보기가 힘듭니다. 아이들과 어디 가야 하거나 와이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일요일 아침 6시에 만나서 캐치볼을 하고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깨면 그때부터 아이들과의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이번에 만나자고 한 친구는 아이들이 잘 때 밤에 볼락 낚시를 간다는군요. 낚시... 제가 초밥집 장사를 6년간 했지만 낚시는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친구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저한테 연락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사이 저는 아내에게 친구랑 낚시 다녀온다는 허락을 받아냈고요.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 친구로부터 출발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한테 장비가 다 있으니 몸만 오라더군요. 그래도 혹시 몰라 저는 최대한 옷을 두껍게 입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서 그 친구 집으로 차를 끌고 갔습니다.


친구 집 근처 공터에 주차를 하고 친구 차에 올라탔습니다. 여러 후보지들 중 거제로 가자는 친구의 말에 '아... 좀 멀리 가네?' 싶었는데 대략 1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정이 조금 넘었을까?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낚시 짐을 챙겼는데 추위 때문에 옷을 굉장히 두텁게 입은 터라 제 몸이 뒤뚱거렸습니다. 친구는 익숙한 듯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앞장섰고 저는 친구 꽁무니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방파제가 있는 곳에는 이미 다른 분들이 와서 낚시를 하고 계셔서 우리는 반대편 갯바위로 갔습니다. 날쌘 몸놀림으로 절벽 같은 갯바위를 요령껏 잘 오르는 친구를 보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염소같이 잘 타는군.' 이러면서 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낑낑대며 따라 올라갔습니다. 마치 영화 시실리 2km에서 임창정 님과 우현님이 애드립으로 웃음을 줬던 그 장면처럼 말이죠.


친구가 특정 포인트에 다다랐을 때 짐을 풀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세팅해 주는 낚싯대로 어설프게나마 캐스팅(낚싯대를 휘둘러 던짐)을 했습니다. 친구도 다른 곳에 자리 잡고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익숙한 듯 제가 던진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미끼를 던졌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추위에 덜덜 떨어가며 쉬지 않고 던졌건만 그렇게 기다리던 입질은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흥미가 없던 낚시였는데 입질마저 없으니 저는 좀이 쑤셔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친구와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보다 많이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 했습니다.


낚시가 취미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통영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친구는 낚시를 해왔었는데 최근에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밤낚시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 집에서는 이러저러한 상황인데 우리 집 상황은 어떠냐고 묻길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하니 뭔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안도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집에서 아빠로서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었나 봅니다. 또한 한창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닌 거 같더군요. 그런 스트레스를 풀려고 낚시를 하는 거였는데 입질이 아예 없다니... 더 스트레스가 쌓였겠죠.


장소도 이래저래 옮겨봤지만 친구와 제가 손에 쥔 거라고는 어린 볼락 1마리씩이었습니다. 둘 다 10cm가 될락 말락 하는 크기여서 잡자마자 놓아주었습니다. 그나마 입질 한 번이라도 느꼈으니 저는 됐다 싶었는데 친구는 왕복 2만 원이나 하는 거가대교 통행료가 아까워 본전 뽑고 싶다고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고 했습니다. 그때가 새벽 4시 반쯤이었으니 제 눈이 이미 풀릴 대로 풀려 있었습니다.


차로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파도가 잔잔한 바다가 보이는 한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저는 조수석에서 그만 곯아떨어져버렸고 친구는 혼자 1시간 여를 잔잔한 바다와 씨름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결과는 허탕.


아쉬워하는 친구 입에 샌드위치를 구겨 넣어주고 에너지 드링크를 다 마신 뒤 우리는 해가 뜨기 직전에 복귀를 했습니다. 갯바위를 오를 때 어디에 걸렸는지 제 점퍼는 찢어져있더군요. 한 벌 밖에 없는 두꺼운 파카였는데... 그래도 이렇게 친구와 오랫동안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라 좋았습니다. 대신 낚시는 저랑은 안 맞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이 됐고 다음번에는 커피숍에서 만날 것을 다짐했습니다.


낚시를 하고 온 뒤 저는 점심때까지 옴짝달싹 못하고 제 방에서 뻗어버렸습니다. 마침 아이들도 늦잠을 자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평소라면 어딜 갈까 고민이 되는 일요일 오후였는데 이 날 만큼은 모두가 집에서 뒹굴뒹굴 거렸습니다.


아이들도 어딜 가야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집에서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뭘 하든 엄마, 아빠와 함께하니까 좋아하는 거였을까요? 아무튼 저는 모처럼 일요일에 늘어지게 자고 먹고 뒹굴거렸습니다.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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