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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Feb 05. 2024

삶에 집중력이 떨어진 순간

최근에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병원 신세를 진적이 있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머리에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상처가 아물 동안 저는 뭔가 멍한 느낌으로 계속 지냈습니다. 일에 집중도 안되고 집에 와서도 말수가 많이 줄어들었죠.


처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되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었나 봅니다. 그렇게 상처가 난 곳에 봉합했던 실밥을 다 풀고 난 뒤에 또 사고가 터졌습니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 5분 전이었는데요. 작업을 마친 뒤에 사용하고 남은 재들을 절단기에 올려놓고 자르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퇴근 임박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내와 둘이서 늦은 밤 축구를 보며 소주 한 잔 기울일 생각에 들떠서였을까요. 두 손으로 잡고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절단기를 한 손으로 작업하다가 그만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잔재들이 튀어서 제 왼손을 강타하고 말았습니다. 장갑을 벗어보니 손은 금세 부어올랐고 피도 생각보다 많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부은 모양새가 골절 같아 보여서 서서히 아파오는 손을 부여잡고 공장장님이 태워주시는 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쇼크가 온 건지 몰라도 가는 동안 방송이 종료된 tv 화면처럼 멍해진 순간도 있어서 조금 당황했는데요. 다행히 옆에서 공장장님이 계속 말을 걸어주셔서 정신을 잃지 않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도 골절은 아니었고 인대가 찢어져서 곧바로 봉합수술을 했습니다. 2주 뒤에 실밥을 풀자는데 그때까지는 다친 손을 쓸 수가 없게 됐습니다.


* 하지만 저는 지금 붕대사이로 삐죽 나와있는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키보드의 자음을 치고 있네요. 다친 것들도 글감이라 생각하며 신나 하다니 저도 제정신은 아닌가 봅니다.



집에 가니 아내가 걱정 섞인 야단을 치더군요. 그리고 요새 너무 멍청하게 살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예전의 성실한 모습은 어디 갔냐고 나무라더라고요. 잠자코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뭔가 의욕이 많이 없어진 느낌이랄까요? 삶에 집중력이 떨어졌달까요? 그러다가 이런 사고가 생긴 게 아닐까요...


왜 이런 사고가 연달아 생기게 됐는지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느슨했던 내 인생에 긴장감을 심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이 들고요.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가 인생이 바뀌게 될 때 크게 아프게 된다던데 저 역시 뭔가 근사한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현상이라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몸이 불편한 걸 핑계로 모처럼 아내가 밥을 차려주고 머리도 감겨줘서 행복하기도 하네요. 이런 걸 자랑이라고 친구들한테 떠벌리니 다들 다친 게 자랑은 아니니까 아내에게 잘해주라고 충고하네요. 저 언제 철들까요? 이왕 철들기 전에 다 나으면 진짜 아내를 업고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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