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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Mar 02. 2024

공짜 점심은 없다.

스무 살에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뒤로 제가 지금까지 연을 이어온 이 중에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몇 명이 있는데요. 그중 20대 초반에 인생에서 가장 큰 곤경을 겪은 뒤로 대오각성하여 2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길을 멋지게 개척해 나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궁금해지는 그런 녀석이라고 확신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 자랑이냐고요? 맞기도 한데 오늘 말씀드릴 진짜 의도는 그게 아닙니다. 제가 인생의 바닥을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상실감에 허우적 댈 때 이따금씩 그와 전화 통화를 하며 마음을 다잡곤 하는데요. 그가 힘든 2~30대를 보낸 것이 안쓰럽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인생의 굴곡 중 밑바닥을 제 친구들 중에서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고 극복한 인생선배여서 안쓰러움의 이면에는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먼저 지나간 그의 발자국이 저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는 그의 조언과 충고는 책에서 알려주는 동기부여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조언과 충고를 말이 아닌 본인의 인생을 통해 직접 몸으로 보여줬던 거였죠.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사건에 휩싸이면서(사적인 영역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해 드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절망감에 빠져 20대의 절반 이상을 통째로 좌절과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구나 젊은 시절의 멘탈은 불완전하기 마련입니다. 청춘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더더욱 모래로 쌓은 성과도 같았습니다. 기껏 쌓아놓아도 누군가 밟고 지나가면 그 누군가의 발자국 깊이까지 파이게 되는 부실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 상태는 곧, 허물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여러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음을 저는 그때 왜 몰랐을까요?


그의 모래성을 누군가 짓밟고 지나갔습니다. 상실감이 컸지만 원래 깊이보다 더 깊게 파인 그 자리에 그는 산산이 부서지는 모래가 아닌 공구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헤어 나오는데 한참이 걸리긴 했지만 그는 눈앞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극복해 나가면서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저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사회초년생 딱지를 떼고 직장에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야 비로소 직장 생활의 출발점에 선 그였지만 취업 후 그의 성장 속도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본인 말로는 운이 좋게도 첫 직장에서 좋은 멘토들을 많이 만난 것이 성장동력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성장은 그렇게 차려진 밥상을 골고루 먹는 자에게만 돌아가는 법이죠. 그는 편식 없이 골고루 먹고 성장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늦은 시간 전화를 할 때면 늘 독서실이었습니다.


최단기간 고속승진을 이루었고 이직 후에는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며 그의 시선은 지금 세계를 향해 있습니다. 과거의 충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개인사업에는 전혀 생각이 없다지만 그는 그가 속한 회사의 이름으로 거대한 사업을 하고 있는 걸 모르고 있나 봅니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아시는 분이라면 '등가교환'이라는 단어를 아시겠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는 어찌 보면 경제학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 단어가 삶의 하루, 한 달, 1년, 10년, 나아가 인생 전체에도 통용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 친구의 20대를 지켜보고, 그리고 지금의 제 자신을 바라보니 인생의 큰 등가교환의 시기를 이제야 맞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값비싼 인생 수업료인 셈인데요. 인생을 24시간으로 비춰볼 때 제 인생의 시간이 딱 점심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다가, 점심때 밖에 나가 온갖 몸에 좋다는 약재를 넣어만든 맛없고 비싼 음식을 사 먹은 기분이 드네요. 맛이 있든 없든 공짜 점심은 아니었습니다. 몸에 좋다고 하니 기꺼이 음식값은 지불해야 하고요.


No free lunch. 


어쨌든 소화시켜서 멋진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은 가족들과 함께 맛있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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