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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걷는 산책길

by 김주원

이른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잠시 비가 그치는 것을 확인하고 우산도 없이 츄리닝을 입은 채 집 밖을 나섰습니다. 비가 점점 더 거세질 줄 알았으면 나올 생각도 못했을 텐데 마침 나오려고 마음먹은 그 타이밍에는 비가 잠시 그치고 있더군요.


40여 분 정도 걸으니 빗방울은 좀 거세졌습니다. 데워진 몸이 식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느낌도 들었고요. 아직 세상이 깨어나기 전인 시간이라 상쾌한 새벽의 느낌도 들었습니다. 천천히도 걸었다가 빨리도 뛰었다가 하면서 이 기분을 즐겼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예전 퇴근길에도 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나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게, 비가 선사하는 상쾌함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비를 맞고 난 뒤에 딱히 해야 할 일정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집에 가서 씻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한몫했습니다.


안 가봤던 곳,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의 골목 구석구석을 탐험가마냥, 혹은 동네 토박이 똥개마냥 돌아다니며 제 눈에 담았습니다. 김해의 한 작은 동네에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고 산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걸으면서 생소한 골목이 나오다니 신기했습니다.


같은 동네라도 햇빛 쨍쨍한 날에 제 눈에 담기는 풍경이 다르고 비 오는 날의 풍경이 또 달라 보이는 건 아마도 제 기분에 따른 거겠죠.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이곳은 내가 느끼는 것에 따라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이른 아침, 비를 맞으면서 걸어야겠다는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걷다 보니 비가 거세졌고 우산을 안 챙겨 온 저로서는 비를 맞고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까짓 거 비 좀 맞으면 어떻습니까? 뜨거워진 내 몸을 한 번쯤은 차분하게 식혀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대신 잘 때는 판콜 한 병 마시고 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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