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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09. 2023

그것은 완전한 애도였다

주저흔#8

"그럼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군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신 건가요?"

상담사가 잠시 제 진술을 멈춰 세웠습니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경험을 진술할 때 그녀 역시 함께 기뻐해주었거든요. 제대 이후에 제 인생에 어떤 반전이 있었을까를 은근 기대하는 표정이었어요.

"사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바로 이때부터였어요."

전 그녀 앞에서 인생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점점 하향화 되던 선은 검정고시 합격 이후 살짝 반등했다가, 군 제대 이후에 수직으로 고꾸라쳤습니다. 부모와의 갈등, 학교 밖 청소년의 경험은 앞으로 이어질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연락 줄 테니까 일단 돌아가세요."

대학가 근처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제게 의점이라는 곳은 담배를 사거나 급 일용품을 구매할 때나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잠시 머물거나 스쳐 지나가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직장의 개념으로 다가갈 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대 중반, 이제는 이곳도 힘껏 두드리지 않으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공간이 돼버렸죠.

"군대에 가면 사람 좀 돼서 돌아오겠지!"라던 아버지와 형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 날카로운 조각은 다시 가족들의 가슴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군대에서 느낀 바도 많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켤레씩 선임들의 구두를 닦으면서 '그동안 우리 아버지 구두 한번 닦아드리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무반에서 쏟아져 나오는 양말과 속옷을 손빨래를 하면서는 '나란 놈도 아들이라고 우리 엄마는 내 속옷을 손빨래해주셨는데.'라는 생각도 처음으로 하게 됐습니다. 저는 잠시 멈췄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서있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저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고 저는 어느새 동떨어진 곳에 홀로 덩그러니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면접결과를 알리는 진동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채용문자가 왔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전에도 몇 번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무엇을 하든 두 달 이상을 지 못했죠. 어쩌면 전 채용연락이 오지 않길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노력은 했으나 빌어먹을 세상이 날 받아주지 않아!'라고 잘 포장시켜 세상 탓으로, 남 탓으로 전가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르죠. 


어느덧 군대를 제대한 지 4년이 지났고 학교를 자퇴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왔던 경험이 제 삶에 씨앗을 심어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매는 곧바로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토양과 공기, 햇볕이 씨앗을 비춰줘야 열매도 활짝 필텐데, 어두운 그늘에 몰아넣은 제 씨앗은 꽤 오랫동안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죠.

청소년기에 함께 뛰어 놓았던 동창들의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 들려왔습니다. 대학교 MT에서 벌어진 로맨틱 소설 같은 이야기들, 대기업 인턴으로 취업하고 회식자리에서 찍어온 사진, 세상에 일찍 자리 잡은 누군가는 예쁜 꽃이 새겨진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잠을 아끼며 수능을 준비하고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노력한 대가였던 것이겠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말라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전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앞으로도 관계와 환경, 문화, 제도에서 해방되어 독야청청의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동창들의 근황이 오고 가던 틈 사이에서 누군가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단순히 잘 지내냐는 인사를 건넨 것이었지만 그 질문이 왜 그리도 날카롭게 느껴졌을까요.

"나야 그냥...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소주나 한잔 먹게 나오라며 그들이 건넨 손을 붙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사람이 싫어서 고립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는 정말 새까맣게 탈 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았거든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게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죠. 저도 그들과 어울려 취업준비도 하고 싶었고 직장에 들어가 각자의 상사욕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력서 A4용지는 제게 운동장처럼 게 느껴졌고 집어넣을 것이라곤 '검정고시 졸업'과 '군 제대'라는 두줄의 이력밖에는 없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셨네요? 제대하곤 뭐 하셨어요?"

경력사항은 텅 비었습니다. 제대 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뭘 했냐는 물음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요.

"그게... 그냥 이것저것..."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고개가 땅으로 떨궈졌습니다. 바닥 타일에 그어져 있는 밑금들을 따라 멍하니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가 집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부자리에 누웠죠. 사각 모니터 프레임 밖의 세상에서 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습니다.  

절망감보다 무서운 것이 무망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 말합니다. 제 마음도 점점 닫혔습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더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증명해내지 못한 제 말은 누구 귓가에도 닿지 않았죠. 저의 근황은 도마 위에 올라가 자근자근 썰려 누군가들의 술자리에서 좋은 안주거리가 됐습니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친구 녀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모인 축하자리에서, 저를 부를지 말지를 고민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그것은 동정을 넘어선 애도에 가까웠니다. '완전히 끝나버렸어!'라는 애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쌓여갔습니다. 저 사람이 날 어떻게 바라볼까. 눈빛을 마주하기가 힘들어지고 목소리는 작아졌습니다. 학창 시절 정을 줄만하면 전학을 떠났던 저였기에 이별이 더욱 익숙해져 갑니다. 지만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왜 이리도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현자는 말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으라고. 저는 내려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가져본 사람만이 내려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제 욕심일까요? 하지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뜻을 품은 이 욕심마저도 내려놓는다면, 저는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띄고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방에 수북이 쌓여있는 쓰레기들. 먼저 이 쓰레기부터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저를, 이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과 구분하고 싶었습니다. 빨간 국물자국이 얼룩진 컵라면용기와 우유갑, 플라스틱 밀폐용기들부터 비닐봉지에 담았습니다. 이부자리를 제외한 모든 곳을 주워 담고 쓸고 닦았습니다. 도 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당장 쓰레기 치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학교로, 사회로, 가정으로, 각자가 분리되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전 분리수거되지 않은 제 방에 쓰레기들처럼 널브러져 있어요. 방 문 밖으로는 엄마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고 휴대전화에서는 동창들의 성취가 경쟁하듯 진동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는 방 문을 잠그지 못하도록 문고리를 부셔놓았어요. 숨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제 몸 하나 숨겨줄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웅크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제 숨구멍은 보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제가 죽었다고 생각하길 바랐습니다.


(뒷면)

제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그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 올 수 있었냐고. 저도 어떤 계기가 되어 터널밖으로 걸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이 어둠으로부터 나오기 위해 시작한 첫 행위는 바로 '쓰레기 치우기'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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