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투엉 쇼핑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2018.1.14
“걸~ 익스큐즈 미, 걸~”
나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랐을 그녀는 나를 ‘걸’이라 불렀다.
아무것도 아닌데 순간 꿈을 꾼 것처럼 깊이 관찰하고 탐색하느라 멍해질 때가 있다.
브리즈번 투엉 쇼핑몰에 있는 과일가게가 너무 예뻐서, 너무 신기해서 또다시 멍해졌다.
엄마에게 이걸 뭐라 설명해주지? 하다가 현실을 깜빡 놓쳐버렸다.
좁은 선반 사이로 이동 카트를 밀고 가던 점원이 난처해하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황급히 “아.... 쏘리”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낮은 자존감은 그새 고개를 치켜들고 말한다.
‘우먼이 아니라 걸이라고 불렀어’
말간 하늘에서 난데없이 비가 내렸다
마른빨래는 도로 젖어버렸을 것이다
100g의 베이컨과 2L의 물을 들고 두 번의 버스를 탔다
버스를 운전하는 중년 여성은 성격이 급했다
두 번의 클랙션을 울리며 구부러진 길을 달렸다
서구 여자들은 얇은 눈썹을 그렸고
동양 여자들은 굵고 짙은 아이라인을 그렸다
중동 여자들은 굳은 얼굴을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버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내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 내가 서구 여자, 중동 여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사실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
내 안에 굳은 편견과 선입견들은 내 안에서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까?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생각보다 더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입술 색이 너무 진한 것 같다.
가끔 맘대로 웃어지지 않아, 급하게 입만 웃거나 “땡큐”해야 하는데 “헬로”라고 할 때가 있다.
그건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때론
너무 미안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너무 슬퍼서 화를 내기도 하고
너무 급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오롯이 내 시간을 갖고 싶어서 화를 내기도 하고
그냥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일그러진 감정의 표출이 얼굴만은 아니겠지, 탄산음료에 꽂은 빨대를 쪽쪽 빨며 생각한다.
너그러운 어른의 모습을 떠올린다.
친해지고 싶고 닮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진 못할 것 같다. 생각나는 부끄러운 기억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부끄러운 일들을 좀 더 줄여나가야지. 제발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썼다 지우는 글들, 떠올리다 덮어버리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제야 조금씩 서랍에서 먼지를 털어내 세상으로 꺼내보는 글들.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