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 사레에 들렸다

조용한 일식집에서 고추냉이가 기도로 들어갔다.

by 돋을볕

2021.11.30

친애하는 벗님과 식사 도중 와사비 사레에 들렸다. 초록색 수묵화가 인상적인 일식집이었다. 혼자 식사 중인 손님이 세명이었고 나와 벗님만 조용히 대화 중이었다. 벗님과 둘 만의 식사는 처음이라 조금 쑥스럽지만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내 잘못된 기류를 감지했다.


메뉴는 연어 덮밥! 초밥 위에 생 연어가 올려져 있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음식이었다. 동그랗게 올려진 연어 한가운데 생 고추냉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조그마한 간장 종지는 따로 나왔다. 부드럽고 싱싱한 연어에 와사비를 살짝 올렸다. 숟가락에 밥을 올리고 그 위에 연어를 얹었다. 간장을 살짝 찍어 입안에 넣는 순간 혓바닥에서부터 찌릿한 감각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와사비를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이내 불이 나올 듯 뜨거운 열감과 매콤한 와사비 향이 콧 속에서 폭발했다. 콧구멍이 넓어져서 열 평은 될 것처럼 느껴졌다. 용이 불을 뿜을 때 이런 고통을 감내하지 않았을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억지로 연어초밥을 꿀꺽 삼켰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처 몰랐다. 이 일이 불러 올 더 큰 참사를.



식도를 타고 내려가야 할 연어초밥이 길을 잘못 들었다. 억지로 삼킨 와사비가 기도로 들어갔다.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 재채기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기침이 마구 나왔다. 그 조용하고 오붓한 식당에서, 벗님과 처음 식사하는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따가운 고추냉이가 식도를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 기침이 나오는 입을 옷소매로 막고 식당 문으로 향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컥컥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식당으로 들어오려는 여성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여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추운 날씨에 외투도 안 입고, 마스크도 안 쓰고, 눈물을 흘리며 식당 밖으로 급하게 나오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옆에는 검은색 오토바이에 검은색 옷, 헬멧까지 검은색을 쓰고 있는 음식 배달원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담배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다. 급하게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가 심호흡을 해 보았다.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컥컥 대며 음식을 뱉어보려고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람이 무호흡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던데, 이대로 구급차에 실려가면 어떡하지? 의사가 물어보면 '와사비 사레'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코로도, 입으로도 숨을 쉴 수 없는 이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체면만 차리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우스꽝스럽게 다가왔다.


그때, 식당 안에 있던 벗님이 나왔다.

"... 괜찮으세요? 등이라도 두드려 드릴까요?"

착한 벗님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눈물과 콧물과 침이 범벅된 얼굴로 대답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얄미운 와사비! 너무한 와사비! 할 수 없이 손으로만 거절의 의사 표현을 했다.

"혹시 연어 알레르기 있으세요? 무슨 안 좋은 사연이라도...?"


살면서 음식 알레르기는 겪어 보지 못했다. 나 같으면 이런 상황의 친구가 있으면, 너무 웃겨서 말도 잘 못 걸었을 것 같은데 벗님이 정말 착하다고 생각했다. 벗님에게 간신히 "와사비가..... 사레.... 컥컥"하고 대답했다. 다행히 언어 능력이 우수한 벗님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도와주고 싶어 하는 벗님을 식당 안으로 들여보내고 기도 안에서 와사비가 녹거나 내려가길 기다렸다. 쿨럭대고 켁켁대고 눈물을 마구 흘리면서...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골목길이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까만 밤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숨을 정상적으로 쉴 수 있었다. 기도에 약간의 이물감이 남아 있긴 했지만 호흡에 이상은 없었다. 식당으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벗님은 내가 연어에 슬픈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며 배를 움켜쥐었다. 조용한 일식집 안에서 벗님과 내 웃음소리가 소리 죽여 퍼지고 있었다.


와사비 사레. 으,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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