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외침, 오라이!
나는 달린다. 경직된 어깨와 핸들에 닿는 무릎. 뻣뻣하게 접힌 팔과 움켜 진 두 손. 백미러와 내비게이션, 신호등 사이를 정처 없이 헤매는 흔들리는 눈동자. 8차선 도로에서 유턴을 하기 위해 엑셀과 브레이크를 분주하게 오가며 덜컹덜컹 차를 비튼다. 뒤에 다른 차가 보이면 다시 쫓기듯 엑셀을 밟는다. 내 뒤에 차가 한 대도 안 보일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본다. 제발 먼저 가세요. 그렇게 도착한 고용지원센터. 주차장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 양옆으로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현실은 30cm, 마음속 거리는 3mm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들 사이를 지나 주차장에 들어서니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이중주차하고 기어는 중립, 사이드 브레이크는 풀어 놓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맞은편 차에 올라타는 남성. 내가 비켜줘야 수월하게 후진해서 나갈 위치에 차가 있다. ‘더이상 차를 움직일 수 없어요. 제발 알아서 나가주세요.’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앞차를 바라본다. 다행히 능숙하게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마침 옆자리에 자리가 나서 주차도 다시 한다.
집에서 고용지원센터까지 걸리는 20분이 두 시간처럼 느껴진다. 운전은 늘 긴장되지만 어디든 갈 수 있게 해주는 날개와 같다. 운전을 하면서 느끼는 해방감이란!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란! 하지만 날개는 호락호락하게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필페이는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는 또 어떻게 가나 걱정하며 실업급여 신청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건이 터졌다. 내 차 뒤편에 누군가 이중주차를 해놓았다. 그 넓지만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간격을 도저히 통과해서 나올 자신이 없었다. 예전에 이중주차된 차량을 혼자 밀다가 차량과 차량 사이에 몸이 끼인 적이 있어서 차를 밀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긴급연락처도 없는 그 차의 운전자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간만 지루하게 흐를 뿐 도통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주차장을 배회하며 어딘가 있을 ‘베스트 드라이버’를 찾았다. 그때 고용센터 쪽문에서 나오는 파란 티를 입은 누군가 보였다. 주차장을 향해 힘차게 걸어오는 파란 티를 입은 청년,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순간 멈칫했지만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으로 도움을 청했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 혹시 차 좀 빼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초보운전 이라서요.”
“네. 할 수 있어요, 누나.”
누나, 라는 말에 다시 한번 흠칫했지만 모국어가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잘 못해서 그런 걸 텐데 당황하면 안되지, 스스로 마음을 꾸짖었다. 파란 티 남성은 정말 친절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정말 친절하게, 조수석에.
“아, 그게 아니라……. 직접 운전해서 빼주실 수 있는지 여쭤본 건데……”
“네. 할 수 있어요, 누나.”
파란 티 남성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나 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옆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후진으로 바꿔야 해요.”
“네, 할 수 있어요, 누나.”
내가 운전 강사가 된 기분이었다. 도로주행 때 옆자리에 앉아 “지금!”, “깜빡이!”를 외치던 강사님의 기분이 이러셨을까? 결국 파란 티 남성은 내 차를 빼주지 못했다. 내가 혼자 할 때보다 더 큰 불안감만 선사해주었다.
“그냥 제가 할게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누나.”
이번에도 파란 티 남성은 친절한 얼굴로 선뜻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파란 티 남성에게 운전을 가르치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나으리라. 간신히 파란 티 남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운전석을 되찾았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보며 나가야 한담?’ 수척해진 눈동자로 한 뼘씩 차를 빼냈다. 한 뼘 덜컹, 또 한 뼘 덜컹.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차를 버리고 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보험사 긴급출동서비스를 부르기 직전에 구세주 같은 얼굴로 우체국 택배 기사님이 나타났다. 배달일로 바쁘셨을 텐데 넓은 아량으로 먼저 나서서 뒤쪽에서 신호를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외침, 오라이!
차를 빼서 나오는데 다시 파란 티 남성을 만났다. 나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던 파란 티 청년. 그때의 진땀과 사람들의 호의가 아직도 선하다. 나도 누군가를 향해 힘껏 외쳐 줘야지, 오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