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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Sep 05. 2024

운동하면 다 될 줄 알았지

운동 초보의 4개월 차 후기

운동을 시작한 지 만 3개월이 조금 넘었다. 여성전용 헬스장 같은 곳을 다니고 있는데 하루 30~40분 정도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한 뒤엔 뻗어있기 일쑤였던 내 삶에 큰 변화였다.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집 안에서만 있으라면 있을 수 있는 왕 집순이인 내게 집밖으로 나가는 일을 자진해서 늘리고, 게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일 가서 운동을 하고 오는 일은 큰 결심이었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건 한평생 저체중을 벗어나본 적 없이 조금만 움직여도 골골대다가 에너지가 원자력 폭탄급인 아들 둘을 키우려니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주변에서 어린이 철인 3종경기를 권유할 정도로 넘치는 에너자이저들이다. 그에 반해 나는 벌써 운동을 3개월이나 했는데도 근력량이 늘지를 않는다.


  3개월 전에 유치원생인 둘째도 첫째가 다니는 태권도장에 등록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시간이 생겨 순환운동을 등록했다. 만 5세에 태권도라니,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었지만 작년부터 둘째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결국 친구와 함께 등록시키게 되었다. 해당 태권도장은 만 4세 아이들부터 다니고 있고 유치부 전용반이 따로 있어서 거의 유아전용 문화센터처럼 진행한다. 도장을 열 바퀴 달리고, 줄넘기를 몇십 분간 뛰고, 각종 뜀틀과 체력단련과 피구, 축구 등 품새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한다. 거기에 비타민 사탕과 뽑기와 시원한 슬러시와 떡볶이 파티, 영화 관람, 현장체험학습 등 육아 동반자나 다름없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는 둘째는 하루 한 시간의 이 행복을 전폭적으로 즐기다 온다.


  초등학생인 첫째에 이어 둘째도 머리카락이 땀에 엉겨 붙은 '땀쟁이 넝쿨'이다. 둘 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성취감에 절어 돌아온다. 첫째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태권도 관장님과 사범님들은 뱃속에 있던 둘째가 그새 이렇게 많이 커서 놀라고, 첫째만큼 어쩌면 더 체력이 좋다며 입을 벌린다.


  "꿀동이 동생 꽃동이 진짜 많이 컸어요. 완전 꼬꼬마 애기였는데. 태권도장에서 완전 날아다녀요. 첫째도 체력이 넘쳤는데 둘째는 더 한 것 같아요. 한 시간 동안 뛰어도 지치질 않아요. 태권도장에서 첫째는 '열정맨', 둘째는 '아이언맨'이라고 불러요."


  나처럼 마르고 비실한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힘세고 강인한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궁금하다. 태권도에서 운동을 하고 와서도 놀이터 가서 네 시간은 거뜬히 놀고, 아빠랑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몇십 킬로를 돌다오기도 한다. 이러니 여름방학 때 워터파크에 가서 아침부터 7시간을 놀고 폐장 호루라기가 들려와도 더 놀지 못해 아쉬워하는 기행이 이해가 간다. 이 아이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녀석들이다. 약한 엄마를 도와주자며 장바구니나 무거운 가방 들어주기, 자기 방과 침구류 정리, 빨래 개기 등을 도와줄 땐 힘센 아들들에게 감동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는 넘치는 아이들의 분출되는 에너지를 따라가기가 벅차고, 놀면 놀수록 뛰면 뛸수록 오히려 체력이 갱신되고 파워가 더 차오르는 것 같은 저 무한동력발전소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결국 나는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이들을 따라 놀이터 붙박이였던 나는 그 바통을 남편에게 넘겨주고 있다. 땡볕아래 뛰어다니며 축구하기, 수영장이나 대형온천 가서 몇 시간 물놀이하다 오기, 채집통 들고 매미 몇 십 마리 잡으러 다니기, 바닥분수에서 신나게 놀기, 집안에서 책으로 탑 쌓거나 각종 의자와 집기류를 이용해 집 만들기, 풍선 치기, 보드게임 몇 시간 하기 등등. 물론 이 모든 일은 토요일 단 하루 만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것 같은 둘째에게도 요즘 고민이 생겼다. 여름방학 동안 태권도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갔다 왔더니 같이 등록한 친구는 띠가 노란색으로 바뀌었는데, 자기만 여전히 흰띠라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기도 노란띠가 될 텐데 친한 친구의 띠 색이 바뀌니 신경이 쓰였나 보다. 나는 엉덩이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그랬구나. 꽃동이가 속상했겠네. 근데 엄마는 흰띠가 훨씬 더 멋져."


자신이 속상한걸 티 내기 위해 내 앞에서 뒤돌아 있던 둘째가 얼굴을 돌리고 진지하게 묻는다.

  "왜? 노란띠가 더 센 거잖아."


나는 곱슬거리는 꽃동이의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흰띠는 처음 시작하는 어린이라는 뜻이니까 멋진 결심을 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거잖아. 게다가 노란띠는 조금 있으면 꽃동이도 바뀌게 될 거지만, 흰띠는 평생 딱 한 번밖에 못 받아. 그러니 얼마나 특별해. 엄마는 꽃동이가 태권도 학원 끝나고 흰띠 메고 올 때마다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어. 정말 대단해!"


금세 기분이 좋아진 둘째는 자신감에 차올라 말한다.

  "히히. 맞아. 흰띠는 이제 나밖에 없어. 나는 흰띠인데도 오늘 줄넘기 엄청 많이 했어. 그런데 나 또 속상한 거 있었어."


무슨 일인지 되묻자, 둘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잇는다.

  "줄넘기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병아리반', 좀 더 잘하는 사람은 '참새반', 엄청 잘하는 사람은 '독수리반'인데 나는 '병아리반'이야. '독수리반'은 일곱 살 형님만 몇 명 있고 '참새반'이 많은데, 나도 잘해서 '참새반'되고 싶은데 계속 '병아리반'이야. 나도 엄청 잘하고 싶은데 너무 슬퍼."


  '병아리반'이라는 이름자체가 둘째와 찰떡같이 어울려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토닥여주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줄을 넘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대견하다고, 즐겁게 하다 보면 금방 '참새반'이 될 거라고, 그런데 엄마는 지금 꽃동이가 '병아리'반인 것도 정말 멋지다고.


태권도에서 줄넘기 하는 둘째. 날아라 병아리! 잘하고 있어, 병아리


  둘째를 위로하다 보니 내 마음도 뭉클해진다. 둘째에게 말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필요한 말로 다가온다. 운동을 시작할 땐 금세 근력량이 늘어서 무거운 것도 팍팍 들고, 식욕도 왕성해져서 밥도 잘 먹고, 자신감도 생기고 몸도 튼튼해져서 아픈 곳도 없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한 달에 한번 인바디 검사를 하는데 골격근량도, 체지방량도 거의 그대로다. 분명 처음엔 들지 못했던 기구를 움직이고 더 빨리 움직이며, 바른 자세로 하게 된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증명이 안된다. 운동 후의 개운함과 성취감은 있지만, 여전히 쉽게 피로하고 지치고 식욕이 없다. 운동한 지 오래된 나이 많은 분들의 연합 비슷한 게 있는데, 그분들 틈에 끼어 아는 사람도 없이 쭉정이처럼 삐걱대다 올 때도 있다.


  더 충격인 건 집에 1kg짜리 아령이 있는데 이걸 들고 헬스장에서 했던 것처럼 몸을 움직이니 이게 더 무겁게 느껴졌단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고작 1kg의 무게에도 바둥대는 하찮은 몸뚱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나름 바나나도 먹고 프로틴 음료도 마시는데 인바디 결과는 마치 3개월 전의 첫 결과지처럼 매정하기만 하다. 여전히 표준범위에 들려면 체중을 10kg 늘려야 하는데 대부분을 근육으로 늘려야 하는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 엄청난 미션이라 완수할 자신은 없고, 지금으로선 표준 범위에 들지 못하더라도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서 최대한 근골격량을 증가시키고자 한다.



  어쩌면 내 마음도 둘째처럼 너무 빨리 '병아리반'에서 '참새반'으로 올라가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 여름방학이라 운동을 2주 못 가고, 코로나 걸려서 또 2주 쉬었는데 그 여파가 큰 건지도 모르겠다. 여름 방학의 여파인지, 코로나 후유증의 위력인지 모르겠으나 눈으로 보이는 증상은 없지만 한 달이 넘도록 여전히 피곤하고 몸에 면역력이라는 게 다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둘째에게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위로해 본다. 시작한 것 자체가 멋지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참새반'이 되어있을 거라고.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마음의 힘은 더 생겼다. 쉽게 무기력하고 우울해졌는데 이제는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고 옷 입을 때 어깨가 좀 더 펴진 것 같다. 매일 운동해도 매일 근육통에 시달리지만, 운동 후의 개운함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피곤함을 이끌고 운동을 가고 있단 것 자체가 '위대한 병아리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참새반'아 기다려라! 운동 병아리가 간다, 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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