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종일 땅을 판다!
오늘도 우리 집 아들들은 어김없이 땅을 판다. 해가 쨍쨍 비춰도, 비가 온 뒤 땅이 질퍽해져도 어김없이 놀이터 모래사장을 커다란 장난갑 삽으로 퍼댄다. 보통 사람 같으면 5분도 안 돼서 허리에 등골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그만두겠지만, 우리 아들들은 이 분야에 있어선 보통 사람이 아니다. 가로 2미터, 세로 2미터의 사각형을 그리고 그 모양대로 땅을 파낸다. 땅을 깊이 50cm 이상 깊이 파다 보면 누군가 오래전 잃어버렸을 녹슨 장난감 자동차도 나오고 썩은 나무 삽도 나오고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웬 접시도 나온다. 먼바다에서 왔을 모래더미에서 작은 조개껍질이 나오기도 하고, 그 어떤 엄마가 애지중지 붙여 주었을 이름 스티커도 발견된다.
우리 아이들이 땅을 파는 이유가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땅을 파내면서 나오는 물품들을 주변에서 탐내는 다른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퍼준다. 그렇다고 특별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는 것도 아니다. 파다 보면 처음 도안과 다르게 모양이 바뀌기도 하고, 어쩔 땐 나에게 원하는 형상을 말하면 만들어주겠다고 주문을 기다리기도 한다. 모래를 하염없이 파다 보면 동쪽 나무 뒤에 붙어 긴 그늘을 만들어냈던 태양이 머리 꼭대기로 솟아오르고 아이들의 등줄기에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머리는 땀과 모래로 범벅이고, 소매로 얼굴의 땀을 훔치다 보니 얼굴에도 모래 알갱이가 붙어 반짝거린다.
"잠깐 와서 물 마시고 쉬었다 해."
아이들을 부르지 않으면 힘든지도 모르고, 갈증도 못 느끼고 지하 암반수까지 퍼 올릴 기세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부르면 손을 멈추고 쪼르르 달려와 물을 마시고 간다. 모래 놀이터 전용 운동복을 입고 이미 모래 물이 들어 얼룩덜룩한 티에 또다시 땀을 닦아 낸다. 물을 마시고 자신들의 업적을 돌아보며 세상 뿌듯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보기엔 가로 2미터, 세로 50cm, 깊이 80cm 길이의 영락없는 묫자리 같다. 양지바른 곳에 무엇을 묻고 싶어서 이리도 땅을 파댈까? 왜 이렇게 땅을 파냐고 물으면 언제나 같은 대답이다.
"모르겠어. 그냥 재밌어!"
땅을 파며 아이들은 성취감, 재미, 호기심, 뿌듯함, 자유, 근육의 발달, 신기함 등 다양한 감정을 향유하는 듯하다. 땅 파기에 관심 없었던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몰려와 자기도 땅을 파고 싶다며 삽을 빌려달라 청한다. 마치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이 울타리에 페인트칠하는 '노동'을 '재미'로 승화시켜 다른 아이들에게 오히려 돈을 받고 일을 시켰던 일화가 생각난다. 삽으로 땅을 파는 단순 노동이 얼마나 재밌어 보이길래 다들 파고 싶어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삽을 빌려 땅을 파보던 아이들은 얼마 못 가 두 손을 든다.
"너무 힘들어. 안 할래. 근데 이거 왜 파는 거야? 뭐 만드는 거야?"
땅만 같이 팠을 뿐인데 금세 친해진 아이들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다른 아이들의 질문에도 우리 아이는 한결같은 대답이다.
"뭐 만드는 거 아니고 하다 보면 뭐가 만들어지는 거야. 엄청 재밌어."
우리 꿀동이 때문에 비슷한 큰 삽을 산 친구도 있다. 꿀동이가 땅을 파고 있으면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같이 삽을 들고 달려든다. 금세 삼삼오오 모여 큰 웅덩이를 파낸다. 멀리서 보면 문화 유적지 발굴단 같기도 하다. 나름 조심스럽고,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웅덩이 여러 개를 이어 도로도 만들고 문도 달고 나뭇가지와 이끼, 돌멩이를 주워와 인테리어도 한다. 삽으로 계단 같은 턱을 만들어 어린 아기들이 놀러 올 수 있게 배려하고, 단단하게 모래 턱을 다져서 의자도 만든다. 첫째인 꿀동이는, 자기 눈에 예뻐 보이는 물건은 무엇이든 물어다 쌓아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바우어새' 같다. 주변에서 온갖 자연물들을 주워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벙커가 완성되었다.
형의 영향인지 동생 꽃동이도 형아 옆에 붙어서 땅을 판다. 초등학교 4학년 꿀동이는 척척 척척, 유치원생 꽃동이는 포옥포옥 모래를 들어 올린다. 신발은 벗어던진 지 오래고 맨발로 다부지게 모래를 밟으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한다. 아장아장 모르는 아기가 와서 호기심에 부시려 하면, 얼른 저 옆에 커다란 모래성을 쌓아 올리고 나뭇가지를 꽂은 뒤에 아기에게 선물한다. 지혜롭게 자신들의 성을 지키고, 다른 아기의 필요도 만족시킨다.
누가 보면 놀이터 공사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이미 동네에서 우리 아이들은 유명 인사다. '땅 파는 아이들'로 유명한 우리 아들들.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빈 모래 놀이터를 동네 유명 장소로 바꿔 놓았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신이 나서 구경 오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신기해하며 사진 찍기 바쁘다. 나는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며 아이들 곁을 지킨다.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그 일을 마음껏 하루 종일, 몇 날 며칠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는 일을 아무 방해 없이 지속하는 기쁨에 '행복'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아이들이 힘껏 행복을 누리길 응원한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도 그럴싸하지 않다. SNS에 올릴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체험 가능한 코스를 짜줄 수도 없다. 새로운 장소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도 아이들이 원하지 않으면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모든 휴일과 공휴일에 같은 모래 놀이터에 가서 하루 종일 땅만 팠다.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아이들 주도의 빨간 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부분 집 앞 놀이터에 아침 먹고 나가서,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깔릴 때까지 땅을 파겠다고 환호한다. 간혹 아이들을 설득해서 여행을 가기도 하고, 특별한 일정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은데 아이들은 오늘도 놀이터에서 땅을 파겠다고 하면, 아이들 옆에 돗자리 피고 앉아서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나들이를, 아이들은 땅파기를 누린다.
아이들은 땅을 파다가 잠깐씩 다른 놀이도 즐긴다. 놀이터에 갈 때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잇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 모형 비행기, 원반, 배드민턴, 축구공, 비눗방울, 킥보드, 에어 펌프 로켓 등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놀잇감들이다. 아이들은 비행기도 날리고, 원반을 주고받으며 던지고, 공을 발로 차며 땀이 마를 새가 없다. 작은 언덕을 한 번에 뛰어오르며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듯 환호하고, 각종 곤충들을 섭렵하며 이름을 부르고 관찰한다. 그리곤 다시 모래더미로 돌아가 땅을 판다. 첫째 꿀동이는 놀이터에 나오면 맛있는 간식도 마다하고 놀이에 흠뻑 취한다. 거의 내 말을 듣지도,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기지도 않은 채 오로지 땅파기에 하루종일 몰입한다. 둘째 꽃동이는 집에서 못 먹는 각종 과자와 주스, 나들이 음식의 향연에 도취된다. 형아 옆을 따라다니며 놀다가도 내 옆에 쪼르르 다가와 간식 가방을 열어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주변을 보면 아이들 나이에 대한 편견이 있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킥보드는 이제 졸업해야지', '놀이터가 웬 말이야 학원 가서 공부해야지', '장난감은 이제 안 갖고 놀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나 나는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 타고 싶은 탈 것이 있다면 충분히 누려야 한다. 초등학생이라고 꼭 세발 킥보드가 아닌 두 발 킥보드를 탈 이유도,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도, 선택해 주거나 강요할 수도 없는 자기 인생을 마음껏, 힘껏 두 발로 박차고 뛰어다니며 살아가길 기도한다. 그래서 언젠가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고난의 파도들이 들이쳐올 때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두 팔을 활짝 펴서 인생의 파고를 넘나드는 훌륭한 서퍼로 자라길 바란다.
집 가까운 곳에 대형 놀이공원이 있다. 근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연간 회원권을 끊어서 키즈카페처럼 이용한다. 유치원 하원하고 가서 2시간 놀이기구 타고 돌아오고, 어떤 날은 야간 페스티벌만 보고 오고, 어떤 날은 사파리만 구경하고 오는 식이다. 요즘 키즈카페가 한 시간에도 몇 만 원씩 하다 보니 차라리 그게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우리도 이용해 볼까 했는데, 아이들이 거절한다.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린 뒤, 몇 분 가만히 기구에 앉았다 내려오는 게 큰 재미는 없단다. 가끔 가는 건 괜찮지만, 놀이터 가서 땅 파고 벌레 잡는 게 훨씬 재밌단다. 나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내 생각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아이들이 원하는 곳이야 말로 놀이공원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도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땅 파고 곤충 채집을 하며 하루를 채울 수밖에 없다.
나는 해주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좋아한다. 내 힘을 빼고 아이들 말에 귀를 기울일수록 아이들은 용기를 얻는다. 몸과 마음의 힘은 날로 강해지고 스스로 만들어낸 뿌듯함을 먹고 자란다. 어딜 가나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아이들, 어디 내놔도 걱정할게 하나 없는 아이들이란 말을 듣는다. 물론 나는 늘 걱정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을 믿는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똑똑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사회적 규범을 알고,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사람을 보호해야 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머문 자리는 스스로 깨끗이 치워야 하는 책임감을 익혔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찾아 행하며 그 선택에 부모와 공동 책임을 지는 아이들임을 믿는다.
엄마의 일은 나의 걱정과 세상의 말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싸우는 것, 아이들의 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시도하고 해내고 기뻐하고 누리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단단한 확신과 그것을 향해 뻗어가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길 꿈꾼다.
자, 이제 이번 주말도 땅을 파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