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

쓸모없는 시간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

by 돋을볕

작성일 20220924


프랑스 출신의 캐나다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데릭 백(Frederic Back)은 장 지오노(Jean Giono) 원작의 <나무를 심는 사람>(1987)을 영화화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프로방스 지방의 어느 고원 지대를 여행하다 폐허가 된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한 양치기 노인을 만나 숙식을 제공받아 목숨을 건진다. 그 노인이 바로 핵심 인물인 ‘엘지아 부피에’이다. ‘엘지아 부피에’는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 위해 매일 황폐한 고원에 나무를 심는다. 무의미해 보이는 이 일을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반복적이고 끊임없이 행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풍요로운 숲과 수자원을 일궈낸다. 이 30분짜리 영화를 만드는 데 무려 5년 6개월이 걸렸으며, 혼신의 힘을 다한 감독은 한쪽 눈을 실명하기까지 했다. 프레데릭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상과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나무를 심는 사람 : 영화 포스터>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하는 성취 주의자들의 경우,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고속으로 인생을 살아온 나도 그중 하나다. 빠른 생일이라 학교 입학과 대학/대학원 졸업이 일렀다. 바로 취직해 사회에 진출했고 그동안 보람을 느끼는 일도 많았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20대 중후반에 결혼하고 다음 해에 아이를 낳았으니 요즘치곤 결혼과 육아도 빨리한 셈이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정확히는 육아를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영역은 모두 멈춰버리고 말았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어쩌면 누누이 말했음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에게 벌어진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 땅의 모성 신화와 개인의 자아 성취 사이에서 인지 부조화를 겪으며 살아간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속에서 결국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 같다.


심장보다 머리가 더 오래 일한다. 사람은 심장 박동이 멈춘 이후에도 30초간 기억을 회상하거나 꿈을 꾸는 뇌파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미국 루이빌대 신경외과 연구진이 최근 국제학술지 '노화 신경과학'(Aging Neuroscience)에 발표한 내용이다. 머리는 더 오래 생각하고 재생하고 후회하고 기억한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고 하나 보다. 끊임없이 재생하고 움직이는 머리 때문에 골치가 아플 때도 있다. 애정하면서도 나를 꼼짝못하게 하는 갇힌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세계적인 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런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했다.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지 부조화가 단지 정신 충돌의 문제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하는데 원동력이 된다고 하니, 이것은 인간이 갖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지만, 때로는 순간이 억 겹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다. 늦은 것 같다는 생각, 남들보다 부족하고 뒤쳐졌다는 생각은 나를 옭아매고 순간을 억 겹으로 만든다. 기쁨은 지금 이 장소 이 순간을 누리게 하지만, 슬픔은 나를 먼 거리로,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으로 데려간다. 추석을 보내고 난 뒤 몸살이 찾아왔다.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이 둘이 차례로 아프면서 몸조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계속 뭐라도 써야 하는데, 소설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하는 불안함이 차올랐다. 현실은 육체의 통제를 받고, 이상은 머리의 지배를 받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아는 글은 소설인데 놓은 지 벌써 여러 해다. 일련의 사건 이후,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마음 한구석에 진 웅덩이는 끊임없이 다시 채워달라 아우성이다. 맹자는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열심히, 더 효율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웅덩이를 채울 때이다.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자기보다 빠른 사람밖에 보이지 않으니, 뒤쳐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인생에는 한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뒤안길을 걸을 때도 있다. 자드락길을 지날 때도 있고 쥐코밥상을 먹을 때도 있다.


가을 단풍이 시작되고 있다. 무성했던 초록 잎들이 수분을 말리고 거친 줄기를 드러낸다. 아름다워 보이는 단풍은 무심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만찬 같다. 나무의 존재 의미가 ‘나무’ 자체로 서 있는 것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단단한 열매가 아니라 노랗게 타들어간 단풍, 메마르고 벗겨져 어딘가에 부대끼며 실려 가 버리는 씨앗이 아닐까? 가을의 쇠락이 아름답고 풍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실은 그것 때문이 아닐까?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우리를 지탱해준다. 무용(無用)한 무해함이 고독한 성숙을 불러온다.


<올해 발견한 첫 단풍>


<2020년 가을의 끝자락, 곤지암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