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통 창이 있는 카페에 갔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전망 좋고 통창이 있는 고즈넉한 카페에 가고 싶어진다

by 돋을볕

20220926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무겁게 눌러 내린 듯한 공기의 무게, 습한 기운으로 들어찬 대기의 밀도, 사람이 줄어드는 거리의 가벼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잘리듯 퍼져나가는 빗줄기, 평소보다 약간 쌀쌀해지는 피부의 감각, 주변 사물에 따라 살짝 비릿하면서 대지와 나무의 향취를 내뿜는 비 오는 날의 냄새. 이런 날엔 경치가 탁 트인 커다란 창가에 앉아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진다. 책을 읽어도 좋고, 즐거운 사람과의 대화도 정겹다. 잠깐 살았던 도시에 그런 카페가 있었다. 도심과 살짝 떨어져서 뜬금없이 논밭이 펼쳐지는 곳이었는데 그 논 한가운데 버섯 농장과 카페가 있었다. 노루궁뎅이 버섯과 각종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요리가 일품이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따온 장미를 우려낸 은은한 단맛이 퍼지는 장미차를 즐겨 마셨다. 나를 만나러 와주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계절에 따라 변하는 논을 보며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유정란, 버섯, 커피 드립 용품들을 사기도 했다. 왔던 사람들 모두 이곳의 매력을 칭찬했다. 이사 이후, 다시 찾아가 보니 안타깝게도 그곳은 문을 닫았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의 풍경과 음식들>


비가 오는 날이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절로 생각난다. 경치가 좋은 고즈넉한 카페에 가서, 통 창으로 비 오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카페를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오천만 카페 시대에 집순이를 집 밖으로 끌어내어 그 바람을 실현시켜줄 아름다운 카페는 어디 있는가, 나의 오래된 소원이자 게으른 고민이다.


한 번은 큰 마음을 먹고, 검색을 통해 경기도 외곽에 있는 저수지에 통 창이 있는 카페를 찾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비가 오는 날 일부러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일기예보에서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지만 카페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가 멈춰버렸다. 그래도 장소만 좋다면 상관없었다. 부디 홍보성 글에 속은 게 아니길 바랐는데……. 사진은 그저 잘 나온 사진일 뿐이었다. 3층 카페이긴 했지만 분위기가 난잡했다. 어떤 콘셉트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카페 문 앞 주차장에는 몸에 문신을 한 직원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여자들은 가슴과 배꼽이 보이는 짧은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했다. 남자들은 검은 비니를 푹 눌러쓰고 통이 큰 바지를 입은 채 담배를 뻐끔거렸다. 카페 출입문이 아주 무거웠는데, 담배 연기를 맡으며 지나가는 그 길이 하나의 관문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직접 구운 빵과 음료가 맛있으면 그 정도쯤은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빵은 생김새에 비해 매우 비싸 보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작은 빵 한 조각과 음료를 시켰다. 음료를 주문받는 중년 남성의 셔츠는 단추가 세 개 정도 풀어져 있었고 앞치마는 더러워 보였다. 주문을 받는 태도가 고압적이었다. 마스크는 쓰지 않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걸쳐 있었다. 옆에 있던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은 음료 주문과 동시에 음료 제조를 시작했는데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얼른 1층을 벗어나 여유와 힐링을 찾고 싶었다. 음료와 빵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인터넷으로 보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하지만 중년 모임이 진행 중이었다. 골프복이나 등산복을 입고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매우 큰소리로 알려주고 있었다. 장소는 넓었으나 소리가 그만큼 더 크게 울렸다. 나무 의자는 너무 딱딱했고, 소파는 닳아서 가죽이 다 하얀색으로 갈라졌다.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옥상에 천막이 쳐져 있고, 테이블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루프탑이었다. 정오의 햇살이 너무 뜨거워 눈을 게슴츠레 뜨고 눈물을 흘렸다. 천막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두피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하지만 차는 마셔야 하고 시간이 별로 없기에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불면증이 있어서 카페인 음료를 피하는데, 디카페인 커피가 없어 허니 자몽티를 선택했다. 뒷덜미를 잡게 하는 고농도의 시럽과 불쾌한 자몽 알맹이가 씹혔다. 내 사랑 자몽을 이렇게 막대하다니,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무너졌다. 비싸게 주고 샀으니 마셔야지, 홍채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저수지의 빛 반사에 눈을 감고 자몽 주스를 식도로 털어 넣었다. 콧 속으로 파고드는 뒷 테이블 아저씨들의 담배 냄새, 내 몸에 퍼지는 아까워서 마시는 맛없는 자몽주스. 그렇게 나의 야심차고 소소한 버킷리스트는 망해버렸다.


이후, 비 오는 날 풍경을 볼 수 있는 조용한 카페 찾기에 의욕을 잃은 채 지냈다. 하지만 비가 길게 이어지는 장마에 숨어 있는 카페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래도 집순이의 몸은 어김없이 집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유 거품기를 돌리고, 디카페인 캡슐 커피를 내려 카페라테를 만들었다. 아침 배송으로 받은 치즈 케이크도 꺼내 들었다. 이 훌륭한 하루의 여백을 어디에서 즐길까 고민하다가 거실 식탁에 앉았다. 우리 집은 거실 베란다가 확장되어 있어 식탁을 통창 옆에 놓았다. 그 위에 우크라이나를 위한 돕기 위한 성금을 보내고 받은 제라늄 7개를 올려두었다. 아직 어린 제라늄 7개가 꽃을 피고 지우며 조금씩 자라는 걸 볼 때마다 신기하고 흐뭇하다. 그 앞에 따뜻한 카페라테와 부드러운 치즈케이크 두고 앉았다.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통창으로 보이는 공원과 무거운 먹구름, 쏟아지는 비, 세상을 숨죽이게 만드는 그 고결한 위대함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커피와 치즈 케이크, 제라늄과 통창을 스치는 비. 거대한 행복이 나를 휘감았다.

<버뮤다 핑크 제라늄. 사진은 여름을 나기 전 예쁜 꽃을 활짝 틔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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