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서 1등을 했지만,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바람이 불고 뭐라도 하나 흔들려야, 시원해진다. 태연하게 걷어 낸 여름 햇발 뒤에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창문을 열어도 다시 가을이 왔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변함없이 단풍이 물든다. 나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멈추지 않는 시간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 말에 「쉽게 씌여진 시」를 지었다. 일본 도쿄에서 지내던 윤동주와 송몽규, 문익환에게 강제징병 명령이 떨어졌고, 세 사람은 이에 맞서 각기 독립운동을 꾀한다. 『문익환 평전』을 보면 이 부분이 세세하게 나온다. “그리고 조선인을 총알받이로 이용하려는 그 흉악한 정책을 뒤집어 “일본의 국력이 약해지거나 패전하는 기회를 타서” 징병제가 오히려 조선의 무장을 돕는 데 활용될 수 있게 하자는 토론을 한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했던 윤동주의 일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단연코 쉽게 써졌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_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부분
윤동주 시인은 다다미 여섯 장이 깔린 매우 좁은 방에서 등불만큼의 어둠을 몰아내고 시를 지었다. 시대의 고달픔에 비해 자신의 삶이 편안한 것 같아 죄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심성에 그 좁은 방마저 수치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열망과 고독이 무너져 내리는 어둠 속에서 펜을 든 그의 손은 얼마나 야위어 있었을까?
학부와 다른 소설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면서 많은 난관들이 있었다. 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과 연락을 끊을 때는 당장 자취방 계약이 끝나서 갈 곳도 없었다. 추석을 앞두고 스팸 메시지함을 열어봤는데 엄마가 보낸 문자가 가득했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연락이 없네.”
대학원 입학 서류와 면접에서 제대로 내세울 경력도 없었다. 대부분 예중·고를 나와 학사까지 마친 사람들이 지원했다. 운 좋게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때때로 한 교수님은 “너희 과는 어떻게 하니?”하고 물으셨고, 써온 글을 비평할 때면 “출신이 달라서 그런지 글이 너무 과학적이네.”라는 말을 동기들에게 들어야 했다. 물론 내 글은 전혀 과학적인 글은 아니었다. 단지 사실 검증에 유의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글을 쓰면 이야기가 되고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게 신기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살아나 제멋대로 이야기를 끌고 갈 때면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다.
전공 건물과 학생회관 사이에 작은 오솔길을 전공 교수님과 함께 걸었다. 평소 말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그날따라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이번에 했던 공모전에서 네가 1등이었어. 외부 소설가들을 초청해 심사했는데 네 글을 뽑았더라. 그런데 송 교수님이 대학원생은 주지 말자고 해서 취소됐어. 사실 네가 1등이다. 심사한 소설가들이 잘 썼다고 하더라. 아쉬울 텐데, 힘내라고 하는 말이야.”
공모 자격은 학부생, 대학원생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그런데 왜 나는 수상에서 아예 제외되었을까? 어쩌면 전공을 송 교수가 아니라 힘없는 조교수로 택해서 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에서 치명적인 하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정해야 할 공모전에서 게다가 심사위원들의 심사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수상자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는 분노해야 한다. 의의를 제기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듣거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분명 귀에는 들리는 데 머릿속에서 해석되지 않았다. 그렇냐고, 빙긋 웃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분의 지인이 그 공모전에서 상을 탔었다고 말을 전해왔다. 나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분이었고 학교가 겹쳐 이야기하다 보니 나온 말이었다. 공통 사안을 찾아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대화였지만 내 마음속 잠겨진 빗장에 문이 열려 숨겨둔 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먼지 쌓인 오래된 앨범이 얼굴을 내밀었다. 시간이 흘러도 벗겨지지 않은 알싸한 슬픔이 풀지 못한 수학 문제처럼 답을 요구했다.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저서에서 내면의 분열을 이렇게 설명한다.
“철학자 찰스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책『용서』에서 말했다. “후회는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다.”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오래된 상처를 어떻게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 나는 잘 안다. 이야기를 하는 이는 물 긷는 장치에 묶인 낙타처럼 계속 원을 그리고 돌면서 부지런하게 비극을 길어 올리고, 매번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도 되살아난다. 서사가 없었더라면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지금과는 더욱더 관련이 없는 감정이 서사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종종 사람들이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이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힘드네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우리의 삶은 입체적이지만, 기억은 납작한 종이 위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적힌 글자와 같다. 한번 새겨진 일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이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덧붙일 따름이다. 시간의 흐름이나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바로 어제의 일이든 상대적 수치와 무관하다.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나의 육체와 장기처럼, 마음도 고치고 돌보며 살아야 한다. 육체의 질병처럼 정신의 고통도 청진기를 대보고 엑스레이를 찍으며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다. 잊었던 감정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고 너무 어려서 몰랐다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구슬과 같다.
<시골 마당에서 따온 감. 한 나무에서 자랐지만 각기 익는 속도가 다르다. 제일 맛있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우리도 모두가 각자 익는 속도가 다르다. 자기 만의 때가 있다. >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그 무거운 발음 속에 응원의 마음을 담아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등단도 하지 못하고, 책을 낸 적도 없다. 식사와 집안일, 잠을 줄여야 겨우 시간을 내서 글을 쓸 수 있는 내게 그 말은 너무도 사치스럽다.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시를 ‘쉽게 쓰여졌다’고 한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부름이다. 존경하는 분에게 문자를 받았다. “돋을볕님은 꼭 성공할 거예요. 나를 예언자로 만들어주세요!” 나는 성공이 뭔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게 나의 일이니, 나의 일을 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저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목구멍에 밀어 넣듯, 혈관을 타고 오르는 글을 뱉어내고 지을 뿐이다.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이나 오지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그리며 에스트라공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해”
때로 글을 쓰는 일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수입도, 목적도 없는 무의미한 노동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에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품이다. 몇 세대가 지났어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고 지지하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조리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안네 프랑크는 『안네의 일기』를,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적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동안 『옥중기』를,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지었다. 지금은 무의미해 보여도 하루하루의 움직임이 나를 쌓아 올린다. ‘노자’는 “무용취시유용(無用就是有用), 대무용취시대유작위(大無用就是大有作爲)”라고 했다. “쓸모없는 것이 곧 쓸모 있는 것이 되고, 쓸모가 없을수록 더 큰 용도로 쓰이게 된다”는 뜻이다. 무쓸모의 유용 속에서 내 마음은 평안을 되찾고, 어딘가 있을 벗과 연대를 시작한다. 낡은 옷을 걸친 현재의 나도, 빛바랜 사진 속 순진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나도 한 사람이다. 나의 벗은 멀리 있지 않다. 늘 그 자리에서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는 이, 먼지 쌓인 앨범을 후후 불어 말갛게 씻어줄 이, 가시적인 성과나 성공이 없어도 따뜻한 손을 맞잡아줄 이, 바로 과거의 내가 나의 벗이다.
2022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