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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Dec 15. 2023

물 웅덩이 헌터

물 웅덩이 헌터는 '길'로 다니지 않는다. 그가 다니는 곳이 길이 될 뿐

비 오는 아침엔 평소보다 더 분주하다. 프라이팬에 달걀 세 개를 톡톡 깨트려 올려놓고 창문으로 달려간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운지, 우산을 썼는지, 바람에 나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관찰하며 아이들에게 입힐 옷을 가늠한다. 롱패딩을 입고도 모자를 눌러쓰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면 많이 추운 날, 겉옷 지퍼를 잠그지 않은 채 맨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덜 추운 날이다. 가끔 맹 추위에도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사람 때문에 체감 온도를 잘못 측정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이나 발걸음 속도를 보면 대략적인 온도가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부터 확인하지만 측정소에서 알려주는 기온이나 기사로 접하는 정보는 실제와 약간 거리감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초등학생인 첫둥이에게 여름에 사둔 장화를 꺼내주는데 그새 아이 발이 자라 신발이 작다. 제법 쏟아지는 비에 운동화를 신을 것인지, 그래도 장화를 신을 것인지 물어보니 툴툴거리며 장화에 발을 비집어 넣는다. 아이들은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금방 신발과 옷이 작아진다. 첫째를 보내고 메모장을 열어 '가위', '미술 작품 인화', '방한 부츠' 옆에 '장화'를 추가한다. 아이의 손이 커져 좀 더 큰 가위가 필요하고, 미술 수행평가를 위해 작품 인화를 해줘야 한다. 둘째는 작년에 신던 부츠가 작아져 더 큰 부츠를 구입할 예정이다. 첫째와 태어난 계절이 다르다 보니 첫째와 둘째가 신는 신발의 계절감이 달라 물려 신기가 어려운 게 있다.


  아이들을 보내고 해야 할 일과 사야 할 품목들이 한가득인데 막둥이가 늑장을 부린다. 밥 한 숟갈 넘기고 장난감 자동차 굴리고, 또 한 숟갈 물고 장난감 헬리콥터 프로펠러를 돌린다. 밥 잘 안 먹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준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밥을 다 먹이고 서둘러 어린이집 등원 가방을 싼다. 밤에 씻어 말려둔 도시락통과 보온 물병, 고리가 달린 수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두 개를 챙긴다. 그 사이 막둥이는 아침 응아를 하고 엄마를 호출한다. 따뜻한 물로 엉덩이와 얼굴을 닦이고 로션과 선크림으로 뽀송하게 마무리하면 등원 준비가 얼추 끝난다.


  막둥이는 공룡과 자동차 그림이 그려진 우산 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공룡 우산을 택한다. 밖으로 나서자 빗물이 차올라 시멘트 바닥이 웅덩이로 변한 게 보인다. 막둥이는 신이 나서 "꺄"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간다. 움켜쥔 두 손에 들린 우산이 비스듬하게 뒤로 넘어가고 막둥이의 시선은 온통 바닥으로 쏠렸다. 비를 맞거나 말거나 웅덩이에 고인 물을 찾아다니며 장화 신은 발로 폭폭 뛰어다닌다. 튀어 오른 빗물이 종아리까지 올라온 장화 속으로 속속 들어가고 갈색 바지는 물에 젖어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크림색 잠바에 비가 두둑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화도, 우산도 그 어떤 것도 비가 오는 날엔 아이가 젖는 걸 막지 못한다.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물 웅덩이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밟는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이는 물장구를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천천히 물을 밟아 원이 퍼져나가는 걸 바라보다가 낙엽 위에 동글동글 맺혀 있는 물방울을 보며 "엄마 이건 진짜 꿈같아, 꿈. 꿈이랑 똑같잖아"하며 생그러운 미소를 짓는다. 꿈에서 빗물이 둥글게 맺힌 낙엽을 본 걸까. 웅덩이를 따라 앞으로 뒤로, S자를 그리며 뛰어다니다가 버스 승강장에 다다르자 걸음을 멈춘다. 처마에 빗물이 모여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에 우산을 대고 가만히 선다. 공룡이 그려진 작은 우산 위로 후두두둑 거세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자니, 폭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신을 수련하는 무술인이 떠오른다. 막둥이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우산 꼭지를 타고 떨어지는 빗무더기에 환호성을 터뜨린다. 오므리고 있던 작은 발끝을 빗무더기에 가져가본다. 막둥이의 발끝에서 톡톡 부서지는 빗물이 다시 장화 뒤꿈치까지 흘러내려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웃음을 터뜨리고,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딴짓하지 않고 걸어가면 늦지 않을 것이다.


비가 오던 어제 하원길에도 해가 지도록 빗놀이를 했다



  등원 시간이 지나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온다. 왜 늦었는지 사유를 말해야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밥을 느리게 먹었고, 화장실에 갔고, 빗놀이를 하느라 늦었다고 해야 할까. 혼자 걸어가면 10분도 안 걸릴 거리를 아이와 함께 가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빨리 가고 싶지만 아이는 세상 느긋하고, 지름길로 걷고 싶지만 아이는 새로운 길로 돌아서 가자고 손을 이끈다. 아침엔 서둘러야 하는 데 눈치코치도 없는 아이의 손길이 답답하다. 매일 걷는 똑같은 길이 얼마나 다르다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일까? 이럴 거면 밥이라도 빨리 먹든가.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휴대폰을 확인하지만, 아이는 비까지 오는 이 풍요의 아침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엄마 제발요. 응? 응? 나 비 오는 거 엄청 좋아해요. 내가 뽀뽀해 줄게요."

  

  눈을 깜빡이며 존댓말까지 섞어 귀여움으로 전진해 오는 아이. 투명한 빗물보다 더 촉촉한 눈망울에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공격이 숨어있다. 엄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아이의 우주를 내가 어떻게 감히 깨뜨릴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 매일 늦는 것도 아니고, 오전에 특강이 있는 날도 아니니 한 번쯤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막둥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내 허리춤 정도 오는 높이의 시선에서 아이는 나보다 훨씬 다양한 것들을 발견한다. 길가에 왜 강아지풀이 있는지, 강아지풀은 왜 간지러운지, 강아지가 아닌데 왜 이름이 강아지풀인지 궁금해한다. 꿈틀대는 지렁이를 보며 크기를 가늠하고 왜 아스팔트 길에서 꿈틀대고 있는지 질문한다. 막둥이는 작은 머릿속을 바쁘게 굴리며 세상을 알고 싶어 한다. 비는 왜 내리는지, 비가 오면 새들은 어떻게 되는지, 새는 빗물을 어떻게 마시는지, 땅 속에 공룡이 살고 있는지, 보도블록 공사는 왜 하고 있는지, 불도저는 어디로 가는 길인지, 자신과 엄마는 왜 우산을 따로 쓰는지, 겨울에 나무는 왜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지, 왜 나무의 한쪽면만 비에 젖었는지 묻고 또 묻는다. 막둥이의 말에 하나하나 답을 하노라면 '왜'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 지경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왜'라는 토를 달고 싶은 것인지 반문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가 어디에서 안전하게 세상을 배울까. 아이의 질문이 오히려 나에게 참신한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막둥이를 볼 때면 빨간 모자를 쓰고 꽃 무더기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꼬마 아이가 떠오른다. 캐나다에서 시를 짓는 '존아노 로슨'과 그림을 그리는 '시드니 스미스'가 발간한 <거리에 핀 꽃>이라는 그림책 속 주인공이다. 빨간 모자를 쓴 아이는 커다란 회색 도시에서 길가에 핀 꽃을 모은다. 꽃을 모아 쥐고 흐뭇해하는 아이와 달리 아빠는 휴대폰에만 집중한다. 거리의 다른 사람들처럼 바쁘고 주변에 무관심하다. 빨간 모자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전봇대 밑, 벽 틈새, 모퉁이에서 꽃을 발견한다. 마침내 아이의 손길이 닿은 거리는 색깔을 되찾고 따뜻한 다채로움으로 가득해진다.

<거리에 핀 꽃> 표지와 내용 일부



  막둥이의 눈으로 보는 등원길은 매일 걷는 똑같은 길이 아니다. 어제 못 본 비비탄을 줍기도 하고 예쁜 낙엽을 색깔별로 모으기도 한다. 바람에 빙글빙글 도는 나뭇잎에 웃음을 터뜨리고 산책 나온 강아지도 구경한다. 오늘은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물에 젖은 진한 색상 세상이 펼쳐졌다. 사람들이 피해 가는 고지랑물에 일부러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힘차게 발을 굴러 샤인머스캣 같은 작은 엉덩이를 씰룩인다. 가까운 길도 돌아 돌아 뛰어가다가 한 번씩 나를 돌아보곤 함박 웃으며 손을 흔든다.


고지랑물 헌터. 수돗가 처마 끝에 우산을 대다가 발장난을 치고 있다


  물에 젖은 잔디가 장화에 들러붙고 엉덩이에 흙탕물이 튄다. 막둥이는 큰 웅덩이, 중간 웅덩이, 작은 웅덩이를 차례로 밟아보고, 맨홀 뚜껑에도 발을 대본다. 돌 길 위, 흙길, 모래 놀이터, 잔디밭, 낙엽 뭉치, 이끼 낀 길 위에서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을 향유한다. 콩콩 뛰어오르고 도도도 달리고 철벅 뛰어내린다. 물을 함박 먹은 측백나무에 우산을 툭 대더니 우수수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우아. 나무가 쉬를 한다" 소리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빗놀이를 하며 어린이집 건물에 당도하니 오전 간식과 점심 준비로 인해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긴다. 막둥이는 혼자 우산을 접어 우산통에 꽂고는 선생님께 안겨 등원길이 얼마나 신났는지 종알 거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당부도 잊지 않는다.

  "엄마 이따가 간식 많이 챙겨서 오세요.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면서 많이 놀고 싶어요. 알았죠?"


  이렇게 놀고도 또 놀고 싶다니, 놀라우면서도 내가 어떻게 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까 싶어 헛웃음이 난다. 하원길에는 아마 물에 빠진 생쥐와 다름없이 홀딱 젖어 놀 것이다. 등원길에는 옷이 많이 젖지 않게 그나마 살살 논 것이리라. 창고를 드나들며 쌀 낱알을 빼먹는 생쥐처럼 웅덩이를 들랑날랑하며 환희에 차 있겠지. 감기 걸릴까 염려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추위에도 땀을 흘리며 방글방글 뛰어와 안기겠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다시 비에 젖은 회색 도시이다.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기 위해 신호등에 눈길이 멈추고, 머릿속엔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만 생각난다. 아이가 손에 쥐어준 붉은 단풍잎을 보자 다시 세상의 숨겨진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놀면서 자란다. 나도 함께 자란다.


아이가 꿈에서 보았다는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단풍잎
물 웅덩이 헌터는 절대 '길'로 다니지 않는다. 그가 다니는 곳이 길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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