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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바르셀로나, 고딕지구

여행 27일. 스페인 2일.

by 어린왕자

*브런치 북, 유럽에서의 기억 1.0 뒤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앞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유럽에서의 기억 1.0을 봐주세요.



2014년 7월

바르셀로나

아침에 느적느적 일어났어. 이미 게하 식구들은 거의 다 나가고 몇 명 없었어. 간단히 조식을 먹고 어제 만났던 일행들과 카탈루냐 광장에 있는 엘꼬르떼 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이 백화점은 스페인에서 가장 커서 못 찾을 수가 없지.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어. 유럽 빅 세일 광고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 파리에서 듣기로는 유럽 전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여름 빅 세일을 하고 있다고 해. 무려 할인율이 50%가 넘는다고 들었어. 거기다 스페인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ZARA와 H&M은 저렴하기로 유명해서 언젠가 하루 시간이 내어 쇼핑을 하기로 했어.

바로 앞의 카탈루냐 광장바르셀로나의 중심이었어. 대형 백화점은 물론, 대형 은행, 호텔, 많은 교통수단들이 모여있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많을 거 같지만 아침에는 없었어. 어제 공항에서 도착했을 때는 엄청 많았는데, 다들 출근했나 봐.


형은 기다리다가 화장실 갈 겸 백화점 1층만 구경하러 갔어. 나는 엇갈릴까 봐 기다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했던 일행들이 도착했고, 형도 금방 나왔어.


스페인 최대 백화점에 대한 형의 감상은 한국이랑 비슷하데. 1층에는 향수, 화장품, 액세서리, 명품 매장이 많다고 했어. 백화점의 구조는 국제 룰인가 봐. 아마 마케팅의 룰 같은 거겠지. 이제 다 모였으니 출발~!!


바르셀로나 산책




람브라스 거리


오늘은 쇼핑이 아니라 중세 바르셀로나를 구경할 예정이야.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으로 가면 길게 이어진,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람브라스 거리가 나왔어. 큰 보도 양쪽으로 1차선 도로가 나있고, 보도에는 큰 플라타너스가 빽빽이 심어져 있어 걷기 좋아. 특히 이런 여름 낮에는 큰 그늘을 만들어줘서 더 좋지.


확실히 이곳이 핫플레이스야. 현지인을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어. 그래서 카페, 옷, 기념품, 사탕 가게 같은 상가들이 있었어. 경의선 길이랑 조금 비슷하려나. 대신 이곳에는 스타벅스나 나이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많아.


조금 걷다 보면 라 보케리아라는 큰 시장이 있어. 입구에는 큰 돼지 뒷다리가 걸려 있어서 금방 알 수 있어. 이게 바로 스페인 음식 중 가장 유명하다는 하몽이야. 약간 비린내가 나긴 하지만 민감하지 않다면 신경 쓰이지 않는 정도야. 최근 이베리코 돼지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을 거야.


입구 쪽에만 간단히 봐서는 전통시장보다는 관광지 느낌이 강했어. 과일 가게랑 생과일주스를 많이 팔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아.


라 보케리아의 하몽 가게
람브라스 거리의 과자 가게와 왠지 흐뭇한 나.




비스베 거리


시장을 나와서 주얼리 샵 쇼윈도를 봤어. 가격도 좋고 상품도 좋아서 들어가 동생 선물을 사 버렸지. 나와서 가게 옆 골목으로 들어갔어. 짧은 계단을 내려가니 다른 분위기가 풍겼어. 직선이 아닌 자유로운 곡선의 좁은 골목으로 바뀌었고, 중간중간 돌로 쌓은 오래된 건물들이 골목에 섞여 있어 중세로 들어가는 거 같았지.


그렇게 걷다 보니 유명한 비스베 거리로 들어왔어. 이 거리는 확실히 중세 느낌이 들었어. 여기서부터 갑자기 사람이 급격히 많아졌어. 이곳에 유명인사인 구름다리 때문이야. 주정부 청사와 주지사 집무실을 연결하는 다리로 멀리서 봐도 '저거 뭐야' 하면서 가까이 갈 수밖에 없어.


비스베 거리의 구름다리


그 앞에 있는 줄은 대성당 회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줄이야. 우리는 줄을 서기보다는 다리를 향해 갔어. 그만큼 눈길을 끌고 주위와 잘 어울리면서 이쁜 다리야.


하지만 가까이 가니 다리보다도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유리창이었어. 중세시대 건물에 유리창을 달아놨는데 유리가 전반사가 되어 하늘의 구름을 보여주고 있었어. 마치 벽에 그림을 걸어놓은 것 같아 너무 마음에 들었어. 건물 벽에 장식들과 문양이 있어서 다른 골목과 달리 더 특별한 느낌을 주었어.


구름 그림이 걸린 유리창



산 하우메 광장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 보니 산 하우메 광장에 도착. 광장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투어 관광객들이 많아서 더 좁아 보였어. 이 광장을 사이에 두고 카탈루냐 주 자치정부 청사와 바르셀로나 시청사가 마주 보고 있었어.


뉴스에서 카탈루나 독립 기사는 자주 봤을 거야. 마드리드 지방과 다른 색을 가지고 있고 과거 다른 국가였기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심지어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기에 언어도 다르지. 그래서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자치 정부를 보면 스페인 국기 옆에 노란 줄과 빨간 줄이 반복되는 카탈루냐 주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어. 거리를 다니다 보면 여기에다 왼쪽에 파란 바탕에 하얀 별이 그려진 깃발을 볼 수 있는데, 이 깃발은 카탈루나 깃발을 상징한다고 해. 그만큼 독립을 염원하고 있었어. 바르셀로라를 여행하다 보면 이 이야기는 자주 듣게 될 거야.


바르셀로나 시청사(좌), 카탈루냐 주 자치 정부 청사(우)




스페인에서 로마 신전


왕의 광장을 향해 다시 골목으로 들어갔어. 골목이 엄청 좁아 다소 불편한 감도 있지만 '중세 스페인은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 좋았어.


그렇게 가다 건물 안내판이 눈에 띄어서 안으로 들어갔어. 사각형 형태의 건물에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어. 별거 아니지만 색다른 느낌이 들었어. 한국에 가운데가 뚫린 10미터 이상의 사각형 건물이 드물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 보자 고대 로마 신전이 짠! 이거 뭐지? 중세 스페인에서 고대 로마로 점프인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신전으로 과거 로마의 지배지였을 때 만들어졌으니 기나긴 시간을 거쳐 숨어있었어. 유적지를 구경 다니다 보면 이런 점들이 참 재밌는 거 같아.


로마 신전 입구와 뒤로 보이는 카테드랄 (좌), 로마 신전 (우)




요크티넨 궁

좁은 골목을 나오자 완전 15세기로 변했어. 사람들 복장만 21세기였지. 중세 기사와 왕들이 나오던 영화에서나 볼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어. 어릴 적 레고로 성을 지어 놀던 때도 생각나고, 너무나 신기해서 왠지 모르게 들떠버렸어.


왕의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요크티넨 궁을 먼저 들어갔어. 이곳도 전체적으로 사각형 건물에 가운데가 뚫려 햇볕이 드는 곳에 정원이 있었어. 요양원 같은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어. 거기다 묘하게 이슬람 분위기가 났어. 이베리아 반도가 한때 이슬람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


가운데 팔각 목조 분수대가 눈길을 끌었어. 분수대 아래로 물이 흘려 작은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속에 동전이 가득해. 혹시 이곳에도 동전으로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닐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슬람 분위기보다는 서유럽권 기독교 느낌이 강했어. 그런데 가운데만 비워놔 햇볕이 잘 들지 않았지. 한국이었다면 습하고 춥지 않을까 싶지만 스페인 기후는 건조하고 햇볕이 강하니 이런 구조가 가능한 거 같아.

요크티넨 궁으로 가는 길, 카테드랄 뒤
요크티넨 궁 정원
요크티넨 궁에서 본 하늘




왕의 광장


궁전을 나와 왕의 광장으로 갔어. 삼면이 중세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 이곳이 중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중심지였다고 해. 중심부에는 아라곤 왕들의 궁전, 왼쪽에는 방금 나왔던 요크티넨 궁과 마르티 왕의 높은 망루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산타 아가타 예배당 있어.


광장 가운데 카페처럼 파라솔과 의자가 많았고,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를 맞이 했다는 계단에는 가이드 투어 사람들로 가득해서 사진을 찍지 않았어.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풍경은 한 여학생이 첼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한 꼬마 아가씨가 감상에 젖어있는 모습이었어. 주위와 왠지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어.


아! 이베리아 반도는 여러 개의 국가가 있었어. 현재의 마드리드가 속한 지방은 이사벨라 1세가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왕이고, 바르셀로나가 속한 지방은 페르난도 2세가 아라곤 왕국의 왕이었어. 그래서 둘이 결혼함에 따라 현재 스페인 왕국이 탄생했어.


아무튼 이사벨라 여왕이 콜럼버스를 왜 이곳에서 맞이했는지, 왜 부부 모두가 왕인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어. 이사벨라 1세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왕(게임 문명에서도 스페인 리더로 등장)이기에 관련된 역사는 꽤 재밌어. 페르난도 왕과 야반도주라던지, 콜럼버스를 지원한 이야기라던지, 등등......

왕의 광장


그곳을 벗어나려는데 유리창으로 보호되어 있는 곳이 보였어. 고대 로마 시절 유적이 있었어. 이천 년 전의 물건이지. 이곳도 로마만큼 다양한 시간이 존재하는 곳이었어. 예배당 아래에는 더 많은 유적이 있다고 했지만 로마를 갔다 와서 그런지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신기한 건 모든 유리가 전반사가 된다는 것. 그래서 유리창은 안에 있는 이천 년 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일행들을 보여주고 있었어. 내가 여러 시간이 포개어진 이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어. 유리에 비친 나와 일행들의 사진을 남기고 이곳을 나왔어.



광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어디서 맛있는 향이 솔솔. 바로 빵집.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니 방금 빵 구운 향은 우리 모두 발길을 멈추게 했지. 쇼윈도에 있는 빵을 한참 보다 결국 초코 크루아상을 사 먹었어. 초코와 밀의 달달하면서 쫄깃쫄깃함이 얼마나 맛있는지, 초코와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 최고였어.


레이알 광장으로 가기 위해 산 자우메 광장 앞의 큰길로 나왔어. 이 일자로 쭉 뻗은 길의 풍경은 평소에 스페인을 상상했던 곳이었어. 그래서 가장 스페인스럽다고 생각한 곳이야. 건물이며, 사람들이며, 향이며 모든 것이 스페인 그 자체 같았어.


산 하우메 광장 앞 길




레이알 광장과 라 폰다


레이알 광장은 현대인들의 휴식 공간이었어. 주위로 많은 카페와 바, 레스토랑, 플라멩코 극장 등이 있어. 사람들도 사진 찍으며 쉬고 있었지. 이곳에는 가우디 첫 작품이 있어 더 유명해. 내일 가우디 투어를 할 예정이라 간단히 구경만 했어. 왜냐면 점심이 주목적이라 광장은 지나가는 길에 들리는 거였거든.


레이알 광장


근처 '라 폰다'라는 저렴하고 괜찮은 레스토랑이 목적이야. 갔더니 줄이 와우~ 점심시간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 첫 타임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어.


스페인의 점심시간은 보통 1시부터야. 그전에 여는 곳은 관광객이 주 고객이라고 생각해도 돼.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에는 평일 점심에 메뉴 델 디아라는 코스 요리가 있어. 오늘의 메뉴라고 해서 싸게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한 가지 메뉴만 고정되어 있는 게 아냐, 보통 3~4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어. 그래서 퍼스트, 세컨드, 디저트 그리고 상그리아 추가. 이렇게 먹어도 15유로 이내야.

해물 빠에야랑 아이스크림이 맛있었어. 서빙도 빠르고 가격도 싸고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지. 계산하는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덕분에 스페인 특유의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어.

해물 빠에야


스페인에 와서 그런가 시에스타가 찾아왔어. 즉, 낮잠이 너무 왔어. 원래 낮잠을 하루에 행복으로 생각할 만큼 좋아하긴 하지만 여행이니 참아왔지. 그런데 스페인은 정말 참기 힘들 만큼 잠이 몰려왔어. 따뜻하고 포근한 기후 때문에 더 그런가 봐.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꼭 낮잠을 자야 하나 봐.




바르셀로나 산책과 카테드랄


잠도 깨고 소화도 할 겸 정처 없이 골목골목을 다녔어. 1차선 도로를 다니다 보면 광장이 나와. 그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걷다가 광장을 만나면 쉬다가 반복했어. 이곳을 다니다 보면 바르셀로나만의 특별한 점은 여유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어디 가나 어느 사람이거나 여유가 느껴져. 특유의 허세도 있긴 하지만. 그런 여유로움이 참 좋았어.


바르셀로나 산책


마지막으로 뒷모습만 둘러봤던 카테드랄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 갔어. 딱 봐도 고전적인 고딕 형식이야. 하지만 파사드는 19세기 때 만들어져 네오고딕 형식이래. 파리의 노틀담 성당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 이곳에도 줄이 잔뜩.


결국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고 일찍 게하로 향했어. 날씨가 생각보다 점점 더워져서 체력 소비가 있었는지 모두 지친 거 같아. 거기다 잠까지.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이 걷긴 했어. 바르셀로나 여행은 여유니까 여유를 즐겨야지.


돌아가는 길에 카탈루냐 광장에서 잠시 쉬다 오늘의 소감 같은 걸 나눴어. 아침과 달리 광장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어. 현지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있는 거 같았어. 다양한 문양의 타일과 동상, 조경들이 사람들의 여유와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카테트랄 (바르셀로나 대성당)


게하에 너무 일찍 들어왔는데 우리말고도 다른 분들도 있었어. 저녁도 같이 먹고, 상그리아에 하몽, 치즈도 먹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깔깔 거리며 즐거운 밤을 보냈어.


네시에 자러 가자



파리에서는 밤 12시까지 여행했는데 오후 4시에 여행을 끝내다니, 컨셉에 맞게 여행했어요. 덕분에 체력도 회복했지만 글도 짧아졌네요. 짧아진 글이 어색하지는 않을지, 다시 긴 글을 소화하실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이 들긴 하네요. 하지만 재밌다면 상관없겠죠.


오늘은 아이유가 부른 나의 옛날이야기 (원곡 : 조덕배)를 들으며 글을 썼답니다.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는 곡이에요. 저는 기다림이란 단어에 따스함이 느껴져서 그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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