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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을 빙빙 돌며 걷기 #1

여행 38~39일. 오스트리아 1~2일.

by 어린왕자

2014년 7월


아침 비행기라 새벽에 일어났어. 거기다 늦게 자서 천근만근이야. 한 달간 같이 여행했던 형과 한국에서 보자는 인사를 하고 게하를 나왔어. 어두운 새벽에 가로등만 밝게 빛났어. 아무도 없는 거리에 마음도 뭔가 쓸쓸했지만 걷다 보니 쓸쓸했던 그 자리에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차기 시작했어.


지하철을 타고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 졸려 보이는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며 티켓팅 한 후, 일찍이 게이트로 향했어. 줄이 없으니 좋더라. 마드리드에서는 다음 여행지로 가는 티켓이 없어서 우선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날아갔어. 역시 이베리아 반도의 출입구는 바르셀로나 공항이야. 그곳을 거쳐 다음 여행지인 오스트리아의 빈에 도착했어.


빈 공항(Flughafen Wien)이 얼마나 외곽인지 그냥 허허벌판이야. 공항버스를 타고 게하로 가는 내내 음악의 도시라는 느낌은 없고 조용한 외곽 소도시 같아서 '수도 맞아?' 하는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맞이했어. 1시간 채 안 걸려 빈 서역(Wien Westbahnhof)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게하에 도착했어.


게하에서 설명을 듣고 마침 늦게 나가는 투숙객이 있어서 같이 나갔어. 새벽부터 나서서 피곤하기도 하고 동행이 빈에서 마지막 날이라 딱히 멀리 가지 않고 주위를 산책하듯 다녔어. 동행과 저녁을 먹으면서 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IMG_1802.JPG 빈의 하늘




2014년 필름 페스티벌


게하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나가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나갈 수가 없었어. 그래도 소나기였는지 오래 내리지 않고 그쳐서, 호기심에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타고 슈테판으로 갔어. 혼자 나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다녀올 생각에 사진기를 놓고 갔지. 보고 싶었던 슈테판 대성당을 보니 카메라를 놓고 온 것을 후회했어. 폰으로 찍었어도 DSLR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무언가 홀린 듯 사람 없는 골목을 걷기 시작했어. 그렇게 걷다 멀리 주위보다 환하게 밝은 곳이 보여 그곳으로 향해 갔어.


도착한 곳은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는 시청사였어. 이때만 해도 필름 페스티벌이 뭔지, 이곳이 시청 인지도 몰랐어. '와 멋진 건물 앞에서 대형 행사를 하는구나' 정도였지.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늦은 시간이라 잘 안 보였어도, 빈 시청은 외모가 엄청난 건물이었어. 한국의 평범한 현대식 시청 정도 생각했으니깐.


다들 입구에 있는 간이음식점에서 맥주와 음식을 즐기고 있어서, 시청사 앞 넓은 광장에 놓인 대형 스크린에는 의자 반 이상이 비어있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어. 덕분에 앉아서 공연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지.


아! 필름 페스티벌은 클래식을 비롯한 음악 콘서트, 오페라, 발레 같은 영상을 커다란 화면으로 많은 사람들과 무료로 볼 수 있는 축제야. 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안내자 한 분이 스크린 앞으로 나와 간단한 설명을 해주기에 모르고 가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어.


난 우연히 기다리던 빈 필 공연을 보고 들을 수 있었어. 7월에 빈 필은 잘츠부르크에 머물고 있다고 해. 없는 동안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어. 특히 모차르트의 곡은 정말 환상적이었어. 이래서 빈 필이 최고라고 하나? 빈 시민들은 자주 들어서 영상으로는 별루인가 봐. 이런 문화적 차이란..... 이 아니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비 오는 날은 쉬는데 아마 소나기로 행사가 쉬는 줄 알고서 사람이 적었던 거 같아. 비로 인해 늦게 시작해서 늦게 나간 나도 시작 때부터 볼 수 있었어. 정말 타이밍이 좋았지. 비는 나에게 좋은 일을 주는 거 같아.


하나의 공연이 끝나니 목이 말라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사서 마셨어. 멋진 건물 앞에서 소나기 온 뒤의 시원한 공기 속에 빈 필의 연주를 듣는 건 유럽에서 원하던 그런 순간이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많아져 가득 찼어.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화장실가기도 불편할 정도였지만 마감시간까지 다 보고 나왔어. 좋아하는 클래식만 나왔거든. 이때까지만 해도 빈이라서 클래식 영상만 보여주는 줄 알았어. 아무튼 이런 멋진 공간에서, 이런 멋진 공연을 들을 수 있다니 무료라는 게 미안해질 정도였지. 한국도 해주면 안 되나?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 게하로 돌아가니 다들 자고 있어서 조용히 세수만 하고 잤어.




링 거리 (Ringstrasse)


늦게 일어나 가장 늦게 게하를 나왔어. 어제는 빈 필을 봤으니 이제 도시 빈을 봐야겠지. 오스트리아의 빈을 선택한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고, 어릴 적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의 도시를 구경하고 즐겨보자는 간단한 이유였어. 그래서 뚜렷한 목적지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여행하는 게 목표.


그리고 빈 여행은 간단해. 링 거리(Ringstrasse) 안과 링 거리를 따라 여행하면 돼. 링 거리란 말 그대로 ring(반지)처럼 생긴 거리야. 중세에는 원이나 사각형으로 성벽을 쌓아 방어하잖아. 현재에는 그 성이 필요 없어져 허물고 그 자리를 따라 주요 건물과 공원, 주요 도로를 만들었어. 걷기 싫다면 그 도로 위에 천천히 운행되는 트램을 타고 주변을 구경하면서 이동하면 눈도 좋고 다리도 편해. 강력 추천!! 성 내부도 크지 않기 때문에 도보로 쉽게 다닐 수 있어. 빈은 이때까지 다녀왔던 나라에 비해 트램이 잘 되어있어서 트램 타고 다니기 좋아. 그래서 나도 링 따라 돌고 도는 빈 여행 출발.


시청사 앞 공원




지하철 (U-Bahn)


지하철 빈 서역에서 3호선을 타고 슈테판 역 (Stephansplatz)으로 갔어. 지하철역이 지어진지 조금 된 거 같았지만 깔끔하고 누구나 쉽게 잘 찾아갈 수 있게 되어있어. 오스트리아의 지하철은 Metro의 M이 아냐. 그러니 M를 찾으면 안 돼. 독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U-Bahn이라 파란 바탕에 흰색 U자를 찾으면 돼. 빈도 스페인과 같이 지하철, 트램, 버스 승차권이 동일해. 그리고 스페인에서 사용하던 승차권과 형태도 같아. 그리고 승차권 하나로 1시간 이내에 추가 비용 없이 환승할 수 있어서 엄청 편하지. 여기도 구역제인데 관광지 대부분이 1구역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판매기를 찾지 못하겠다면 버스나 트램 운전사 뒤에 설치되어 있으니까 안에서 사도 돼. 대신 조금 더 비싸.


그리고 빈에도 다른 나라와 같이 비엔나 카드(Vienna Card)라고 여행자 교통 카드가 있어. 3일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각종 할인 혜택이 있어.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맞혀 사용하면 좋겠지? 난 이틀 남았으니까 2일권을 구매했어.




슈테판 대성당 (Domkirche St. Stephan)


빈 여행의 시작은 빈의 중심인 슈테판 대성당. 빈 여행에서 '이곳은 가봐야지'하는 유일한 곳이야. 빈 시민들의 중심? 근본? 시작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새해를 이곳에서 맞이 하는 전통이 있을 만큼 빈 시민들에게 아주 중요하고 상징적인 곳이야.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바로 커다란 첨탑이 보이며 성당의 옆모습을 볼 수 있어. 크기는 다른 대성당과 비슷해도 무게감이 압도적이야. 어젯밤에 잠시 본 대성당과 다른 느낌이었어. 정면으로 가면 다른 성당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큰 세모 지붕 위에 첨탑 두 개가 놓여 있는 형태야. 마치 세모 집 지붕 위에 굴뚝이 있는 것처럼. 여태까지 본 성당 지붕은 양쪽 탑을 넘지 않았으니까 조금 다르지. 특이하게 생겼다 싶어서 사진을 찍는데 성당 앞 공간이 좁아. 그래서 번들 렌즈로는 다 담기지 않아 골목까지 뒷걸음쳐서 찍어봤지만 양쪽 벽에 잘릴 뿐이었지. 그런데 이렇게 보니 세모 모자 쓴 사람 얼굴 같아 보였어. 나만 그렇겠지?

슈테판 대성당 정면과 내부


다시 다가가 내부로 들어갔더니 웬 철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안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어. 통과하는 문도 보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안에 있는 사람도 없어서 멀리서 눈으로만 보고 나왔어. 특징이라면 12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인데 내부가 상당히 밝다는 거야. 마드리드에서도 말했지만 중세에 지어진 성당은 두꺼운 벽으로 지붕을 지탱해야 해서 창이 작고, 수도 적어. 그 후, 고딕 형식의 성당은 이 부분을 해소했지만 스테인 글라스가 상당히 진해서 일반 실내보다는 어둡지. 그런데 이곳은 스테인 글라스가 옅어서 모자이크보다는 하얀빛이 그대로 들어왔어. 그 반대로 내부 벽면들은 어두운 편이라 내부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졌어. 안 밖으로 중후한 성당 같아.


슈테판 대성당 지붕의 문장, 성당 내부

밖으로 나와 성당을 따라 돌며 외관을 살펴보니 확실히 지붕이 다른 성당과 달라. 둥근 큰 돔도 보이지 않고 지붕형태가 단조로워. 특히 지붕의 여려 색의 지그재그 무늬가 눈에 띄면서 매력적이야. 자세히 보면 타일로 제작하여 모자이크로 무늬를 만들었어. 그리고 이곳의 지배자이자 정략결혼으로 유럽의 작위를 수집했던 합스부르크가 황제들의 문장들이 타일로 그려져 있어. 그들에게도 상징적이었던 성당이라 지하에는 합스부르크가의 납골당이 있다고 해. 그런데 여기에는 내장만 안치. 심장은 아우구스티 성당으로, 유골은 카푸치노 성당으로 안치되는 게 그들의 장례법이라고 들었어. 이것도 삼위일체인가?


슈테판 대성당앞의 마차, 성당 내부


두 첨탑은 계단을 통해 오를 수가 있지만 왠지 오르지 싶지 않았어. 오늘 많이 걸을 예정이라. 그리고 멀리서 볼 때 성당이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한쪽 벽이 유독 검게 보여. 그을림 같았어. 대형 화재가 있었나 봐. 이후 찾아보니 화재로 인해 다시 지어졌다는 인터넷 정보를 얻긴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한 번의 화재가 아닌 거 같았어. 땅도 많은 합스부르크가가 화재 때의 자재를 그대로 놔두다니. 돈 좀 쓰는 사람들로 아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합스부르크 대제국 수도의 대성당에 비하면 그리 크고 화려하지는 않은 거 같네.


주위에 중세풍의 마차들이 많아. 마부들에게 돈을 지불하면 근방을 마차를 타고 관광할 수 있다고 해. 한 번쯤 타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 같아. 근데 이 많은 마차를 이용할 만큼 수요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 빈을 다니며 마차를 탄 사람들을 본 적이 없거든. 더운 여름이라 그런가? 그래서 말들의 분비물이 바닥에 있어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 보기 좋지는 않았어. 말들도 엄청 심심하고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케른트너 거리 (Kärntner Str.)


성당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지하철 방향으로 걸어갔어. 이곳은 케른트너 거리로 빈에서 가장 핫한 곳이야. 다양한 가게들이 많은데, 특히 악세사리점과 부티크 샵이 다른 곳에 비해 많아. 그중에 스와로브스키 본점이 있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거리지만 이곳의 명물은 간판이야. 그래서 간판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유명한 거리답게 사람밖에 보이질 않아서 게하로 돌아올 때를 기약했어. 그리고 클래식의 도시 빈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면 클래식 버스킹 정도는 있을 줄 알았더니 아무도 없어. 그걸 기대했던 건데. 동전도 있는데.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끝인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Wiener Staatsoper)에 도착했어. 빈에 처음 왔으나 왠지 눈에 익숙한 느낌은 왜일까? 그리고 생긴 것만 봐도 오페라 공연하는 곳이야. 미디어에 오페라하우스라고 노출이 많이 되어서 그런가 봐. 멀뚱히 서서 '오페라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곳에서 공연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 참고로 저렴하게 공연을 즐기고 싶다면 입석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해. 학생 할인하면 3유로(?)라고 들었어. 정녕 학생 때 유럽을 와야 하나......




트램


반대편에는 브리스톨 호텔이 있어. 그곳에 태극기가 걸려있어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빈에서 유명한 비즈니스호텔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비즈니스 할 것 같은 양복 입은 사람들만 드나들어서 신기했어. 국가 중요 회담이라도 하는 거 같은 분위기였어.


브리스톨 호텔


그 앞으로 오래된 트램이 지나갔어. '어? 포르투갈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데', 이게 20세기 유럽 트램의 트렌드가 봐. 그곳에서 트램을 탔어. 사람이 적은 뒷자리 창가에 앉아 창밖을 봤어. 정말 구경하기 좋게 천천히 다니더라. '이게 유럽여행이지'할 정도로 유럽 느낌이 물씬 났어. 역시 링 트램. 내리지 않고 우선 링을 한 바퀴 돌았어. 오래된 도시 속을 다니는 트램은 흔치 않으니까. 링이 크지 않아서 생각보다 얼마 걸리지 않았어. 반드시 꼭 해 봐. 유럽 여행의 낭만과 여유를 즐길 수 있을 거야.


한 바퀴 돌기 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트램 정거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어.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있나? 냉큼 내려 가게 앞의 긴 줄을 서서 사 먹었지. 완전 맛있어!!


한 바퀴 돌아 왕궁 정원, 마주 보고 있는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서 Volksgarten 앞에 내렸어. 번역하면 민속 정원? 시민 정원? 시민 공원이 더 와닿으려나? 아무튼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어.


신 왕궁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큰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신 왕궁 (Neue Brug)이야. 팔 벌려 왕궁 앞 광장을 감싸는 듯한 형태로 지어져 있어.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왕궁이 한 프레임에 다 나오지 않을 만큼 컸어. 이 큰 왕궁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니. 왜냐면 합스부르크 왕가가 끝이 난 후 완공되었거든. 뭔가 왕궁이 좀 안쓰럽더라. 히틀러와 관련된 일도 있고 이래저래 오스트리아에서는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 더 그런 거 같아.




잔디 위에서 휴식


다시 정원을 걸었어. 유럽식 정원답게 각진 형태의 작은 나무들과 많은 꽃들로 예쁘게 조경을 해놨어.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고, 공원도, 사람도 여유롭고 평화로웠어. 마드리드도 여유로웠지만 빈에 비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정말 내가 생각하던 여유가 넘치는 유럽이었어. 잔디에 누워 자는 사람을 흔하게 봤을 정도니까. 소매치기가 흔한 유럽에서 혼자 잔디에서 낮잠을 자다니. 한국인가? 역시 유럽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는 곳이야.



그래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 혼자서 잔디밭에 누워 자고 싶었어. 과연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 눈이라도 감고 있을 수 있을까? 소매치기를 본 건 여러 번, 당한 건 두 번이나 되니까. 그리고 워낙 한국과 유럽에서 사람들이 겁을 줘서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어. 그러나 그런 인식조차 무시하고 싶을 만큼 강한 유혹이었어.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 밑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지. 이게 어릴 적 상상하던 유럽 여행이야.


잠에 들지는 못하고 몸의 모든 긴장을 빼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어.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더니 아저씨가 작은 잡지를 내밀며 하나 사라고 하는 거야. 놀란 마음에 '노 땡스'를 외치며 연신 손을 흔들었어. 그러니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다가갔어. 한국에서는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어. 아무튼 나의 늘어짐은 잠시뿐이었어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 일어나 다시 정원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어.


Volksgarten




의사당 (Parlament)

정원 맞은편에는 오스트리아 의사당이 있어. 의회의 근본은 고대 그리스라 그런가 의사당은 다 그리스풍인 거 같아. 여기 앞과 위에 많은 조각들은 인사해도 될 정도로 사람 같아. 그중에 이곳에서 가장 주인공은 황금 투구와 갑옷, 창을 든 아테나. 혼자 황금 치장을 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다양한 영역의 신이지만 지혜롭게 정치하고 전쟁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 음? 중립국인데? 아무튼 마침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어서 의사당에서 빈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어.


오스트리아 의사당




시청사 (Rathaus der Stadt Wien)


의사당 옆 블록에 있는 공원을 걸었어. 이곳은 정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경된 곳이었어. 작은 꽃들이 풀밭 사이에 피어있어 너무 평화롭고 안정되는 느낌이 좋았어. 그리고 여기에도 사람들이 잔디에 누워있기에 눕고 싶었지만 참았지. 커플만 보였거든.


공원을 빠져나오니 어젯밤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한 신 시청사가 나왔어. 와~ 이게 시청이었다니!! 네오고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와'라는 감탄사가 나와. 뾰족하지만 완만한 느낌과 좌우대칭에 반복되는 통일성, 너무 작지 않은 조각과 장식. '시청을 이렇게 멋있게 지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어. 그리고 '적어도 서울 시청은 이렇게 지어야 되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부러웠어. 신 청사는 새로운 한옥으로 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어.


시청사




보티프 성당 (Votivkirche)


길 건너 맞은편에 연극 전용 극장인 부르크 극장(Burgtheater)을 사진 찍고, 멀리 보이던 보티프 성당을 향해 걸어갔어. 빈 대학교를 지나면 성당 정면이 보이고, 그 앞에 프로이트 아저씨가 서있는 Sigmund-Freud Park라는 작은 공원이 있어. 이곳은 핫플레이스인가, 누워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니? 거기다 한강 공원처럼 누워있을 수 있는 의자들이 있어. 빈의 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 이런 도시의 많은 푸르름 너무 좋아!


부르크 극장
보티프 성당


많은 광고판에 성당이 가려져 있어서 보수 중인 거 같았어. 그래서 가까이 갔더니 사람이 너무 없었어. 반대로 성당 안에는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어. 내부도 고개를 들어보면 공사장인가, 건설 중이가 싶을 정도로 많은 보수 공사 중이었어. 그래서 내가 다녀간 성당 중에 가장 어두웠어. 칙칙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볍게 한 바퀴 돌고는 늘 그렇듯 가장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성당의 공기를 느껴봤어. 입구의 향 연기에 섞인 진한 돌가루 냄새가 나는 게 뭔가 아파 보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쭉 가라앉았어. 거기다 외관은 시청사와 같은 디자인으로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됐는데, 내부는 왜 이렇게 나이 들어 보일까? 이유모를 씁쓸함을 안고 일어나자 성당 가운데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왔어. 이곳의 주인공은 이 샹들리에 같아. 멀리 있는 십자가를 가리지 않는 적절한 높이와 크기, 성당의 중심을 잡아주는 위치, 주위의 장식과 같은 황금색은 화려하기보다는 중후함을 주고 있었어. 꽤 많은 정성이 들어간 거 같았어.


보티프 성당 내부


성당을 나오니 사람 하나 없는 풍경. 쓸쓸함에 풀밭 사이로 걸으며 성당 외관을 살펴봤는데, 화재 정도가 아니라 폭탄 맞은 듯한 커다란 검은 그을림이 있었어. 이유모를 쓸쓸함은 이것 때문이었나 봐. '너 상처를 많은 광고판으로 가리고 있었구나.' 화려한 반창고들은 검게 타버린 화상 치료비였어. 건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짓을 하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섞인 감정들이 밀려왔어. 그래서 공원에 사람 없는 곳을 찾아 빈 벤치에 앉아 멍 때렸어. 그러다 성당을 바라보니 성당의 가장 큰 반창고가 다르게 보였어. Hannes Mlenek라는 유명 작가의 작품인데, 흑백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마치 성당의 상처와 마음을 말해주는 거 같았어.




증권거래소와 로사우어 배럭 (Rossauer barraks)


머리와 마음속을 비우고 싶어 링을 따라 그냥 걸었어.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어. 역시나 아무 건물이 아니라 증권거래소. 빈은 증권거래소도 다르네. 앞을 보니 사람도 전혀 없고 건물도 반복되는 느낌이라 트램을 탔어.


증권 거래소와 트램


그런데 갑자기 좌회전을 하더니 주택가로 주변이 변한 거 같았어. 링을 벗어난 거야. 다른 트램을 타버렸어. 얼른 다음 정거장에 내렸더니 앞에 증권거래소랑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있었어. 로사우어 막사. 국방부야. Franz Josef I라고 적힌 걸로 봐서는 두 건물 다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도시계획 때 만들어졌나 봐. 이 건물을 자세히 보면 약간의 착시를 일으켜. 창문의 반원 모양 사이를 선을 그어놓은 듯이 건물을 잘라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사진을 보다 이상해서 눈으로 확인, 트램 선이 지나가서 그런가 싶어 또 확인. 크지 않은 모양이 많이 반복적으로 구성되어서 그런가 봐.


로사우어 막사


다시 왔던 길로 돌아오니 트램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냥 링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증권거래소 옆을 지나가다 Haus der Europäischen Union이라는 간판이 보였어. '어라? 유럽 연합 건물이 빈에도 있었어?' 브뤼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중립국이라서 그런가 봐. 유리로 된 건물에 맞은편 근대 건물인 증권거래소가 비쳤어. 바르셀로나에도 봤지만 이런 게 참 재밌더라.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느낌 말이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셔터를 누르면서 링 안쪽으로 걸어갔어.


Haus der Europäischen Union에 비친 증권거래소



빈은 확실히 덥지 않았어요. 마드리드가 너무 더워서 그런 거겠죠. 위도는 높지만 두 도시 모두 고도가 높은 걸로 아는데 역시 지중해 기후라 그럴까요? 아무튼 덥지 않아서 혼자서 열심히 다닌 결과 두 편이 되었네요. 역시 여행에 지친 게 아니라 더위에 지친 거였어요. 그리고 혼자 다니다 보니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다녔던 거 같고, 골몰히 생각할 시간이 많아 느꼈던 감정도 많았던 거 같아요. 이게 다 다른 곳보다 치안이 좋아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새삼 한국의 안전함이 감사하네요.


다음 편은 링 내부와 다녀왔던 곳의 야경까지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다음 편도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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