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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는 더우니까 쉬엄쉬엄 걷자

여행 37일. 스페인 10일.

by 어린왕자

2014년 7월

마드리드


어제 톨레도를 갔다 와서 늦게까지 놀았더니 좀처럼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어. 몸이 당채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 여기까지 와서 귀찮아, 귀찮아를 반복하며 게하에서 점심때까지 죽치고 누워있었어. 사장님께 멀리까지 와서 방안에만 있다고 구박을 듣다가 친해져서 마드리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어. 점심을 대충 때우고 어기적 거리는데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돌아왔어. 너무나도 더워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거야. 결국 에어컨 풀가동되는 게하에서 떠들며 놀았지. 그러다 해가 조금 넘어가는 거 같아 나갈 준비를 했지만 형은 쉬고 싶데. 그래서 저녁에 만나기로 정하고 혼자 출발했어.


IMG_1619수정.jpg 알무데나 대성당




알무데나 대성당


나가자마자 후끈 거리는 열기가 '그냥 게하에 있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가슴속에 불 지폈어. 다행히 심장을 태우기 전에 파란색의 알무데나 대성당이 보여 바로 들어갔어. 역시 성당은 온도가 달라. 에어컨 켜놓은 거 같아. 구경보다도 가장 뒷자리에 앉았어. 시원함은 '다시 어찌 나가나' 하는 걱정으로 변했어. 그래도 들어왔으니 걱정은 뒤로 미뤄놓고 우선 성당 구경을 했지.


풀네임은 산타 마리아 라 레알 데 라 알무데나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la Real de la Almudena de Madrid). 이름에 있듯이 알무데나 성모에게 헌정하기 위해 지어진 성당으로 성모상이 모셔져 있어. 딱 봐도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 소위 새 거 느낌이야. 외관만 봐서는 마주 보고 있는 마드리드 왕궁과 비슷한 디자인이기에 '같이 지어져서 보수를 했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1993년에 완공되었다고 해. 사그라다 파밀라아를 제외하고는 이때까지 본 성당에 비해 완전 젊다 못해 나보다 어리지. 그래서 앞서 본 성당과 달리 색감이 화려하고 심지어 팝아트까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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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무데나 대성당 내부


스테인 글라스나 그림들도 화려한 색감에 단순하게 표현된 현대 미술 작품 같았어. 그리고 스테인 글라스가 옅어서 채광이 많이 들어와 실내가 아주 밝은 편이야. 앞서 성당들은 대부분 낮에 들어가도 어두운 게 특징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야.


천장에도 스테인 글라스가 있어서 바닥에 그대로 프리즘을 통과한듯한 빛이 무지개가 되어 비치고 있었어. 별거 아닌 것에 아이가 된 듯이 신기하고 재밌었어. 파이프 오르간도 새 거같이 반짝반짝 되는 스테인리스 같았어.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나 성모상이야. 이곳의 상징이지. 줄 서서 계단을 올라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데, 난 교인이 아니다 보니 방해될 거 같아 가지 않았어. 그리고 앞서 여러 번 말했지만 왠지 그들이 성스럽다고 여기는 것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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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무데나 성당 내부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성당을 나가려고 마드리드 왕궁 쪽 문으로 걸어가다 만난 장면이야. 문 위에 팝아트 한 작품이 걸려 있는데, 멀리서 보면 뭉크의 절규 작품처럼 얼굴에 양손을 잡고 있는 듯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수녀님이었어. 손이 아니라 수녀복이었던 거야. 멀리서 본 절규가 가까이 보니 안식이었나. 흑백으로만 그려진 이 작품 밑의 열린 문에는 빛이 강하게 들어와서 빛의 길로 인도받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받아 묘했어. 매트릭스 2편의 문을 열어 아키텍트를 만나러 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어. 영화처럼 다른 세상이 나올 거 같아도, 영화와 달리 왠지 이 문을 나가면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았어. 성당을 나가 다시 바라보니 복잡하고 정교한 중세의 큰 틀에 단순하지만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 현대 미술이 잘 조합되어있는 거 같아 신선하고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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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03.JPG 알무데나 대성당 안의 무지개




Km. 0


성당을 나오면 마드리드 왕궁이 정면으로 보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성당 계단에 앉아 있었어. 왜냐면 이곳의 그늘이 참 시원하거든. 반대로 왕궁 앞뜰 햇볕에는 사람이 없지. 나도 계단에 잠깐 앉아 사람 구경하다가 '여행 왔으니 여행을 해야지' 다짐하며 다시 걸어갔어.


그리고 이틀 전에 솔 광장에서 놓쳤던 것을 찾았어. 바로 솔 광장의 햇살처럼 뻗은 9개의 길의 시작점 (origen de las carreteras radiales). Km. 0 표지석이야. 이것을 찾으려고 광장 가운데로 가서 바닥을 보며 다녔어. 딱히 뭘 찾으러 다니지 않는 내가 이걸 찾은 이유는 이 0 km 표지석 위에 발을 올리면 다시 스페인으로 온다는 전설이 전해져서야. 다음에 온다면 차를 빌려 해안을 따라 남부까지 가보고 싶어. 물론 이 표지석을 다시 만나러 마드리드도 와야지. 그래야 또 올 테니.


IMG_1715.JPG Km. 0 표지석




그늘 따라 산책


광장에 엄청 큰 사과 매장이 있는데 한국과 달리 검은 바탕에 흰 사과가 있어서 눈이 갔어. 이틀 전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지만 오늘 어마어마하게 덥긴 한가 봐. 이곳에도 사람이 없었어. 햇볕을 피해 건물의 그림자에 숨어 프라도 미술관을 향해 갔어. 그러니 이틀 전에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가게 됐지. 의회도 보고 포세이돈 분수도 봤어. 포세이돈 분수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분수는 찍지 않고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절반 정도 키의 손자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 셔터를 누르고 말았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흐뭇하게 바라보다 다시 걸었어.


공원을 따라가다 프라도 미술관 앞을 지나 걸었어. 작은 오르막을 오르면 새 하얀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성당(San Jerónimo el Real)이 시선을 사로잡아. 그 옆에는 스페인어 규정을 총괄하는 스페인 왕립 학술원(Real Academia Española)이 있어. 국립국어원과 같은 역할이겠지? 표준어, 왕립이란 단어 때문에 건물도 너무 각이 서있는 느낌 같은 느낌이야. 두 건물 사이에 가까이 가 서서 외관을 살짝만 보고 다시 걸었어.


IMG_1727수정.jpg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성당


가다가 식물원에 막혀서 미술관을 가로질러 왔던 길을 따라 시벨레스 광장 쪽으로 향했어. 이 거리는 길 가운데 공원이 있어서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어. 그래서 저절로 걸어갔던 거 같아. 마드리드 중심가에 길 따라 공원이 있다는 게 신기해. 그리고 조경이 반복되지 않고 모습이 계속 변해서 숲이나 들 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더 좋았어.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사람들, 책 읽은 사람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도 참 여유로워 좋았어. 그런데 이틀 전 주말보다 평일에 사람이 더 많은 거 왜일까?


IMG_1728.JPG 스페인 왕립 학술원



시벨레스 (Cibeles) 광장과 그란비아 출발점


시벨레스 광장 중심에는 시벨리아 분수가 있어. 포세이돈 분수와 마찬가지로 회전교차로 가운데 있는데, 여기에는 마드리드 시청주정부, 스페인 은행이 있는 곳이야. 그래서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마드리드의 엄청난 교통량과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에 깜짝 놀랐어. 차 열기와 사람들 소리에 더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공원의 그늘 속을 걷다 보니 까무잡잡한 엄청 큰 스페인 은행 앞에 서게 됐어.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왠지 방해될 거 같아 외관을 따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갔어.


IMG_1732수정.jpg 스페인 은행 앞 길


그러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1900년대 거리가 짠. 바르셀로나의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가 있던 파세오 데 그라시아 같은 거리가 나왔어. 거리명은 Calle de Alcalá. 북쪽으로 있는 길은 그란 비아의 출발점이야. 두 길 사이에 모퉁이에 세모 모양의 메트로폴리스 빌딩이 눈에 확 띄었어. 삼각형 모양이며 검은 돔 위에 검은 천사 상과 메트로폴리스라는 이름판이 참 인상적이야.


그 옆에 회색 대리석에 황금띠가 있는 건물이 또 눈길을 사로잡는데 호텔인가 싶었지만 구글맵을 확인하니 Government Department of Finance and Public Administration, 관청이었어. 투머치한 화려함도 그렇고, 어쩌다가 부서가 길 건너 혼자 떨어진 걸까?


가던 길로 가면 솔 광장이 나와서 다시 시벨레스 광장으로 향했어.


IMG_1737수정.jpg 메트로 폴리스 빌딩과 그란 비아의 시작점




푸에르타 데 알칼라 (Puerta de Alcalá)


길 끝쪽에 푸에르타 데 알칼라가 작게 보여서 걸어갔어. 알칼라의 문이라는 이름대로 알칼라 지구로 가는 문인데 딱 봐도 개선문이지. 대신 아치가 여러 개야. 나폴레옹의 침략을 막은 스페인 독립전쟁의 승리를 기념으로 만들어졌다고 해. 그래서 이곳 광장 이름도 Plaza de la Independencia, 독립 광장이야. 나폴레옹은 어릴 적 영웅이라고 위인전에 적혀 있더니 여기저기 싸움 건 싸움꾼 같아.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나폴레옹과 전쟁하지 않은 국가가 없는 거 같아.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 위인전은 찬양글의 신화라는 생각이 들어.


IMG_1741수정.jpg 멀리 보이는 푸에르타 데 알칼라




다시 솔 광장 그리고 솔 광장의 거리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 푸에르타 데 알칼라까지는 가지 못 하고 솔 광장에서 어제 멤버들을 만났어. 광장에 정말정말 사람 많더라. 이틀 전에도 느꼈지만 더워서 해지고 나면 다들 나오나 봐. 정말 사진 찍으면 프레임 안에 100명은 넘게 나와서 카메라를 내렸어.


광장의 거리로 들어가니 오래된 영화관, 호프집, 백화점, 식당이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으려나? 난 특이하게 국제시장이 있고 영화제가 열리는 옛 도시 느낌이 나는 부산 남포동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그란 비아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지. 그래서 낯설지가 않았어. 가게 구경을 하다 식당에 들어가 이른 저녁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게하로 향했어.


영화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유럽에서 영화관을 정말 본적이 드물어. 한국 한 도시에만 수십 개가 있지만 유럽 대도시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 정도야. 그리고 전부다 할리우드 영화만 걸려있고 자국 영화가 없었어.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더니 정말이었어. 한국에서는 한국영화가 전혀 밀리지 않는데 말이야. 덕분에 한국 영화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지.


IMG_1746.JPG 사바티니 정원




사바티니 정원 (Jardines de Sabatini)


가는 길에 마드리드 왕궁의 네모네모난 사바타나 정원이 눈에 뜨였어. 해도 많이 저물어 그림자가 길어져서 정원으로 들어가 봤지. 프랑스식 정원이라 베르사유 궁전 정원처럼 각진 모양으로 조경을 해놨어. 정원이 크지 않아 천천히 30분 남짓 걷다 보니 제자리로 돌아왔어. 정원을 손질한 지 오래되어 각진 모양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딱딱 맞는 네모 형태여야 하는 나무들은 제멋대로 결을 가진 커다란 배추 같았어. 행사를 할 모양인지 무대 설치에 조금 시끄러웠어. 무대 설치하지 말고 나무 머리 좀 깎아주지. 방치된 느낌이라 씁쓸했어. 그런 감정들이 남았는지 게하로 돌아가는 노을 비친 길이 왠지 쓸쓸함이 들었어.


IMG_1743수정.jpg 사바티니 정원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을 간 기억은 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가 기억나질 않아서 이야기하지 않으려다 안 그래도 한 거 없는 마드리드에 프라도 미술관을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 같고, 또 지나가며 한 말에 다음에 갈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 해볼게.


게하 사장님께 미술관 폐장시간 2시간 전은 무료라는 정보를 얻었어. 그러니까 주말은 오후 5시부터, 평일은 오후 6시부터 2시간 무료 관람이야. 그래서 우리는 순진하게 무료입장 10분 전에 미술관에 도착했어. 그러나 줄이 얼마나 긴지 끝이 보이질 않았어. 미술관 옆을 한참을 걸어가 줄 끝에 섰어. 미술관에는 입구가 세 곳이 있는데 우리는 계단 아래에 있는 고야 문을 통해 입장했어.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서 0.00유로라고 적힌 입장권을 받고 들어갔어. 그리고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지품 검사를 해. 반입 금지나 큰 가방은 보관소에 맡겨야 하지. 난 가방 없이 카메라만 들고 있어서 프리패스. 사진 촬영 금지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도 프리패스. 믿음인가? 아무튼 곳곳에 사진 촬영 금지 표시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했어. 입장하고 보니 이미 30분 넘게 지났어. 결국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많은 양의 작품이 있는 이곳을 1시간 남짓하는 시간에 감상을 마쳐야 했어.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3대 화가인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가 대표야.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우선 찾아보기로 했어. 그런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에스컬레이터 위에 선 듯이 자동으로 걷게 돼. 동선이 한 방향으로 가면서 볼 수 있게 건물이 설계되어 있어 좋긴 한데, 많은 인파에 그냥 밀려 걸어가게 돼. 바티칸 때와 같은 경험이었어. 줄을 종종 벗어나 그림을 감상해봐도, 결국 밀물 같은 인파에 훅 쓸려가게 되지. 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하지 않았어. 이미 그 앞에도 줄이 잔뜩인걸.


IMG_1725수정.jpg 프라도 미술관


0층을 보고 1층으로 올라가 다니다 보니 미술관 끝에 섰어. 다 본거 같은데 뭔가 빼먹은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 루브르에서 들었던 '마칠 시간이니 어서 나가줘~'라는 방송을 여기에서도 들으니 심장이 콩닥콩닥. 어서 빨리 찾아야 돼. 루브르에서 봤던 작품이 아닌 다른 뒤러의 자화상도 보고, 보쉬의 쾌락의 정원도 보고,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도 봤는데 뭔가 빠졌어. 바로 톨레도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봤던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의 초상. 시간이 정말 촉박했기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역주행으로 가장 큰 통로를 다시 한번 왔다 갔지만 여기가 아닌가 봐.


결국 마지막 방송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야 했어. 0층을 보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나 봐. 1층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 급히 보는 바람에 작품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가슴에, 머리에 제대로 남겨두지도 못했어. 정말 보고만 왔을 뿐. 미술관을 터덜터덜 나오니 일행들은 이미 나와 있었어.


IMG_1713엽서.jpg 마드리드 왕궁


남은 여행지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이제 없어서 아쉬웠어. 더워진 이후, 지쳐버려서 아쉬움만 자꾸 남기는 거 같아 더 아쉬웠어. 이래서 더운 여름 여행은 피하라고 한 건가. 아무튼 아쉬움으로 인해 무거워진 발을 옮기며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조금씩 바닥에 두고 왔어. '다음에 또 오면 돼.'라고 위로하며.


프라도 미술관 무료 관람을 위해서는 30분 전에 줄 설 것!!! 아님 티켓 사서 사람 드물 때 입장하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야.




마드리드의 마지막 날


다시 오늘. 게하로 돌아왔다가 도미토리 사람들과 맥주 마시러 갔어. 이곳저곳을 돌다 그래도 사람이 조금 적은 마요르 광장 구석으로 갔어. 구석진 곳이라 관광지 느낌이 나지 않고 한국 80년도 느낌이 났지. 야외 테이블도 그냥 플라스틱 테이블. 손님들도 관광객보다는 현지 아저씨들이 많았어. 광장을 통해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어서 꽤 분위기는 괜찮았어. 근처 아는 사람들과 한잔하러 온 느낌이라 여행 왔다기보다는 동네에서 친한 사람들 만나는 기분이 들어 좋았어.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 에어컨 앞에서 수다 떨다가, 해지니 사람들과 맥주 한잔이라니. 여행지에서 생각지도 않은 경험이라 오히려 신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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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1달 만에 하는 혼자 유럽여행이 다시 시작이야. 낯가리는 성격이라 이제 혼자 공원에서 낮잠 자는 것도 어렵고, 밥도 혼자 먹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걱정도 되고 쓸쓸해지기도 했어. 혼자 여행하려고 왔지만 정작 혼자 한 건 일주일 정도니까. 늘 그렇듯 사람들이 먼저 다가올 거 같아도, 아는 이 하나 없는 처음 가는 곳인걸. 한편으론 혼자 하는 여행도 재밌으니까 기대도 돼. 그리고 동유럽 쪽으로 가니까 큰 유적지도 많지 않고 대부분 풍경 보러 갈 예정이라, 쉬엄쉬엄 걷기만 해도 되는 여행이라, 너무 큰 걱정은 없었어.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일 뿐이니까.




마드리드에서 한 게 없다없다 했더니 이번 글 쓸 때 절실히 느꼈어요. 이 정도였다니 새삼 놀랐어요. 여행을 한 달을 넘기다 보니 더위를 이기지 못한 거 같아요. 그런데 정말 더웠답니다. 상대적으로 시원했던 유럽에 적응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변명을 해봅니다. 덕분에 마드리드에서 느껴던 더위가 전해져 글들도 지치는 게 아닌가 싶어 3주 내내 걱정이네요. 그래서 이번 주는 그냥 쉬었다 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긴 여행 중에 쉬엄쉬엄 대충대충 지내는 날들도 있는 게 당연하니깐 그냥 넘기지 못했어요. 인생도 천천히 쉬엄쉬엄 갈 때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드리드의 사소한 풍경들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풍경이 다른 외국을 걷는다는 건 늘 새롭고, 신기하고 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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