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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클래식을

여행 40일. 오스트리아 3일.

by 어린왕자

2014년 7월


어제 많이 걷긴 했나 봐. 오늘은 빈의 많은 녹지에서 쉬고 싶었어. 하지만 어찌하다 같은 게하에 있는 한국인 대학생과 같이 다니게 됐어. 어제 길을 다 익혔으니 오늘 가이드를 자처했어. 나도 첫날에는 소개와 안내를 받았으니 이렇게 다른 이에게 갚아야지.




클래식 공연 예매?


빈이 처음인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슈테판 대성당부터 가야겠지? 대성당은 3번째 봐도 질리지 않는 거 같아. 오늘은 내부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갔어. 안타깝게도 미사 중이었어. 미사를 방해할 수 없으니 바로 나왔지.


그때, 외국인 한분이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걸었어. 대성당 앞에는 물건이나 공연 티켓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조금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어. 역시나 클래식 실내악 공연 티켓을 파는 사람이었지. 어제 클래식 공연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기에 설명을 듣고 있었어. 그러다 대뜸 학생이냐고 물어봐서 일행이 그렇다고 했어. 갑자기 자신도 대학생이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러면서 학생 할인이 된다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거야. 난 '학생이 아닌데 졸업한 지가......'라고 말해야 하지만 그는 표를 팔겠다는 의지인지 목소리도 반가움으로 바뀌면서 말을 쏟아냈어. 일행이 할인해준다는 말에 냉큼 두 장을 달라고 해서 거래가 끝났어. 찜찜함에 '이래도 되냐'라고 하니 '형 어려 보여서 괜찮아요'라고 일행이 답했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나도 처음 보는 외국인이 권하는 아무런 정보 없는 공연에 적지 않은 공연료라 망설였는데, 할인이라는 말에 ok 해버렸던 거 같아.


그런데 돈을 받지 않고, 쪽지에 좌석과 할인 정보로 예상되는 글씨를 쓰고는 우리에게 주면서 이걸 보여주고 극장에서 계산하면 된다고 했어. 아마 돈을 받고 공연하지 않거나 이미 공연한 표를 팔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말 그대로 홍보만. 그리고 그가 준 쪽지를 주고 표를 사면 그에게 일정 수수료를 주는 게 아닐까 추측해 봤어. 옷은 입고 있는 그대로 가도 되고, 촬영을 하면 안 되고, 입장 시간 전에 도착하라는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는 그곳을 벗어나 다음 장소로 향했어.


IMG_2029수정.jpg 슈테판 대성당




앙커 시계와 링 주변 걷기


12시가 다가오자 일행이 앙커 시계로 가자고 했어.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앞의 웨딩 분수에서 사진을 찍었어. 어느덧 시계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서 12시가 다 되었다는 걸 알았지. 우리도 얼른 가까이 갔어. 12시가 되자 음악소리와 함께 시계에서 등장인물이 하나씩 차례대로 나왔어. 금방 지나갈 줄 알았는데 10분 이상 걸렸어. 엄청 특별난 건 없어도, 본인이 상상했던 인물과 시계에서 묘사된 인물을 비교하면 재미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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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에 등장하는 인물과 앙커 시계


다시 슈테판 대성당, 케른트너 거리를 지나 링 위를 걷다가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신왕궁, 시청사, 보티프 성당을 거쳐갔어.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어. 특히, 시청사 앞 공원에는 평일임에도 관광객보다는 빈 시민들이 많은 거 같았어. 그중에 가족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뛰어 노느게 너무 즐거워 보였어. 그중에 땅에 분필로 여러 네모칸을 그려서 한 발로 뛰어노는 놀이를 여기서도 하는 거야. 반갑고 신기했어. 아이들 놀이는 세계 공통인가 봐.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 반려견들과 잔디 위에서 뛰어노는 사람들. 관광지보다는 평화롭고 고요한 주거지 같았어. 빈은 이런 풍경들이 더 잘 맞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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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인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어제는 구름이 많았지만 오늘은 맑아서 조금 더웠어. 그래서 보티프 성당에서 오랜 시간 앉아 쉬었어. 날씨 덕분에 어제보다 성당이 밝아 보이고 구석구석 더 잘 보였어. 성당에 이미 정이 든 거 같았지. 성당을 나와 주변을 도는데 고풍스러운 건물을 보여서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Chemisches Institut(화학연구소)? 빈 대학교 화학과인가? 왠지 화학도라 끌리는 건물이었어.


IMG_2075수정.jpg 보티프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IMG_2066수정.jpg Chemisches Institut




오르간 파이프 연주


그렇게 링을 따라 걷다가 성 페터 성당으로 향했어. 어제 안내문에서 봤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갔지.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설레었어. 그래도 무료 공연이라 연주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 중간쯤 앉아 고개를 젖혀 천장화를 보고 일행은 성당 구경을 했지. 연주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이 조금씩 늘더니 앉을 좌석이 다 차서 서있을 만큼 많아졌어.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


연주 시간이 조금 지나 성당 입구 위에 있던 곳에서 연주자가 나와 간단히 빈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며 자기소개를 한 후 연주를 시작했어. 연주 중간중간 음이 틀리거나 박자가 밀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파이프 오르간의 압도적이며 웅장한 소리가 너무나 좋았어. 무료 공연이라 하기에 긴 연주라 눈을 감고 충분히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았어.




저녁 식사


링 안쪽을 걷다가 저녁에 공연을 보러 가야 하기에 조금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어. 일행이 알아본 식당으로 갔어. 식당에 들어가니 자리가 없다는 거야. 눈앞에 열개 정도의 테이블이 비었는데 없다니? 어찌 된 거냐고 매니저에게 물으니 모두 예약석이래. 단체 예약이라나? '유럽에도 이런 단체 예약을 하는 문화가 있었나?' 싶었지만 기다리기 싫어서 그대로 나왔지.


식당을 나와 큰길로 나오자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중국인들을 봤어. 식당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예약한 단체손님이란 걸 추측할 수 있었어. 빈에서 자전거 투어는 많이 봤는데 30~40명 되는 규모의 단체는 보지 못해서 중국인 단체 관광을 잊고 있었어.


링 안을 그냥 걷다가 길거리 음식으로 대충 먹었지. 공연을 보고 나서 야식이나 먹으려고.


IMG_2076수정.jpg 빈 거리




Wiener Royal Orchester


우리는 링 중앙이고 극장은 링 외곽이라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시간도 괜찮고 구경할 겸 걷기로 했어. 가는 길에 시장 구경도 하니 시간이 금방 지났어. 극장 건물에 도착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다 사람들 따라 건물로 들어가 올라갔어. 그리고 긴 탁자 위에 팸플릿과 시디가 놓여 있고 그 옆에 티켓을 팔고 있었어. 대성당에서 받은 쪽지를 건네고 돈을 지불하고는 티켓을 받았어. 가장 싼 티켓이라 거의 맨 뒷자리.


홀로 들어가니 좌석이 200개 정도 되는데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뒤쪽이어도 무대가 아주 잘 보였어. 거기다 가운데가 통로라 의자가 없어서 시야에 가릴 것도 없었지. 입장 시간이 다 되어가자 빈자리 몇 개를 제외하고는 꽉 찼어. 공연 시작 전까지는 30분 정도 남아서 조금 지루했지만 어제, 오늘 들었던 연주를 일행과 이야기하면서 보냈어. 그리고 공연 시간이 되자 빈자리를 다 채웠고, 이내 문이 닫히고 조명이 어두워졌어.


IMG_2042수정.jpg 미술사 박물관


공연 1부는 모차르트 콘체르트. 모차르트와 인연이 있나 봐. 아마 클래식을 잘 모르는 관광객이라도 모차르트는 알 테니까 모차르트 공연이 많은 거 같아. 첫곡은 역시 피가로. 빈에서 작곡한 곳으로 유명한 곡이야. 가곡 솔로, 듀엣도 있었어. 가곡을 극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건 처음이라 새로웠고 라이브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지. 프로그램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 , 작은 밤의 음악) 같은 누구나 들으면 아! 하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어. 특히 마지막에는 터키행진곡이 연주되어서 모두 다 손뼉 치며 신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거 같아.


1시간 넘는 1부를 끝내고 잠시 쉬는 시간. 밖에 간단한 음료와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어. 샴페인이 보여서 웨이터에게 물어보고는 한잔 들고 사람이 드문 창가에 서서 천천히 즐기다 홀로 들어왔어.


IMG_2048수정.jpg 신궁정


쉬는 시간이 조금 길어져서 지루해질 때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어. 왠지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아진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2부가 시작됐어.


2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슈트라우스는 역시 왈츠지. 역시나 대부분 들으면 알만한 곡들이었어. 그런데 폴카 연주 중에 댄서들이 나와서 춤을 추는 거야. 처음에는 놀랐어. 폴카 곡이라고 정말 폴카를 출 줄은 몰랐으니까. 폴카라기보다는 발레가 맞으려나. 가곡과 춤이 있으니 오페라를 보는 거 같았어. 프로그램 전개도 하나의 이야기 같았지. 슈트라우스 곡이 무성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많이 나오다 보니 더 그런 느낌이 강했던 거 같아. 마지막은 빈이니까 빈의 상징과도 같은 An der schonen blauen Donau (아름다운 푸른 다뉴브 강에서)가 연주되었어. 이곡도 들으면 바로 알 걸. 유명한 BGM이거든.


IMG_2063수정.jpg 시청사


공연이 다 끝나고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어. 그리고 공연한 모두가 나와 인사를 했지. 그에 화답하듯 잠시 있다가 앙코르 공연이 있었어. 2곡을 하고는 정말 마지막 인사로 공연이 마무리됐어. 그러고 나니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갔어. 생각보다 길었지. 좋아하는 곡은 없었지만 기대보다 멋진 공연이었어. 역시 빈에 오면 클래식 공연은 반드시 봐야 하는 거 같아. 사람들과 나오는데 동양인은 우리뿐이어서 외국에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 클래식에 빠져 공연을 즐기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어.




빈에서 치맥

그리 먼 거리는 아니라도 늦은 시간이라 트램을 타고 케른트너 거리로 갔어. 야식을 먹으려고 했더니 이미 가게들이 정리를 하고 있었어. 그러다 그라벤 거리까지 가자 아직 손님이 많은 가게가 보여서 들어갔어. 들어가자마자 마감시간을 알려주었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주문 가능한 메뉴도 몇 개 없었어. 다행히 치킨은 되더라고. 양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주방에서 양해해줬어. 덕분에 빈에서 치맥을 먹으며 클래식을 들었던 소감을 나누었지. 대성당 앞에서 공연을 권했던 학생에게 감사했어. 그리고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학생이 아니라고 해야겠다'라고 다짐했어.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거든. 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마감 시간이 되어서 지하철로 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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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지하철 (U-Bahn)


새벽까지 운행하는 지하철이지만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시간이라 지하철이 북적였어. 다들 한잔 하신 상태라 조용했던 지하철이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 찼어. 가장 이상한 건 10대로 보이는 학생들이 맥주를 들고 마시고 있는 거였어. 독일권 나라에서는 만 15세 용 맥주가 있다더니 그런가 봐. 그런데 지하철에 타서도 마시더라고.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해코지하는 일 없이 자기네들끼리 조용히 이야기하면서 가서 신기할 뿐 불편하지는 않았어.


아마 빈 시민들의 친절함과 매너를 겪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파리 지하철에서 고함지르던 그런 사람들이 없어. 대부분 조용해. 심지어 잔디밭에서 술 마시는 데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니까. 그래도 물으면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줘.


그리고 어제 유럽 지하철에서 처음 본 게 있어. 아까 맥주병을 들고 타던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어르신 부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장면이었어. 한국에서야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유럽에 장유유서는 없다고 들었으니까. 그래서 빈에서 이 장면을 봤을 때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거 같아. 역시 나이 많으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세계 어디서나 매너지.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봤기에 여러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어. 당시 자리를 양보받으신 분은 빈 시민이 아니라 관광객이셨는데 여행 다닐 정도로 건강하다고 끝까지 사양하셨어. 대신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빈 이야기들을 물으셨지.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잘 모르더라고. 빈에 살다 보니 관광지보다는 재밌게 놀 수 있는 곳을 갈 테니까. 그리고 어르신들과 친구처럼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어른을 대하는 게 신기했어. 이것도 나이가 많든 적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대하는 건 매너가 아니겠지. 이런 문화 때문에 자정 넘은 시간까지 잔디 밖에서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


IMG_2072엽서.jpg 보티프 성당


서역에 도착해 빈의 마지막 밤공기를 맡았어. 유럽이지만 다른 곳과 달리 조금 습하고 차가운 공기였어. 반대로 도시는 정갈하고 따뜻하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거 같아. 그리고 그 따뜻함에 1달 만에 혼자 하는 여행에 불안감보다는 안정감을 느끼며 여행할 수 있었어. 여러모로 감사한 여행이었어. 게하로 돌아와 일행에게 또 감사의 인사를 받았어. 하루 종일 감사의 인사를 들었더니 말이 귀에 붙여있는 거처럼 느껴졌어. '나도 유럽에서 다른 이에게서 도움을 받았으니 너도 그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해줬어. 여행이란 건, 인생이란 건 그런 거 아니겠어?




빈에서는 클래식과 함께 하는 여행이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공연을 듣고 보았네요. 확실히 다 좋았답니다. 여행객에게는 더 낭만으로 빠지게 하는 거 같아요. 빈에 들리신다면 좋은 공연을 알아보고 꼭 한 번은 즐기셨으면 합니다.


이번 주는 몸도 아프고 휴대폰 문제로 글쓰기가 쉽지 않았네요. 확인할 시간이 조금 부족해서 늘 하던 걱정이 더 걱정이네요. 여러분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건강해야 모든지 할 수 있어요~~!! 오늘은 모차르트의 '작은 밤의 음악' (Serenade No.13 in G Major, K.525)과 슈트라우스의 '아름다운 다뉴브 강에서' (An der schönenblau Donau, Op.314)을 들으며 제 글을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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