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1~42일, 오스트리아 4~5일
*할슈타트를 찾아오셨다면 글 중간쯤, 할슈타트 가는 길부터 보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서역에서 기차를 탔어. 한국 기차랑 비슷해서 너무나 친근했어. 요즘 다니는 ITX랑 똑같이 생겼어. 예약한 자리로 갔는데 금발의 여성 여행객이 앉아있어서 '본인 자리 맞아요?'라고 물어봤더니 자리를 비켜줬어. 아마 유레일 패스로 자유석 예매한 걸 거야.
기차가 출발하고 풍경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어. 이게 알프스 산맥인가? 도우나 강도 보이고, 마치 요들송을 불러야 할 것 같은 풍경이었지. '곧 이런 곳을 걷게 되겠지?'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어.
2시간 정도 지나 잘츠부르크(이하 짤츠)에 도착했어.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지만 모차르트를 보러 온건 아냐. 이곳에 온 목적은 친구 1이 과거 이곳에서 장기출장 때 놀러 오라는 말이 귀에 박혀서, 또 다른 이유는 친구 2가 추천해준 2곳 중 한 곳을 가기 위해서야. 한 곳은 이탈리아 여행 때 갔던 친퀘테레. 나머지 한 곳은 할슈타트. 그래서 짤츠는 반나절 동네 구경 삼아 볼 예정이었어.
게하 바우처에 '도착 시 연락 바람'이 있어서 연락했더니 지금은 체크인 시간이 아니라 안 된다는 거야. '짐만 맡기면 안 되냐'고하니 규정상 안 된대. 체크인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혼났지. 빈 게하를 찾지 못해서 유럽에서 급하게 예약했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어. 거쳐간 게하들은 짐만 맡겨도 된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지. 그냥 작은 호텔이라도 잡을까 싶기도 했지만 기다리기로 했어. 취소해도 숙박료 환불이 안 될 거 같았거든.
그래서 역에 짐 보관함을 찾아봤어. 역시나 캐리어 놓는 곳은 이미 다 차있었어. 결국 대합실에 앉아서 죽치고 있었어. 그러다 한국인 대학생 두 명이 도움을 요청했어. 내용은 유레일로 예매한 티켓을 취소하고 뮌헨행으로 바꾸고 싶은데 창구에 대신 말해달라는 거야. 나도 영어가 짧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서 도와주기로 했어.
역 입구 쪽에 역무원 사무실인 줄 알았던 곳이 창구였어. 들어갔더니 사람이 엄청 많은 거야. 자동발매기에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줄을 서는 건지? 다들 환불하나? 아무튼 한참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되었어. '예약된 티켓을 바꾸고 싶다'라고 말하자 두 대학생이 티켓을 보여주며 내가 더 말할 틈도 없이 되는대로 단어만 줄줄이 나열하더니 직원이 잘만 알아듣고 처리해준던 걸. 날 왜 부른 건지...... 보험 같은 거였나 봐. 아무튼 간단히 미션 클리어.
뮌헨이 이곳과 1시간 거리라는 것, 유레일 패스가 뮌헨을 잠깐 들려도 추가 요금이 없다는 걸 이곳에서 알았다나. 뭐지, 유레일 패스를 못 쓰는 아저씨 놀리는 건가 싶었어. 처음 보는 대학생들에게 잘 알아보고 여행하라고,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지. 내 동생도 아닌데...... 유럽에서 오지랖을 버리고 오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이곳까지 와서 오지랖을 발동시키고 말았어. 뮌헨행 기차를 기다리며 한참 수다를 떨다 시간이 되자 도와준 거 없는 나에게 대학생들은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는 기차를 타러 떠났어.
다시 혼자 있으니 더 심심하더라고. 그래서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주문하고는 와이파이를 찾았어. 한국의 무료 와이파이 짱짱이란 걸 새삼 깨달았지. 그러는 도중에 새로운 한국인이 말을 걸어왔어. '짤츠에 한국인이 많이 오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잠깐 짤츠에 놀러 와 체크 아웃하고 독일로 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짤츠는 체크인과 체크 아웃 시간이 칼 같다 걸 알 수 있었지. 여러모로 독일 느낌이나.
둘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우리가 신기했는지 옆에 있던 백인 부자가 말을 걸어왔어. 멕시코인이라지만 겉모습만 보기에는 스페인인 같았어. 뭐 스페인이 대항해시대 때 건너갔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스페인에서 박사과정 중이라나. 그래서 스페인 느낌이?
아버지는 멕시코 시티의 삼성 공장에서 일했다고 하셨어. 그래서 한국인과 친근해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거였어. 아들이 올해 마지막 학기라 같이 유럽 여행을 다닌다고 하셨는데 부럽더라. 여러모로. 부자가 여행하는 것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디펜스도 끝내지 않고 해외여행이 가능할라나? 교수님이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말이야. 나로선 새로운 사고였어. 내 또래라 내 나이 때 할만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영어를 잘하는 통역이 옆에 있었으니 그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멕시코에 놀라 오라고 하셨어. 그러나 우리는 치안이 걱정됐어. 의외로 시골 쪽이나 외국 공장이 있는 곳은 다른 나라만큼 안전하다고 해. 오히려 도심 쪽이 더 위험하다나. 그런데 말할수록 위험하다는 느낌이 더 드는 건 왜일까? 아무튼 아들은 가족 걱정을, 아버지는 아들이 스페인에 남아 좋은 환경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져서 보기 좋았어.
체크인 시간이 다 되어서 일어나니 대화를 나누던 한국인 교환학생도 따라왔어. 그렇게 어렵게 게하에 짐만 맡기고는 나왔어. 근처 레스토랑으로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지. 당연히 독일어를 하는 교환학생 덕분에 주문도 쉽게 하고 평소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메뉴 설명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감사하다'라고 했지만 오히려 혼자라 오늘까지 올 수 없었던 식당에 오게 되어서 고맙다고 했어. 식사를 마친 후 가볍게 산책을 나섰어.
짤츠는 알프스 산맥에 있는 조금 큰 시골마을 같아. 적은 교통량, 높지 않은 건물에 몇십 년 정도 된 거 같은 아파트, 호텔, 상가 그와 다르게 3~400년 정도 된 중세 유럽식 건물, 넓은 녹지와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
조금 걷다 보니 짤츠에서 가장 유명한 미라벨 궁의 정원 (Schloss Mirabell)으로 갔어.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연인을 위해 지은 궁전이야. 대주교가 궁전과 자식을 가지다니. 중세 종교란 참...... 남들에게는 지키라고 강제하는 규율을 자신은 안 지키다니. 아무튼 한 번 불탔다가 복원되었지만, 당시 권력가의 능력을 볼 수 있듯이 화려해. 정원 안에는 다양한 색의 꽃들이 문양을 그리며 심어져 있어. 그리고 조각상들과 분수까지. 그리 크지 않지만 엄청 화려하면서 아늑했어. 다른 궁의 정원에서는 이런 아늑함은 없었는데 신기했지. 이곳에서 짤츠 페스티벌 공연 중에 하나가 열린다고 해. 빈에서 클래식을 조금 즐기고 와서 다음을 기약했어.
정원을 나와 구시가지로 가는 마카르트 다리로 갔어. 이곳에도 연인들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있었지. 전 세계 어디 가나 자물쇠를 달수 있는 곳이라면 다 달려있는 거 같아. 건너편에는 강가를 따라 길게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어. 주로 수공예품들을 구경하며 일행의 유럽 교환학생 생활과 한국과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어. 그녀는 유럽에서 일할 멋진 꿈을 가지고 있었어.
다시 다리를 건너 기차역으로 향했어. 기차역으로 가다 빈에서 같이 여행하던 대학생을 만났어. 낯선 여행지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부를 줄이야. 불리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잠깐 세워두고는 일행을 역까지 배웅해주고 빈에서 만난 일행과 게하까지 같이 갔어. 그런데 왜 이렇게 먼 거야.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했지.
그러고 게하로 돌아오니 너무 늦어버렸어. 구시가지가 아니라 그런가 엄청 조용했어. 내일 멀리 가야 했기에 짤츠의 짧은 관광은 아쉽지만 이만하기로 했지. 그런데 내성적인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니? 그것도 몇 명씩이나. 여행을 하면 나도 모르는 면이 나오는 거 같아.
아침 일찍 일어나도 아침에는 너무 굼뜬 나라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어. 주말에는 배차 시간이 1시간이라 놓치면 큰일이야. 그러지 않으려고 어제 짤츠 야경도 포기한 거야. 버스를 타려면 미라벨 궁 앞으로 가야 했어. 역시나 유럽은 일요일에는 다니는 차가 없어. 그런데 아주 멀리서 차 한 대가 보여서 '저 차 보내고 건너가야지' 하고 기다렸어. 그런데 차가 내 앞에서 서는 거야. 뭐지? 하고 기다렸더니 운전자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하더라고. 기다리는 사람은 나 혼자인데. 유럽에는 이런 게 너무 좋아. 한국에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차가 먼저요' 하면서 지나가는데. 가볍게 목인사와 미소를 주고받고 횡단보도를 건넜어. 작은 배려지만 출발부터 기분이 좋았어.
짤츠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미라벨 궁 앞이지만 나 혼자 있었어. 쨍쨍한 햇빛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만 있을 뿐이었어. 오랜만에 느끼는 시골의 한적함이었지. 여유를 느끼는 것도 잠시 150번 버스가 도착했어. 기사에게 도착지를 말하고 티켓을 샀어. 혼자 이곳에서 탔는데, 다들 할슈타트 가는 건지 이미 가득이었어. 다행히 내가 앉을자리 하나는 있었지. 상대적으로 짤츠 길거리에는 정말 한 명 없더라. 이곳으로 출장 왔던 친구가 정말정말 심심하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았어. 버스 안이 셔터 소리도 소음일만큼 조용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하기도 해서 잠을 청했어.
눈을 뜨니 눈앞에 정말 커다란 산들이 보였어. 한국의 산들을 언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납득했지. 조금 지나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에서 정차했어. 다 내리는 줄 알았더니 몇 명만 내리더라고. 그래서 눈치껏 내리지 않았어. 왜냐면 난 종점까지 갈 거거든. 그곳부터 종점까지 깎아놓은 듯한 높은 산들을 배경으로, 앞에는 푸른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중간중간에 알록달록한 지붕의 집들이 있으니 말 그대로 그림이었어.
얼마 가지 않아 종점인 바트이슐(Bad Ischl Bahnhof)에 도착했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기차역으로 들어가 티켓을 산 후, 플랫폼에서 기다렸어. 어릴 적 작은 시골역 같아. 들리는 소리는 작은 새소리뿐이었어. 버스 시간에 맞추어 운행되는 건지 금방 기차가 도착했어. 기차는 오래된 유럽식이었어. 아무도 없는 칸을 찾아 혼자 앉아 갔지. 산속 골짜기 작은 천을 따라 기찻길이 있어서 한국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었어. 하지만 세모 지붕의 건물들이 달라 유럽인 걸 알 수 있었지. 그래서 뭔가 한국의 리조트나 관광지 느낌이랄까?
30분쯤 지나 할슈타트 역에 도착했어. 여기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마을로 가야 해. 왕복 티켓을 사고 잠시 기다렸다 배를 탔어. 호수가 얼마나 맑은지 바닥이 보였지. 이내 너무 깊어져 검게 변하고 수면에는 마을 풍경이 그대로 비쳤어. 배가 선착장에 섰고, 버스, 기차, 배를 타고 2시간을 넘게 걸려 드디어 할슈타트에 도착. 보통은 지쳤을 텐데 늘 상상하던 유럽의 동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있으니 자꾸 미소가 나왔어.
사람들도 신이 났는지 빠르게 흩어졌어. 주변을 둘러보며 서 있다 너무나도 맑을 거 같은 공기를 한껏 마신 후 걷기 시작했어. 선착장이 마을의 입구라 상가와 호텔이 밀집되어 있었어. 상가에서 눈에 띄는 건 나무모빌이야. 이곳에 특산품인지 엄청 많아. 해, 달, 별이 함께 달린 모빌이 너무나 예뻤어.
그곳을 벗어나 호수 따라 길을 걸어갔어. 곳곳에 물에 닿을 듯 말 듯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고 이런 곳까지 도로가 나있는 것도 신기했어. 이런 산속에 마을이 있다는 게 가장 신기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금 걷다 사진 찍기를 반복하며 엉금엉금 걸었어. 그만큼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변하는 그림이야.
그러다 멀리 커다란 백조 요트가 보여서 가까이 가 봤더니 보트 옆에 실물의 백조가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어. 진짜 백조에 놀라고 생각보다 커다란 백조에 두 번 놀랐어. 그러고 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고 나만 넓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에 서 있었어. 이곳은 주거지인 가 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어. 근처로 가 봤더니 수영장처럼 호수 물속으로 가는 계단도 있더라고. 나는 살짝 손만 담가보고 길을 계속 걸었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깊은 산골짜기 유럽 마을을 구경했어.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색 집들과 깔끔히 정돈된 잔디와 정원. 그리고 개울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릴뿐 고요함이 너무나 좋았어. 개울을 따라 걷다가 큰 나무 밑에 벤치를 발견했어. 그곳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쉬었어. 그래, 이게 여유야.
충전이 끝나고 마을을 지나는 도로로 나왔더니 소금광산으로 가는 케이블카가 보였어. 이걸 타고 가면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나와. 이렇게 작은 마을로 보여도 최초의 소금광산으로 인해 고대에 생긴 마을이야. 참고로 salz가 독일어로 소금이야. 그래서 잘츠부르크. 할슈타트의 hal도 고대어로 소금이라나?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높이에 따라 변하는 할슈타트를 보았어. 얼마나 높은지 금방 건물들이 손톱만 해졌어. 사람들을 따라 전망대로 가 사진을 찍었어. 커다란 호수와 높은 산들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알프스를 실제로 보았지. 파란 하늘과 호수 사이에 커다란 초록의 산이 있는 풍경이 내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어.
산길을 따라 소금광산으로 향했어. 정리된 산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조형물이 있어서 구경하며 걸었어. 금방 드워프들이 드나들 거 같은 낮은 높이의 광산 입구가 있었어. 투어만 가능하고 개인적으로는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밖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왔어. 그러고 보니 이 높은 곳에서 소금이 나온다니 예전에는 바다였다는 거잖아. 몇 천년, 아니 몇 만 년 전에 바다였을까? 그에 비하면 나는 찰나를 살아가며 여행하는 거겠지. 시간이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마을로 내려와 유명하다는 시간 여행 계단과 중앙 광장의 삼위일체 상(Statue of the Holy Trinity)을 보고 선착장 쪽의 마을 골목을 다니며 구경했어. 집과 성당 같은 건물은 다르지만, 구불어진 아주 좁은 길과 경사에 따라 지어져 1층은 그늘지고 2층에는 햇볕이 드는 집, 작은 마당에 심어진 꽃들이 부산 해변의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야.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좁은 길에 알록달록한 꽃과 바람개비나 구슬같이 작은 액세서리로 꾸며져 있는 동화 같은 풍경이었어.
작은 마을을 구경하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걸릴 줄 몰랐어. 어느새 구름이 점점 많아져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어. 남은 배편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 선착장으로 내려갔어. 올 때와 다르게 줄이 길게 이어져 있어서, 마지막 배편까지 남아있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런데 줄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지 한국인 줄. 올 때는 분명 한두 명뿐이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줄을 서지 않아도 탈정도는 되는 거 같아 물가에 앉아 사진을 마저 찍었어. 그리고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밤의 할슈타트에 있다면 잔디밭에 누워서 쏟아지는 듯한 별들을 볼 수 있을 거 같았어. 구름이 많아졌다고 마을이 아침에 비해 불 꺼놓은 듯 어두워졌거든. 그래서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싶었어. 그러면 맑은 공기에 적은 불빛, 높은 고지, 만약 넓은 호수에 하늘의 별빛이 비치기라도 한다면 환상적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후 일정이 짧게짧게 잡혀 있어서 그럴 수는 없었어. 게하 사장님에게 체크아웃 시간을 놓쳐 혼나기도 싫고.
다시 배를 타고 기차를 타 바이슐츠역에 도착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비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했어. 얼마나 세차게 내리는지 소리에 놀랐어. 거기다 쌘 바람까지, 태풍부는 줄 알았어. 버스에서 비 내리는 알프스를 보며 짤츠로 향했어. 게하까지 어떻게 가지 걱정을 했지만 짤츠에 도착하니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어. 이번에도 비에 젖지 않음을 감사하며 촉촉해진 짤츠를 산책하기로 했어. 그래도 잠깐 잠깐 보슬비가 내려 추워져 가방에서 카디건을 꺼내 입고 마냥 걸었어.
저녁에 게하로 돌아가 도미토리 사람들과 맥주 한잔하러 짤츠에서 가장 유명한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로 갔어. 낮에는 사람 하나 없더니 밤이 되자 사람으로 가득 찼어. 아침에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 이곳은 빈의 케른트너 거리와 비슷했어. 그리고 케른트너 거리의 간판이 왜 그렇게 생긴 줄 알게 됐지. 이곳의 간판은 더 원초적이야. 중세시대처럼 철로 만들어져 있는 데다 빵집이면 빵이, 보석집이면 보석, 맥주집이면 맥주가 그려져 있고 화려하게 꾸며진 간판들은 예술작품 같았어. 이 거리를 벗어나면 대부분 네모난 간판에 로고만 그러진 곳이 많아. 맥주를 마시며 수다 떨다 돌아오는데 잘자흐 강에 비친 도시가 아름다웠어. 짤츠 야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여유로 가득 찬 하루였어.
두 편으로 나눠서 할슈타트는 사진전으로 할 생각이었지만 잘츠 관광한 내용이 없어 너무 잡담 같아 허전했어요.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라 그냥 넘기기도 아쉬웠어요. 결국 글을 줄여서 이렇게 합쳐졌지요. 책으로 나온다면 줄이지 말고 원본으로 보여드리고 싶네요. 보여드리고 싶은 할슈타트 사진도 한참 더 있고요. 분량이 정말 어렵네요. 그래서 전문 에디터가 있는 거겠죠? 사진만 한편으로 보여드릴까 싶기도 하네요.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