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4일. 크로아티아 2일.
*평소 글보다 사진을 많이 넣기 위해 글을 두 편으로 나누었어요. 비 내린 오전 #1과 맑은 오후 #2로 구성하였습니다.
오늘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가기로 한 날이야. 빈에서 만났던 대학생이 안내해주기로 해서, 오랜만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날로 먹는 여행 시작.
플리트비체로 가기 위해 아침을 간단히 먹고 트램을 타러 나갔어. 보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공원 가기 전부터 걱정이었어. 공원을 걸어 다니는 것도 어렵겠지만 햇빛이 너무 적어 사진을 찍는 것도 걱정이었지. 정류장 앞의 가판 가게에서 트램 티켓을 두장 사고 트램이 오길 기다렸어.
아! 크로아티아는 유로존이지만 자국 화폐인 쿠나(Kn)를 주로 사용해. 여행지에는 유로도 받지만 안 받는 곳도 있거나 환율 차이가 있으니 쿠나로 환전하는 게 좋을 거야.
자그레브 트램은 젊은 신식이야. 다른 국가에서 보지 못한 파란색이 깔끔해 보였어. 기다리던 트램을 타보니 거의 지하철 수준으로 제법 길어서 많은 사람이 타기에 충분했어. 9호선 정도 되려나? 트램 내부도 깔끔했어. 10분 채 안 걸려 버스터미널에 도착.
비가 더 내리려는지 더욱 어두컴컴 해졌어. 터미널 실내는 어릴 때 갔던 한국의 버스터미널이랑 거의 같았어. 많은 티켓 창구에 음식점을 비롯한 작은 상가, 이층의 대합실에서 대기하다 다시 해당 게이트로 내려가는 길, 건물 골격이 드러나도록 지어진 플랫폼까지. 거기다 이 칙칙한 시멘트 향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어. 그때 참 미로 같은 구조에, 많은 사람에, 칙칙한 냄새는 예민한 나에게 머리를 너무 어지럽게 했는데, 딱 그 느낌이 들었어.
자동 발매기가 없어서 티켓 창구가 많음에도 줄이 상당히 길었어. 티켓은 반드시 편도만 살 것!! 이유는 돌아오는 길에 알려줄게. 한참을 기다려 플리트비체행 티켓을 사고는 대합실로 올라갔어. 쌀쌀해진 날씨와 옛 버스터미널 기억으로 인해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아침이라 잠이 왔어. 무언가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던 대기시간이 지나 버스에 탔어.
플리트비체를 가는 방법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법은 우리처럼 자그레브에서 버스로 가는 거야. 하지만 상당히 멀어. 지도상으로 봐도 갔다가 자그레브로 돌아오는 건 시간 낭비 같아 보일 정도야. 그래서 장기 여행객들은 스플리트를 가는 길에 들리는 방법을 선택해.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넘게 걸려 공원 입구 1 (Ulaz 1)에 도착했어. 빗소리에 젖은 푸른 풍경을 보자 쓸쓸한 마음은 사라지고 기대감과 포근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어. 입구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우산과 비옷을 입은 채 서 있었어. 단체 관광을 온 건지 줄을 서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티켓을 사기 위해 매표소 앞의 줄을 섰어. 줄에 사람이 많지 않아도 우산을 들고 있었기에 줄이 길게 만들어졌어.
우리 차례가 되자 일행이 먼저 구매하고 내 차례에 직원이 학생이냐고 물어봤어. 아마 앞의 일행이 학생 가격으로 구매해서 물어본 거 같았어. 그래서 빈에서 어쩌다 학생 할인받은 찝찝함도 있고 해서 학생이 아니라고 어른으로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감탄사와 함께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야. 뭐지? 이 반응은? 직원은 미소 지으며 '어디에서 왔냐?', '그곳 사람들은 다들 정직하냐?', '크로아티아는 처음이냐?' 등등 여러 질문을 해서 짧은 대화를 이어갔어. '아니, 티켓 파는 곳에서 뭐 하는 걸까?'라고 생각되겠지만 유럽여행 중에 직원들과 사적인 대화는 가끔 있는 일이어서 그리 당황하지 않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어.
그런데 중요한 건 내 뒤의 비속에 서 있는 긴 줄이지. 걱정이 들 때쯤 티켓을 받고는 인사를 하고 일행에게 다가갔어. 예상보다 시간이 걸린 나에게 일행이 '형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묻길래 앞의 이야기를 해줬어. 직원들과의 이런 대화보다도 신기한 건 줄의 사람들 반응이야. 아무도 채근질 하지 않는 게 매번 신기해. 우산 들고 줄 선다는 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인데 말이야. 아마 플리트비체 풍경 때문에 마음이 넓어져서인가?
나무가 빼곡한 입구를 지나면 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로 가니, 사람들이 중간쯤에 서서 무언가 바라보고 있었어. 당연히 인간의 본능에 따라 우리도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커다란 폭포가 와!! 플리트비체의 폭포 하나만을 봤을 뿐인데 이미 감동이 밀려왔어. 조금씩 내려갈 때마다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폭포 밑에 폭포, 또 폭포가 반복되어 모든 사람들이 와~~ 만 반복할 뿐이었어.
호수로 다 내려오니 투명한 옥빛 호수들, 푸른 풀과 나무, 회색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어. 이곳을 보고 아바타의 행성 판도라를 만들었다는 걸 금방 공감할 수 있었어. 정말이지, 새로운 세계 같았지. 그리고 판도라보다도 훨씬 아름다웠어.
호수 빛깔에 감탄하면서 호수 위로 설치된 나무 데크를 걸으며, 멀리서 봤던 폭포를 향해 갔어. 데크가 주위와 잘 어울리며 편하게 걸을 수 있게 설치되어있어서, 따라 걷기만 하면 충분히 공원을 감상할 수 있었지. 하지만 비로 인해 수량이 많아짐에 따라 데크 위로 물이 흐르고 있었어. 물살도 제법 빨라서 위험해 보였어. 그래도 사람들끼리 잡아주면서 천천히 건너가서 무사히 지나갔어.
그래서 공원 갈 때는 신발과 비옷이나 우산을 챙겨가야 해. 사전에 어떻게 가는지만 알아봤기에 비가 자주 오는 줄 몰랐어. 자그레브에서 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을 거야. 조심하라고 미리 비를 보여준 거 같아. 공원 입구에서 비옷을 파는지 같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어. 확실히 데크도 미끄럽고 물도 많으니 비옷이 편하겠지만 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우산이 좋았던 거 같아.
데크와 호수가의 길 위로 상류 쪽으로 걸어갔어. 처음 보는 다양한 풀과 꽃, 나무들, 호수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따라 수면 위로 그려지는 동그라미들,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작은 폭포들, 거기다 작은 동굴까지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들을 감상했어. 특히 비 때문에 더욱 젖은 습지와 아래 위로 포근히 감싸는 듯한 수증기가 묘한 느낌을 만들고, 떨어지는 빗소리는 따뜻한 음악을 들려주어 독특한 경험을 했어. 비가 적당히 와서 그런지 호수가 탁하지 않고 맑아서 다행이라 더 좋았어.
동굴은 다들 그냥 지나가지만 우리는 호기심에 이끌려 가 보았어. 안으로 들어가니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갔어. 동굴 안이라 밖의 빗소리가 울려서 신비한 느낌이 들었지. 계속 올라가 동굴을 나왔어.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숲의 소리만 들려서 또 다른 묘한 느낌이었어.
잠시 앉아 쉬다가 다시 내려왔더니 비가 그쳤어. 그러자 다른 숲으로 온 느낌이 들었지. 호수도 잔잔해지고, 물고기들이 보였어. 이런 곳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든 건 왜 일까? 아니, 너무나도 다른 세상 같아서 다른 물고기가 살 거 같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해서 오히려 신기했어.
힘차게 흐르는 계곡과 잔잔한 호수가 반복되는 풍경을 걸어가니 하류지역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어. 그곳에는 넓은 공터와 식당, 선착장이 있었어. 이후에는 한참이나 가야 식당과 화장실이 나오기에 우리도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어.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수많은 나무 탁자 중에 빈 곳이 안 보였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다들 비가 그치길 기다렸나 봐.
우선 음식 기다리는 줄도 만만치 않았기에 서둘러 식당 줄을 섰어. 식당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자동 배식처럼 받는 형식이라 난감했어. 안도 시끄럽고 실랑이도 있어서 다른 세계에 있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거 같았지. 음식을 받고 밖으로 나와 빈 탁자에 앉았어. 사람이 많은 성수기에는 간단히 점심을 싸오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래도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이런 경치에 식사하는 건 정말 괜찮은 경험이었어.
이후 맑은 날의 플리트비체는 다음 편에 업로드하였습니다. 할슈타트 때 사진을 많이 넣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어요. 경치를 글로 표현한다고 하지만 사진은 다른 느낌도 있을 테니까요. 또한 이곳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많은 사진을 업로드하였습니다. 더 방출하고 싶었으나 중복되는 느낌이라 뺏습니다.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다음 편, 다른 모습의 플리트비체도 기대해 주세요.
출발 전, 비가 걱정이었는데 정말 비 때문에 특별한 풍경을 본 거 같아요. 비는 늘 항상 저에게 좋은 마음만을 가져다주는 거 같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