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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핫플레이스

여행 47일. 크로아티아 5일 ~ 체코 1일.

by 어린왕자

2014년 7월

두브로브니크에서 프라하로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가 오후라 또 느지막이 일어났어. 올드시티를 다녀오고 싶긴 했으나, 떠나는 날 촉박하게 보내면 여행이 잘 안 되기도 하고 불안하더라고. 그래서 숙소에서 체크 아웃 시간까지 있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 그런데 정말 버스가 안 오더라. 어쩔 수 없이 정류장 앞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어. 단출한 식사지만 야외 테이블에서 한적한 부둣가와 바다를 배경으로 먹는 것도 여유롭고 꽤 괜찮았어.


비행기 시간이 조금 남아 형을 배웅할 겸 같이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어. 형은 버스로 크로아티아를 더 여행할 예정이야. 그래서 내게 남은 쿠나를 전부 환전해줬어. 그것도 굉장한 우대조건으로. 여행안내를 해줘서 그렇다고 했지만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여행 내내 너무 많이 받았던 거 같아.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 퍼 주다니, 늘 생각하면 고마워.


20140725_1447554수정.jpg 두브로브니크 공항


터미널에서 한국인 한 분이 말을 걸어와 셋이서 크로아티아 이야기를 했어. 그러다 공항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그곳에서 형과 인사를 하고 필레 문 근처로 갔어. 필레 문 근처에 버스표를 파는 작은 사무실이 있어. 모르고 가면 헤멜 수도 있으니 위치를 익혀 놓고 가는 게 좋을 거야. 버스 타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못 탈까 봐 조마조마했어. 다행히 탑승,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쪽에 앉아 바다 구경을 하고 뒤돌아 멀어져 가는 두브로브니크를 바라봤어.


언제나 떠나는 건 쓸쓸해.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면 새로운 여행지에 설레지. 티켓팅 하는 직원분이 엄청 친절했어. 여행 중에 공항을 정말 많이 다녔지만 이 직원분이 최고였어. 크로아티아에서는 친절한 사람만 만나서 떠날 때까지 좋은 인상만이 남았어.


IMG_3689엽서.jpg 카를 교에서 본 프라하




한국 같은 프라하 공항

2시간 남짓 날아오니 프라하 공항에 도착. 그런데 한국으로 온 줄 알았어. 표지판에 전부 한국어가 적혀 있었거든. 그리고 짐 찾는 곳으로 오니 한국인만 백 명이 넘게 있는 거야. 한국을 떠난 지 1달 만에 이렇게 많은 한국인은 너무 오랜만이라 벌써 귀국한 줄 알았어. 거기다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가 되다니!!! 찾아보니 대한항공이 대주주라 한국 공항과 비슷하다고 해. 여러모로 한국 공항의 편의성을 누릴 수 있어 좋았지. 다른 공항도 이렇게 되면 좋겠어 (와이파이라도 좀). 그런데 정말 한국인이 많이 오나 봐. 곳곳에 한국인들이야. 드라마 때문인가?


ATM에서 돈을 인출하고, 공항버스를 타고 프라하 중앙역으로 갔어. 아! 체코도 유로지만 자국 화폐를 사용해. 어감이 이 시기에 좀 그런데, 코루나라고.


20140725_1723521수정.jpg 프라하 공항




신기한 프라하 중앙역 (Praha hlavní nádraží)


30분 정도 짧은 거리지만 잠깐 졸았어. 몽롱한 상태에서 중앙역 앞에 내리니 오랜만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시전 했어. 큰 건물이라고 맞은편에 100 살은 되어 보이는 중앙역뿐. 다른 랜드마크는 안 보이고, 넓은 주차장만 있었어. 그래서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도, 난 한참을 '이 크고 오래된 건물은 뭐지? 나 어디로 가야 해. 여기 프라하 맞아? 시골 아냐?' 하며 멍하게 서 있었어.


이럴 땐 사람들을 따라가야지. 다들 주차장 앞에 있는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나도 탔어. 지하로 내려오자 중세,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온 느낌 알아? 각종 상가며 큰 마트가 있는 중앙역 지하였어. 해리포터가 9 3/4 승강장을 통과할 때 이런 느낌이 들까? 세계 각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갑자기 대도시라는 게 실감이 나면서 정신이 돌아와서 게하가는 길이 기억났어. 커다란 역을 다니다 길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공원이 있었어.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뒤돌아 보니 그 오래된 역은 없고 현대식 역이 있는 거야. '자꾸 시간 이동하는 이 느낌 뭐야?'


조금 걸어가자 이유를 알았어. 현대식 역위에 공항버스가 정차한 도로와 오래된 역이 있었어. 19세기에 있던 역 아래에 20세기에 와서 지하를 크게 파서 역을 확장하고 마트나 각종 상가를 넣은 거야. 그런데 19세기에 있던 중앙 역이 지대가 2층 높이라 지하를 판 느낌이 아니라 굴을 판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야. 비유해 본다면 서울역 옆에 과거 오래된 서울역이 있잖아. 그 역에서 지하로 가면 현대식 서울역처럼 시설들과 각종 상가들이 있다면 알려나? 이거 봐야 아는데 느낌 오묘해. 정신이 없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 이 사실을 모르고 가야 재밌는데 말이야. (정말 사진이 없어 아쉬워요)


아무튼 숙소를 찾아가 침대에 짐을 놓고 설명을 들으니 알찬 저녁을 주더라고. 감사히 냉큼 먹고는 프라하를 구경하러 나왔어.


국립 극장




성 바츨라프 광장 (Václavské Náměstí, 윈세스라스 광장)


벌써 해가 지고 노을이 아니라 나트륨 등의 노란빛으로 도시가 물들어 있었어. 근대 골목을 나오니 조용했던 도시가 사람 소리로 가득 찼어. 빛이 나오는 왼쪽을 돌아보면 국립박물관이 보여. 당시 리모델링 중인 걸로 기억하고 있어. 19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마치 고풍스러운 관공서처럼 보였어. 과거 시청이었던가? 그 앞에 성 바츨라프 동상이 있어. 그곳부터 길게 쭉 이어진 길이 성 바츨라프 광장이야. 이곳은 프라하의 봄, 체코의 독립선언이 있었던 곳으로 체코인들에게 아주 상징적인 곳이지.


IMG_3630수정.jpg 성 바츨라프 광장 끝에 국립 박물관


박물관 반대편 광장 끝쪽에 지하철역(Můstek역)이 있고 주위로 상가와 레스토랑이 있어 사람들이 많았어. 그곳에서 프라하 성을 보기 위해 서쪽으로 길로 향했어. 한참을 걸어 국립극장에서 사진을 찍고, 그곳을 벗어나자 멀리 프라하 성이 보였어. 길 건너 Legion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어. 나도 횡단보도를 건너 다리 위 난간에 카메라를 놓고 노출시간을 잔뜩 늘려 사진을 찍었지. 이렇게 저렇게 여러 번을 찍고 블타바 강 위를 지나는 카를교와 언덕 위의 프라하 성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어. 사진 실력도 장비도 초보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거 같아.


IMG_3670엽서.jpg Legion 다리에서 본 카를교와 프라하 성




말라스트라나(Malostranská) 일부와 카를교(Karlův most)


다리 위를 걸으며 중간중간 멈춰 사진을 찍다 다리 끝까지 왔어. 이쪽은 관광지가 아닌지 사람이 거의 없었어. 다리를 내려와 강가를 걸으니 국립극장이 있던 맞은편에 비해 잘 정돈된 거리는 아니었어. 갑자기 다시 시골로 온 기분이랄까? 냄새도 나고 밤벌레도 무리 지어 다니고 길도 움푹 파인 곳도 있었어. 하지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레스토랑도 있고 넓은 공원이 있었어. 공원(Kampa Park)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는데, 맥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뭔가 파티하는 분위기였어.


그곳을 빠져나와 강가를 다시 걷자 작은 부두와 15세기에 완공되어 체코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카를교를 만났어. 선착장 위에서 아름다운 아치가 있는 다리 사진을 찍고는 계단을 올라 카를교 위에 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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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타바 강가
IMG_3725수정.jpg 강가에서 본 카를교
IMG_3729.JPG 카를교


그러자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커다란 말라스트라나 교탑(Malostranská mostecká věž)이 눈에 들어왔어. 말라스트라나는 성 아래 마을을 뜻하는 말로 지금도 프라하 성 아래 일대를 지칭하고 있어. 프라하 성과 교탑 안쪽의 말라스트라나는 내일로 아껴두고 카를교를 건넜어. 카를교에는 30개의 성인상이 있지만 조명이 있어도 밤이라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어.


말라스트라나 교탑이 있듯이 반대편에도 구시가지를 지키는 구시가 교탑(Staroměstská mostecká věž)이 있어. 교탑을 지나자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올림픽이라도 하는 줄 알았어. 정말 유럽 한 달을 넘게 다녔지만 밤늦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건 파리 이후로 처음인 거 같아. 길이 좁아서 그런지 파리보다 더 많이 붐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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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스트라나 교탑과 구시가 교탑
IMG_3741엽서.jpg 카를교에서 본 프라하 성(큰 사진), 말라스트라나 (작은 사진)




구시가 광장(Staroměstskénáměstí)


중세의 좁은 길을 계속 따라가면 프라하 천문 시계(Pražský orloj)와 멀리 틴 성모 마리아 교회(Chrám Matky Boží před Týnem)가 보여. 프라하 천문 시계 앞이 프라하의 가장 핫플레이스인 거 같았어. 11시가 넘었지만 정말 정말 사람이 많았어.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려 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 외관만 봐도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멋있어. 천문 시계답게 황도 12궁과 해와 달을 표현하고 있었어. 이 시계도 빈에서 봤던 시계처럼 정각마다 그리스도의 12 사도가 나와서 정각에 더 사람이 많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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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천문 시계와 멀리 보이는 틴 성모 마리아 교회


시계를 지나면 구시가 광장이 나와. 정면에는 아까 본 틴 성모 마리아 교회가 큰 키를 자랑해. 그 아래에는 국립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골스킨스키 궁전 (Palác Kinských)이 있어. 왼편에는 상대적으로 무게감 있는 청동 지붕의 성 미쿨라세 교회 (Kostel sv. Mikuláše)가 보여.


프라하는 웬만한 건 합법인 유흥 도시라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엄청 많아. 그리고 다른 관광지에 비해 술 취한 사람이나 길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광장에 조금이라도 턱이 있으면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 무리 지어 술 마시고 있는 이들이 많았어. 다른 관광지면 치안이 엄청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텐데. 앞서 안전하게 느껴졌던 빈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


큰 목소리 내는 사람들,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고, 더욱이 종종 장난치는 건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무서웠어. 앞서 국립극장을 지나기 전에 사진 찍다가 골목에서 사람 발소리가 엄청 크게 나서 쳐다봤더니 남자 20~30명이 에탄올 냄새를 뿌리며 막 다가와서는, 내 옆의 야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놀랬던 일이 있었어. 그래서 더 그럼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닐까 싶어.


IMG_3746엽서.jpg 구시가 쪽에서 본 구시가 교탑




변해온 중세 건축 양식


프라하에는 유흥 말고도 또 다른 재미가 있어.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천년의 도시라서 유럽의 건축 형식의 변화를 한 도시에서 다 볼 수 있어. 광장에서도 보듯이 높고 뾰족한 틴 성모 마리아 교회는 고딕 양식, 무게감 있지만 부티나게 화려한 성 미쿨라세 교회는 바로크 양식이야. 참고로 처음 봤던 국립 박물관은 르네상스 양식, 골스 킨스키 궁전은 로코코 양식. 시기 순으로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종종 구별 가지 않는 건축물들이 있는데, 보통 시기상으로 겹치거나 넘어가는 시기에는 두 형식이 섞여 있어서 그런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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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쿨라세 교회(좌), 틴 성모 마리아 교회(우)


고딕이야 워낙 뾰족하기로 유명하니 그렇지만, 부티가 잔뜩 나는 바로크와 로코코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 거 같아. 내가 느낀 차이라면 바로크는 내가 최고야! 정도의 화려함, 로코코는 밝고 아기자기한 화려함? 핑크레드를 과감히 사용하는 정도? 고딕 이전에는 로마네스크야. 프라하 전성기 전의 시기라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은 거의 없어. 있어도 개축되어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어. 그래도 성당 첨탑 정도는 있는 거 같았어.


공부를 조금 하고 간다면 찾는 재미가 있을 거야. 앞서 말했듯이 오래된 건축물들은 개축을 여러 번 거쳐서 혼합된 경우도 많고, 실외와 실내가 다른 경우도 많아. 그러니 고딕 건축물이라도 단정 짓지 말고 '창은 바로코 같네'라고 다른 곳을 찾아보면 쏠쏠한 재미가 있을 거야. 전문가도 아닌데 조금 틀리면 뭐 어때? 찾아가며 확인하며 틀리면 고쳐가면서 하는 게 공부요, 여행하는 하나의 재미잖아.


IMG_3743엽서.jpg 카를 교에서 본 레스토랑




두 개의 탑과 시나고그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틴 성모 마리아 교회 쪽으로 빠져나오니 금방 조용해졌어. 그 길 끝에 검은색 탑을 향해 걸었어. 이 탑은 구시가를 방어하는 성문이었다가 이후, 연금술사의 화약고로 사용되었다가 파손, 그 후 다시 보수되어 화약탑(Prašná brána)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해. 옛 성문이라 그런지 카를교에 있는 두 교탑과 닮았어. 교탑보다 멋있어 보이는 건 내 취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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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탑


그곳에서 남쪽으로 걸으면 또 탑이 나타나. 이 탑은 진드리스카의 탑(Jindřišská věž)이야. 15세기에 10층으로 건축된 탑이지만 최근에 개조되어서 길게만 보이는 탑 안에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가 있다고 해. 그래서 탑 앞에 광고판 같은 게 적혀 있었어.


남쪽으로 더 걸으면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져. 가톨릭 성당과 다른 외관에 다윗의 별이 새겨진 시나고그(유대교 성당)로 유대인 지구라는 걸 알게 됐어. 시나고그가 지역마다 다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원래 이렇게 화려했나? 밤이라 잘 안 보여도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과 비슷한 색감이어서 확실히 기억에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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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리스키의 탑


사람이 없어서 조용해지고 시원해서 게하를 지나쳐 산책을 했어. 그런데 멀어질수록 가로등이 적어져 점점 어두워졌어. 그래서 걸음을 재촉해 게하로 돌아갔어. 게하에 도착했더니 다른 나라에서 구할 수 없다는, 고흐가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전설의 위스키와 각종 처음 보는 술을 마셔봤어. 역시나 체코는 유흥인가 봐. 내일 약속도 있고 이동한 날이라 피곤해서 일찍 침대로 향했어. 워낙 술이 다양하게 있어서 맛만 1시간이나 봤지만 말이야. 그래서 더 깊이 잠들었어.




프라하는 정말 사람이 많았어요. 파리 이후로 오랜만인 거 같았어요. 덕분에 얼마 다니지도 않았는데 좀 지쳤지요. 그리고 한국인이 정말 많답니다. 단체 관광이 엄청 많긴 하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객도 있어요. 그러니 밤에 술 취한 사람들이 조금 무섭다면 한국인 일행을 구하는 건 어떨까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다음날에 광장 가서 술 취해서 웃긴 사람들을 또 봤답니다. 유흥의 도시가 그렇겠지요? 유흥 좋아하시는 분들은 엄청 재미난 곳일 겁니다. 저는 중세의 도시라 좋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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