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1일. 터키 3일.
도미토리 일행들과 게하를 나오니 어제와 달리 게하 입구부터 엄청난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어.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지.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장사를 하는 현지인들로 가득 찼어.
우리는 인파들 속에서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사이를 다니다, 줄이 더 적어 보이는 광장의 왼쪽(동쪽)에 위치한 아야 소피아 앞에 줄을 섰어. 그래도 블루 모스크보다 적을 뿐 엄청난 길이의 줄이었어. 날은 점점 더워지고, 햇볕은 점점 따가워졌어. 그래서 빨리 들어가고 싶었지만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어. 나처럼 어제 허탕 치고 돌아간 이들도 있어서 더 많았던 걸까?
한참을 기다려 아야 소피아 밖으로 둘러진 울타리를 지나자 매표소가 나타났어. 그 옆에 줄 없는 자동발매기가 있긴 하나 의미가 있나 싶었어. 오랜 시간 기다려 매표소가 바로 앞이라, 굳이 자동발매기에 갈 필요가 없지. 기다린 것도 아까워. 매표소에서 티켓을 샀어도 다시 내부로 입장하는 꼬불꼬불한 줄이 있었어. 그 와중에도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에게 이쁨 받고 있었지. '여기서도 귀요미 고양이가 우선이구만.'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아야 소피아에 입장했어.
쭉 뻗은 긴 통로로 걸어가며, 엄청나게 높은 천장을 목을 꺾어 바라보았어. 이 정도 규모가 1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 따름이었지. 곳곳에 칠들이 벗겨져 오래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어.
커다란 문을 지나 돔 안으로 들어갔어. 돔은 통로보다 더 높아서 고개를 젖히니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어. 큰 돔으로 기둥 없이 공간이 넓게 탁 트여 있어. 아마 로마의 판테온과 피렌체 두오모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 규모는 없지 않을까? 외관은 붉은색이지만 내부의 하단은 대리석이, 상단은 노랗게 금칠되어있었어. 금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져 외관처럼 붉은 색감으로 느껴졌어. 창이 많긴 해도, 보수공사로 한쪽 벽면이 비게에 막혀 있어 어두워 보여 그렇지 않을까 싶었어.
어제 자미를 다녀와서 자미의 특징과 성당의 특징이 구분되어 보였어.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크고 둥근 이슬람 원판의 서예야. 태생이 성당이어서 그런 걸까, 뭔가 덧붙인 느낌이 나고 가리려는 느낌이 강했어.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는 성당과 색감과 맞는 듯 보였지만 크기가 너무 커. 아마 크기를 기둥과 비슷하게 제작했다면 훨씬 아야 소피아와 잘 어울려졌을 거라 생각해.
그다음으로는 천장의 다양한 모자이크들이야. 서유럽에서 보던 모자이크 그림들과 달라 보이는데, 정교회 양식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리스 메테오라의 수도원의 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화들과 비슷해. 그다음으로는 샹들리에들이 눈에 들어왔어. 어제 봤던 자미의 옆으로 넓고 큰 원 형태도 있고 성당의 샹들리에처럼 작고 좁은 형태도 있었어. 자미만큼 많은 수가 있지는 않았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가 보였어. 돔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모자이크가 있고, 아래에 여러 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어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 아래에는 이슬람 원판들이 있고 지면에는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 미흐랍이 위치해 있었어. 황금색의 미흐랍은 성당의 제단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어.
둘러보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이 있었어. 그곳은 소원의 기둥. 기둥 홈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손을 한 번에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일행 중에 한 명이 알려줬어. 그래서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도 원으로 움푹 파여 있었어. 생각보다 어려워서 한 번에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우리도 손가락을 넣고 돌렸지. 돌아와서 알아보니 아픈 곳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
이층으로 올라가 내부를 바라보니 성당의 내부가 더 커 보였어. 우리가 아래층에서 있던 곳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어서 아래는 보지 않고 천장의 창과 모자이크를 자세히 봤어.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야. 자미로 변경되면서 얼굴을 보석으로 가려놨어.
자미에는 남녀가 따로 예배를 보기에 이층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곳이야. 이층도 대리석의 하얀색과 금칠된 노란색의 천장으로 되어있어. 이곳도 고개를 들어 천장의 장식과 모자이크를 보면서 걸어 다녔어. 그리고 아야 소피아를 내려오니 입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잔뜩 받고 있었어. 터키의 고양이와 개는 정말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거 같아.
광장에서 성당이자 자미였던 아야 소피아를 바라봤어. 아야 소피아는 비잔티움 제국 때 정교회 성당으로 만들어져서 라틴제국이 점령했을 때는 가톨릭 성당으로,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을 때는 자미로 사용되었어. 일반적으로는 다른 종교 국가가 점령 시에는 종교 건물들을 부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야 소피아는 종교에 따라 모습을 조금씩 달리할 뿐 여전히 종교 건물로 사용되었어.
그리고 건축 당시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축물로 이후 많은 종교 건축물에 영향을 주었어. 그래서 성당으로도 자미로도 어색함이 없어. 다만 자미의 상징인 4개의 미나레가 추가로 만들어져 밖에서 보면 자미 인상이 더 강했어. 더욱이 서유럽 고딕 형식이 가톨릭 성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반대로 정교회 성당의 이미지는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20세기까지는 자미로 사용되었으니까 더 그럴 수밖에 없는 거 같았어.
시간의 흐름대로 정교회 성당이 있고, 그 위에 덧칠해 자미로 바꾸었기에 속에는 그대로 성당이 남아 두 모습이 공존하고 있어. 그리고 곳곳에 자세히 살펴보면 두 종교의 모습이 오묘하게 잘 섞여 있어. 이 모습이 어색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른다거나 서로가 물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건 아마 두 종교가 중간점과 형태가 다르지만, 출발점이자 근본인 같은 신을 모시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모습의 아야 소피아가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추가로 건축 시에 로마 신전의 기둥을 가져와 사용해서 다른 종교인 로마 신전의 모습들도 있어. 서방의 종교사가 다 스며들어 있는 신기한 건물이야.
반대쪽의 블루 모스크(술탄 마흐메트 자미)를 가고 싶었지만 너무나 덥고 햇살이 따가웠어. 그래서 광장의 분수에서 물을 맞다가 바로 옆에 있는 예라바탄 사라이로 향했어. 지하 저수조라는 뜻으로 비잔티움 제국 때 건설되었어.
우리는 더우니까 지하로 피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야. 그래도 역시나 긴 줄 때문에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지. 더위와 함께한 기다림이 끝나 티켓을 사고 지하로 들어갔어.
기대대로 지하에 물이 있으니 엄청 시원했어. 그리고 지하이기에 상당히 어두워. 바닥에 노란 조명이 있어도 그리 밝지 않았지. 말 그대로 지하실이란 느낌이야. 그런데 마치 신전처럼 천장에는 벽돌이 아치형으로 쌓여 있고, 그 아래에는 360여 개의 로마 기둥들이 받치고 있었어. 그래서 단순한 수조라는 느낌이 아니라서 지하궁전이라는 이명이 있는 건가 봐.
바닥에는 여전히 물이 몇 cm 정도 잔잔히 고여 있었어. 그래서 그 위로 다닐 수 있도록 다리들이 연결되어 있었어. 지하에 물이 있으니 조금 축축하긴 해도, 더위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 그리고 물이 계속 흐리는 건지 다행히 물 비린내가 나지 않았어. 덕분에 입구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서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어.
우리는 다리 위를 걸으며 한 바퀴 돌아봤어. 물이 있는 관광지는 늘 동전을 던지나 봐. 불빛에 비친 세계 각지의 동전들이 반짝이고 있었어. 가장 신기한 건 이곳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는 거야. 사람들이 풀어놓고 키우는 거겠지? 아님 수도 시설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
이곳에서 유명한 건 메두사 기둥이야. 이것도 그리스 로마 시절에 사용되던 기둥인데, 이곳으로 옮겨져 사용되고 있었어. 다른 기둥에 비해 상당히 큰 걸로 보아 사용된 신전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어. 앞서 그리스에서 본 기둥들이 없어진 신전들이 생각나 씁쓸함이 들었어.
다시 입구로 돌아와 더위를 식혔어. 여러 이유로 조명이 조금만 더 밝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가장 아쉬운 건 니코 로빈을 닮은 여성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는데 나만 못 봤어. 사적지에 눈이 고정되어서는......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더 눈부셔 눈뜨기가 어려웠어. 더위도 피할 겸 어서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어. 광장에 사람이 조금 줄어 보여서 블루 모스크로 향했어. 정식명은 술탄 아흐메트 자미. 내부에 파란 타일로 장식되어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이 더 유명해. 아! 여기서 자미는 아랍어, 모스크는 영어로 둘 다 이슬람교 사원을 뜻하는 말이야. 별명 때문인지 내 눈에는 외관도 파랗게 보였어. 그래서 아야 소피아는 빨강, 블루 모스크는 파랑이라 둘이 마주하는 모습을 보면 묘하게 잘 어울려.
블루 모스크는 아야 소피아와 달리 여섯 개의 미나레가 있는데, 미나레 숫자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은 이슬람 사원이야. 보통 4개면 술탄의 지시로 지어진 자미야. 블루 모스크도 술탄 마흐메트의 지시로 지어졌지만 6개가 된 전설이 있어. 전설은 전설이고 뭐 그만큼 오스만 제국 술탄 마흐메트의 지위겠지. 그리고 그 덕에 더 높은 지위를 가진 메카에 있는 자미의 미나레가 늘어났어. 성당도, 자미도 지위가 있어. 이 종교들에게는 건물에도 지위가 있으니 그렇게 외치는 평등은 어디 있는 건지.
멀리서 봤던 것과 달리 블루 모스크 앞에는 엄청난 행렬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도 티켓이 필요 없어서 줄이라기보다는 느리게 가는 에스컬레이터 정도 됐어. 정문 앞에는 복장과 여러 가지 규정 및 주의점이 적혀 있어서 꼭 읽고 보고 가는 게 좋아.
정문을 통과하자 안뜰에 세정대가 나왔어. 세정대는 보호되어 있어서, 옆으로 돌아가서 대중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나란히 놓인 세정대로 갔어. 현지인들은 모두 발까지 씻었어. 우리는 수건이 없으니 손만 씻고 안으로 들어갔지.
자미 안으로 들어가면 비닐봉지와 치마,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가 준비되어 있어. 어제 예니 자미와 달리 남자들도 천으로 반바지를 가린 뒤에 들어갔어. 그리고 덧신을 신는 게 아니라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다녔어. 그래서 어제와 달리 오늘은 발 냄새가 나더라. 이 꿉꿉한 사람 냄새는 정말 좀 그래. 발 씻고 들어온 현지인들이 싫어할 거 같아.
카펫 위를 걸으며 실내를 구경했어. 하얀 바탕에 파란색 타일, 붉은색과 황금색 장식으로 어우러져 있었어. 무늬들이 섬세하면서도 어지럽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복되어서 깔끔하고 아름다웠어. 마치 커다란 도자기를 빚어놓은 듯하다고 해야 할까. 예니 자미는 따뜻한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파란색으로 인해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 들었어.
서예 원판도 있는데 벽면의 무늬에 맞는 크기라 아야 소피아와 달리 아주 잘 어울렸어. 커다란 돔을 지탱하기 위해 놓여있는 두꺼운 하얀 기둥은 너무나도 놀라웠어. 하나의 바위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이음새가 보이지 않아 건물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돌산을 깎아 놓은 듯이 보였어.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넓은 샹들리에는 천장과 무수히 많은 줄로 연결되어 있었어. 그로 인해 줄이 세세하게 그려진 무늬와 겹쳐져서 아름다움이 가려졌어. 이건 건축 당시에도 있었을까? 내 예상으로는 아닌 거 같아. 술탄이 좋아하지 않을 거 같거든.
아야 소피아를 보고 와서 그럴까? 왠지 실내는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야. 모자이크가 있는 창과 커다란 샹들리에, 높은 천장, 미흐랍, 발다키노 같은 민바르, 시원하고 차분한 분위기까지. 물론 종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 거기다 서로 많은 교류가 있고 영향을 주고받았으니 건축물이 비슷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왜 평소 가톨릭과 이슬람은 극과 극인 것처럼 인식되었을까?
아마 그건 서양인의 시각에 따른 것이라 생각됐어. 심지어 성당 입구에서 성수를 이마에 찍는 행위도 자미에 들어오기 전에 씻는 행위와 비슷한 게 아닐까? 동양에서 나고 자란 나의 시선으로 불교, 유교, 도교를 가톨릭과 이슬람교에 비교한다면 완전히 다르게 보여. 다르게 말해 동양의 종교들에 비하면 가톨릭과 이슬람은 그들의 뿌리처럼 많이 닮은 형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었어. 외부에 자미를 상징하는 미나레도 유럽의 종탑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여. 그런데 정말 왜 싸우는 거야? 아직 어린 형제라서 그런가? 아니면 닮아서?
한 바퀴 돌아보고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어. 커다란 기둥에 기대고 싶었던 걸까? 왜 굳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 우리도 근처에 앉게 되더라. 더운 날씨에 줄 서서 기다리니 앉을 수 있는 카펫을 보니까 저절로 앉게 되는 거 같아. 여름에는 카펫이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은근히 포근해서 편안한 마음이 들어 좋았어.
그러고 보니 이곳도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어야 했어. 유럽을 다니는 동안은 매번 신발을 신고 있었지. 심지어 게하도 마찬가지. 문화 차이로 이 부분이 가장 다르지 않을까 싶었어. 그런데 유럽은 실내에서 신발 신는 게 문화라지만 한국 성당과 교회는 왜 신성한 곳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거야? 하는 뜬금없는 의문이 들었어.
이곳도 신도들만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을 따로 구분해놨어. 낮은 나무 울타리가 쳐져있었지. 그래서 그 앞에서 신도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살펴봤어. 딱히 특별한 건 없었던 거 같아. 오히려 절하는 게 동양문화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아주 편하게 행동했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기둥에 편하게 기대어 있기도 하고 심지어 구석에 누워있기까지 했어. 아이들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서로 장난치며 놀고 있었어. 신과 마주하는 공간이라 행동이 엄청 제한된 공간일 줄 알았지만 정말 의외였어. 미디어에서만 보던 율법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어.
터키는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슬람중에서 상당히 개방적이야. 심지어 자국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의 원리주의자들에게 이단 취급을 받는다고 들었어. 아마 이런 분위기가 더 자유로운 사원을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 '종교란 자신의 마음과 인생을 억매는 존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 조화롭게,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하는 원초적인 생각이 다시 들었어.
다만 불편하게 보였던 것은 굳이 신도만 들어갈 수 있게 나눠둔 곳에서 절하는 이들의 앞에 서서 미흐랍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들은 보기 안 좋더라. 왜 굳이 무릎 꿇고 엎드려 있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까? 사람 사는 곳에서 예의는 지켜야지.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니 엽서가 보였어. 마지막 날인데 핀과 엽서를 아직 사지 못해서 가까이 다가갔어. 역시나 기념품 가게에도 사람이 많았어.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져서 광장을 채우고 넘 칠 정도였어. 햇살이 너무나 따가워서 가판대에서 엽서만 사서 게하로 돌아갔어.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 발길을 사로잡았어. 당연히 젤라또를 생각하고 하나씩 주문했는데, 이 사람이 일행에게 아이스크림을 줬다 말았다 하면서 약 올리잖아. 뭐 이딴 서비스가 다 있나 싶었어. 그냥 달라고 하니 못 들은 척하고는 웃으면서 계속하더라고. 이게 터키 아이스크림의 재미라나? 이 사람이 눈치도 없이 다음 사람한테도 하는 거야? 결국 일행이 안 먹고 만다고 그냥 가니까 웃으면서 주더라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난 무표정으로 얼굴만 쳐다보니 몇 번하고 말더라. 난 아직도 파는 사람만 재밌지, 사는 사람이 왜 재밌는지 모르겠어.
게하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쉬다가 엽서를 다 쓰고 혼자서 우체국(PTT)으로 갔어. 우체국이 그리 멀지 않았지만 사람이 더욱 많아져서 뚫고 지나가기가 쉽지 않았어. 큰길에서 우체국 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신기하게 사람이 없어졌어. 이곳은 호텔과 게하가 많아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야. 그러나 손님이 없어서 점원들이 밖에 나와있었어. 다들 내가 지날 갈 때마다 어디서 왔냐? 한국인이냐?라고 물었어.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그 골목을 지나가는데 하이파이브를 몇 번이나 했어. 그중에 기념품 가게가 있어서 아까 사지 못한 핀을 샀어. 역시나 여기 점원도 한국인이냐고 묻더라고. 정말 한국인을 좋아하는구나 싶었어.
가게에서 나와 갈림길에서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우체국이 보였어. 실내도 구경할만하겠다 싶어서 살짝 들뜬 마음으로 출입문을 향해갔어. 그런데 역시나 휴가로 닫혀있었어.
어쩔 수 없이 게하로 돌아와서 사장님에게 물으니 예라바탄 사라이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우편물을 모아서 보내준다고 말해주셨어. 다시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 가게를 찾았어. 마치 동묘시장이나 국제시장에 있을 거 같은 상가들이 있는데, 그중에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화살표와 우편물 보내는 곳이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어. 화살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서 점원에게 물으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어. 그곳에는 커다란 천 주머니가 있었어. 친절하게 적어놨더라고. 그곳에 엽서를 넣고 게하로 돌아왔어. 1시간 정도 움직였는데 땀이 잔뜩 났어. 정말정말 덥더라. 그래도 미션을 모두 완료한 것 같아 뿌듯했어.
잠시 땀을 식히고 아야 소피아에서 바다 쪽으로 고불고불 골목을 내려가 식당을 찾았어. 옥상이 있어서 블루모스크를 보며 식사할 수 있었어. 반대쪽에는 마르마라 해가 보이긴 했지만 건물에 가려져 그 사이로만 볼 수 있었어. 그래도 시원한 바다 바람에 마지막 식사가 떠나는 쓸쓸함을 채워주었어.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외할머니 스카프를 사다가 바가지를 썼지. 마치는 시간이라며 삼촌한테 전화하는 연기까지 하면서 열심히더라. 정작 내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그냥 사 왔어. 게하 사장님께 가격을 물으니 1.5배 정도 비싸게 산거 같다고 하셨는데, 난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이 속인만큼 물건에 그 사람 몫의 복이 깃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조금 억울하고 말았어. 더 복 받으실 외할머니가 더 소중하거든.
왔던 대로 트램 타고, 푸니쿨라 타고,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어. 그래서 서둘러 갈 예정이었지만 혹시나 사장님에게 물으니 사설 밴이 있다고 했어. 카파도키아에서 탔었던 그 밴이 이스탄불에도 있었어. 한 달 보다 전이라 생각하지 못했어. 그리고 다른 나라 같기도 하고. 교통비가 거의 차이가 없어서 짐을 들고 여러 번 환승 할바에 밴을 타고 가기로 했어. 덕분에 시간이 비어버렸지.
일행들이 나를 배웅하고 관광지로 갈 예정이었으나, 밴으로 변경된 일정으로 1시간 넘게 같이 기다리기 미안해서 일행들을 먼저 보냈어. 또다시 쓸쓸해져서 같이 갈걸 했지만 귀국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되니까. 그런데 밴이 약속 시간보다 늦어져 멍하니 계속 기다리기니 시간이 아쉽긴 했어. 그러던 중에,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떠나기 전에 일행들이 돌아와 버렸지. 아무튼 너무 많은 사람이 있는 밤이라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 아쉽지만 잘한 거 같아.
다시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해도 시간이 남더라. 여행할 땐 금방 가더니 이럴 땐 참 시간이 가지 않아. 상대성 이론은 왜 이렇게 잘 맞는 건지. 약속 시간이 넘어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하얀 밴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어.
어쩜 라마단 휴일에 딱 맞춰 이스탄불에 온 건지. 너무 사전 조사가 부족했던 걸까? 역사는 조금 알아도 문화는 전혀 몰랐던 거 같아. 가서 느껴보자라고 목표를 삼았으니 당연한 걸지도 몰라. 아쉬움이 남는다는 건 다시 가고 싶은 좋은 여행이라는 게 아닐까? 그 마음이 남아 난 이스탄불을 다시 가고 싶어. 그리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난 다시 유럽 여행을 갈 거야. 그때도 같이 갈래?
뒷부분에 여행을 정리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적어보았는데 조금 길어지네요. 50여 일 여행, 1년 가까이 써온 글이니까요. 딱 1년 되는 5월에 끝날 줄 알았으나 여차저차 이때쯤 마무리가 되어가네요. 최근 많은 감정들이 들어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원래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후기로 남기려고 했으니 후기에 이때 감정들과 지금 감정들도 전해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또 말씀드리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같이 여행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