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넘치다
말이 많은 정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후회를 합니다. 말이 너무 많았다고요. 억지로 꺼내려고 해서 그럴까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너무 살을 붙었다고, 너무 확증을 했다고, 그렇게 너무 여유 없는, 빈틈없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중에 가장 후회하는 건 다 아는 척 보다 조금 모르는 척을 못 했다는 겁니다.
친한 사람, 소위 저를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아는 척, 내 말이 다 맞는 척을 하곤 합니다. 찰떡같이 알아듣는 이를 신뢰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절제하고 있는 잠금을 풀어서 그렇지요. 실수가 있었다면 생각났을 때 빠르게 사과하고 고치면 되니까, 저의 잘못된 부분을 잡아주기도 하고 그 대화 과정에서 배움도 있으니까. 그러한 이유들로 자신의 대한 통제를 풀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잘 아는 이에게나 잘 모르는 이에게나 그러고 싶지 않아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한 사람이 세상을 다 알 수는 없어요. 제가 말하는 것은 제 틀 안에 있는, 제가 겪어 본 세상일 뿐이지요. 그리고 만약 다 안다면 예외라는 것이 늘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건 무시해버리죠. 그렇게 사고하다 보면 내 말만 다 맞는 것처럼 내가 세상의 진리를 통달한 것처럼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 아는 척 보다는 조금 모르는 척을 하고 싶어요.
말은 어렵다
다 아는 척을 하더라도 의외로 마냥 억지를 부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차례차례 논리를 쌓아가지요. 마치 논문을 쓰듯이요. 하지만 그 논리로 인해 너무 딱딱하고 반론이 없게 말하게 됩니다. 논문에서 '그럴 수 있지 않나요? 아마 그럴 거야?'라는 말을 한다면 자신에게 확증이 없는 주장을 남에게 사실이라고 믿으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말을 반드시 논문처럼 할 필요도 없고, 논문이라고 반드시 진실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반대로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내 생각이야'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남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말을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자신의 말이지만 자신의 말만 한다면 대화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다 아는 척 보다는 조금 모르는 척을 하고 싶어요.
말이 불편하다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저를 불편하게 하는 말과 사람들이 있어요. 진실과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 믿음과 추측을 사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한 가지로 모든 경우로 확장하고 단정하는 사람들, 자신의 주장을 위해 원하는 사실만을 취합하여 말하는 사람들, 타인의 말을 확인 없이 진리인양 말하는 사람들, 거짓으로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사람들이요.
대부분 경우에 아예 무시해버리고 넘어가지만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진실과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쉽게 넘길 수가 없어요. 그대로 놔두니 그것을 주위에 퍼뜨려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일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죠. 지금은 미디어를 발전으로 그 주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퍼뜨려 놓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반론이 없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라며 우리의 말이 진짜다, 참이다라고 더 큰 소리를 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보고는 '뉴턴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어요. 이도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를 인용해서 마치 뉴턴의 고전역학의 모든 것이 틀렸다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F = ma가 틀렸다면 제대로 서 있는 고층 건물과 다리는 없을 겁니다.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기보다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더 가까이는 한 가지만 먹고 건강하게 살을 뺀다고 하거나 아침을 먹는 게 무조건 건강에 좋다거나 생각할 시간에 움직이기 부터하라거나 경우나 상황을 배제한 채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라는 말과 동급 취급합니다. 물론 기더기들처럼 제목으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하는 말도 많지만 문제는 그것을 온전히 비판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인양 세상의 숨겨진 진실처럼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쉽게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면 '너도 모르면서 나에게 태클이냐'라는 빈정을 듣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더 강하게, 확고하게 말하게 됩니다. 적어도 상대의 말을 들으며 차분하게 말하고 싶지만 이미 신념이 되고 선구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가 대부분이라 차분함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 아는 척 보다 조금 모르는 척이 어렵습니다.
대화의 목적
그래도, 하지만, 적어도 나와 오랜 시간 말을 나누고, 나눌 사람들에게는 다 아는 척 보다 조금 모르는 척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말이 그들의 생각에 녹아들 수 있게, 내 생각에 그들의 말이 스며들 수 있게 틈을 두고 싶어요. 그래야 대화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강연을 하고 싶은 것도 가르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전 다 아는 척 보다 조금 모르는 척하고 싶어요.
정말 말이 넘치는 시대이지요. 과거 말로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었죠. 하지만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익을 위해 말은 많아지고 많은 말 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강하고 자극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이 진실이 되지요. 그래서 과거 신문이 진실처럼 여겨졌다면 현재에는 유튜브가 진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쉽게 접하게 됨에 따라 파고드는 속도에 말의 무서움을 더욱 느끼고 있습니다.
20대 술자리를 좋아할 때 여러 가지 논쟁들을 사람들과 하는 게 재밌었습니다. 정치, 시사부터 스포츠, 연애까지 그때 목소리는 높아도, 조금 틀린 내용이 있더라도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만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오히려 남의 말을 남의 경우라고, 너만 예외라고, 너만 모르는 것이라 하며 생각을 좁혀 버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주의하고 경계하고 싶어요. 요즘 더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고 느껴져요. 그리고 사람 관계는 좁아도 세상은 넓다고 느껴져요. 그래서 재밌는 거 같아요.
올라오는 태풍에 피해 없으시길 바라고, 부족한 제 글이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