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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Sep 27. 2021

타버리다

#번 아웃, #burn out, #허무함, #무기력


번 아웃 (burn out)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힘든 사람들은 코로나 의료진이겠지요. 힘들고 지치지만 환자들을 놔두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그리하여 burn out syndrome(번 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업무 시간이 긴 한국인들에게는 한 번쯤 겪어보거나 들어봤을 단어지요. 이와 같은 개념이 생긴 것도 40여 년 전, 환자들을 보살펴야 했던 의료진의 변화를 보고서라고 합니다. 마치 심지가 다 타버린 듯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져 붙여졌다고 하지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그들을 한계 이상까지 몰아붙인 것이겠죠.



나에게도, 너에게도

 

  몇 년 전 텅 비어 있다는 느낌으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열심히 했던 결과 가슴속에 있던 열정이 다 타버렸습니다. 아니 열정에 의욕과 목표들이 모두 다 타버렸다는 것이 정확하겠지요. 하고자 하는 일을 마쳐야 하는 성격인 자신과 점차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사의 콜라보는 강렬한 열기가 되었습니다. 대가가 돌아왔다면 그것을 재료 삼아 할 수 있었겠지만 요구와 대가는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당연시 여겨졌고, 퇴사 이야기가 나와서야 사과와 다른 대우를 제시하였지요.


  반복되는 것이 싫어 택했던 일이었지만 결국 회사 생활은 똑같았습니다. 가끔가다 터지는 거래처의 컴플레인은 변화가 아니라 다른 부서의 실수를 해결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부탁과 좋은 말은 그때뿐, 해결 후에는 감사의 인사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어떨 때는 저희 부서의 잘못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졌습니다.


  소위 직장인들이 말하는 '일'일뿐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적어도 1/3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과 감정 없이 '일이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의 팀원들이 그렇지 않았기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고, 소수지만 '고마워'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남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하며 버틸 수 있었습니다.




몸으로 드러나다


  '직장생활이,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에게 '괜찮다고 버틸만하다'라고 다독였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며칠씩 밤새워도 괜찮던 몸이 야근을 하지 않아도 퇴근만 하면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와 관절이 붓고 아팠고, 두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작 장염'에 입원하고 말았죠.


  탈진 증세와 장염에 며칠만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이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통증에 맹장염으로 오해하고 몇 분 거리의 병원을 가기 위해 엠뷸런스까지 부르려고 했던 아침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장 대부분에 염증이 있다는 CT에 고민하였습니다. 아침에 CT 차례도 앞당겨 주었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 바로 찍지 않는 것이 화가 난 일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옆의 아들이 아프다고 CT를 안 찍어주냐고 화를 내던 어떤 한 아버지를 보면서 화도 나고 공감도 되고, 혼자 타지 생활하는 저에게는 부럽기도 했던 기억도 났습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수액을 맞고 회사에 전화하니 역시나 '출근하라'였습니다. 그러면 입원을 해야겠죠(?). 좋은 팀장님의 중재로 입원은 했고, 며칠은 편안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쉬었는데, 원래 마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약 5kg이 빠져버렸죠.




텅 비다


  결국 몇 달 더 다니다 퇴사를 하고 소원하던 여행도 다녀오며 잠시 쉬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는 오퍼도 거부했지요. 하지만 열심히 했던 일이라 타던 재가 남았는지 미련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저를 아끼던 지인의 추천으로 오퍼 자리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장은 저의 평판과 이력을 말과 표정으로만 높이 평가할 뿐 대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 회사에서는 신입'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해졌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나', '내가 이 정도밖에 결과를 내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처음 말하던 회사의 비전과 자랑은 점점 경영자로서, 업계의 사람으로서 어려움을 말하는 항변으로 변했습니다. 연봉 이야기가 나오면 괜찮던 회사가 어려운 회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제 열정은 그저 제 능력을 싸게 부리기 위한 것에 불구하다'는 생각에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다른 일을 시작했지만 제 마음에는 낫지 않은 상처가 남아있었습니다. 쿨하게 넘기거나 혹은 갚아줘야지 하며 대응할 수 있었던 일에도 그 상처는 자극되어 다시 터져 버려 감정 조절은 어려워졌고 몸은 반응하여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요. 그 후에도 저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신뢰했던 사람에 대한 믿음도 잃고 나니 가슴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텅 비워져 버렸습니다.




무기력증


  커다란 구멍이 제 자신을 빨아들이듯 한 없이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갔습니다. 모든 옛일에 화가 나면서 그 화가 제 자신을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는 모든 것에서 타인의 입장만이 이해가 되면서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남들도 힘들었을 텐데 내가 더 이해할걸'라고 생각되었다가 반대로 '사람은 생존이 우선이니 어른들 말대로 독하게 내 거부터 챙겨야 했어'라고 생각이 들었다가, 그렇게 극과 극의 후회들이 밀려왔습니다. 그런 후회 뒤에는 정말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거 같았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빈 가슴에는 무기력과 허무함만이 남았습니다.




빈 것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자 허무함 조차 잡아먹혔는지 고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비어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이 없어져서 비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보니 비워진 그릇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비워진 그릇은 온전히 제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마음에 들었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나'중에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의 햇살이 포근했고, 낮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음이 났고, 저녁노을에 감사했고,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들의 목소리에 행복했고, 밤의 풀벌레 소리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나를 조금씩 다시 찾아갔습니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를 되찾아가니 아무 말 없이 따뜻하게 바라만 봐주던, 기다려 주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빈 가슴을 채워줬습니다. 아니, 그들은 그곳에 늘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흔한 사람들처럼 뭔가 아는 척하며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화를 내며 다그치치 않고, 아무 말 없는 나를 믿고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이런 것 자체를 생각하는 저라서 좋아해 줬습니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해줬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기가 좋지만 혼자 있기를 그만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싶은 것부터


  아직 큰 의욕은 없습니다. 가끔 허무함도 다시 찾아오지요. 다만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을 위해 욕심이 생겼습니다. 의욕이 없는 욕심이기에 요행을 바라고 있지요. 어른이 되어서 변했다고 할지 몰라도, 요행을 바라는 것은 사람이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편안하게 살고 싶은 건 어린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적게 일하고 많이 받고 싶은 건 요행이 아닌가요? 그래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하지만 복권(福券, lottery)은 가져야 당첨되고 스스로 사야 당첨금이 자신의 것이 됩니다. 요행을 얻으려면 시작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하다 보면 행운이 온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이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부터 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그중에 하나이지요.




나를 위해


  그런 나였기에 모든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일이었기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나보다는 남들을 위해 책임감으로 해왔던 거 같아요. 지금도 온전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기에 무섭고, 허무함이 다시 찾아오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나를 위한 의욕과 욕심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삶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요.




  비움과 채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완전히 비어있었던 그때가 떠올랐지요. 번 아웃되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인지조차 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죠. 자의와 타의에 의해 비워가는 과정이 휩쓸리듯 힘들었지만 괜찮은 점도 있었어요. 그래서 채우기만 바쁜 사회와 비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으나 어제 갑자기 또 허무함이 찾아와 버렸어요.


  이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겨서 금방 보내버릴 수 있지만 어제는 쉽지가 않았아요.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 이 참에 저의 옛이야기를 전하면서 번 아웃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하고 급히 적게 되었어요. 어려운 용어보다는 저의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전해드리려고 했으나 새벽이 되니 한풀이도 아니고 아직 극복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기도 했어요.(몇 년 전, 이미 책 한 권의 분량의 짧은 글들로 한풀이는 마쳤습니다.) 그래서 한 회사에서 있었던 일과 마지막 오퍼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넘겼어요. 사람이 한 번에 변하지 않듯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정도 일은 한국에서 일하다 보면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라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공감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고, 저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독자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저는 아직도 정상(?) 상태를 찾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누군가 도망 중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36계 줄행랑이라는 말도 있듯이 저는 행복한 길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행복한 길은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행복한 길을 걷고 있는 분들에게 축하와 부러움의 눈길을 드리며 아직 행복한 길을 찾는 분들에게는 용기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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