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김천으로 이사 온 후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게 된 아이는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힘들어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기 시작한 하루 이틀 정도는 단순한 적응문제라 생각하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는 곧 소아강박증과 틱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만화를 보는데 토끼의사선생님이 늑대가 손을 안 씻고 눈을 만져서 눈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하자마자 아이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나 손 안 씻고 눈 만졌어" 말하며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집 밖에 나간 적도 없는데 자신이 아까 모래놀이를 하지 않았느냐고 몇 번이고 물어봤다. 혹시라도 모래놀이를 했다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불안해했다. 밤에는 비누로 양치질을 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닐 때, 아이가 문 앞에서 울면서 헤어지는 날이면 꼭 잠시 후에 방 선생님이나 원장교사는 아이가 안정된 후에 내게 따로 연락을 해주었다. 아이가 마음을 추스르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주기 위해서다. 이 짧은 연락 하나. 그 수고가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나, 아이와 헤어지고 내내 마음이 안 좋을 아마에게 얼마나 마음을 써준 것이었나 뒤늦은 깨달음에 눈물이 났다.
달마다 한 번씩 교사와 방 아마들이 모여 아이의 생활과 서로의 삶, 마음을 나누던 모임의 시간이 얼마나 특별한 시간이었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우리를 단단하게 이어주었고, 힘든 순간에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는지.
아이가 제 컨디션을 다시 찾는 데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나도 그 시간 동안 공동육아 아마에서 유치원 학부모로의 모드 전환이 쉽지가 않았다. 가끔 조합원들 얼굴 한 명 한 명이 떠올라 그리움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 주변에는 공동육아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 나간 사람들도 많고, 이사장까지 할 만큼 헌신했다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이제는 증오만 남은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공동육아 현장마다 갈등의 이슈가 다르고, 한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의 기대가 다르다 보니 여러 가지 사건과 싸움들도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돈도 많이 든다. 여러모로 끝까지 하기가 쉽지 않은 게 공동육아다. 그런데 또 빠져들면 중간에 그만두기가 더 힘든 게 공동육아이기도 하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공동육아 생활의 아이러니, 그 간극 속에서 여전히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고 흔들리면서도 단단하게 버텨 준 이들의 수고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작년 취재 때만 해도 3층 강당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로 TF팀을 꾸렸던 개구리 어린이집은 이제 어엿한 3층짜리 어린이집이 되었다. 처음 증축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과연 가능한 일인가 멀리서도 긴가민가해 응원조차 보태지 못했는데, 이들은 해내고야 말았다. 나는 이 뚝심을 사랑과 우정, 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