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서서
어떤 경우에도 부부가 먼저여야 해
부부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져
그러니 나를 먼저 바라 봐!
아이를 낳으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
동반자를 만나기 위해 결혼한 것이고
아이는 우리 둘이 이후에 따라 온 거야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하지만 그 고집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엄마-아빠-아이, 서로가 서로를 보는 시선들. 이 시선에 있어서 순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먼저 서로를 바라보고 그것이 안정화되면, 자연스럽게 엄마로서 아이를 혹은 아빠로서 아이를 바라보게 된다. 이 구도에서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역할과 상호간의 협조방식을 알게 되고, 자신이 가정을 이룰 때 부부가 되는 것이나 부모가 되는 것에 있어서 어떻게 받아들이며 행동할지에 대한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순서였다.
그것의 순서가 바뀌었을 때 어떻게 될까?
아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남편 대신 아이에게 몰입을 하면, 본질적인 문제를 한쪽에 치워둔 채 텅빈 가슴을 대신 채워 줄 대상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다. 이를 테면 남편의 빈자리로 인해 생긴 불안정한 심리로 애꿎게 아이를 과하게 끌어 당겼다가 과하게 밀어내는 일이 반복하게 되는 식이다. 유일한 삶의 낙일 때 끌어 당기고, 삶의 굴레에서 족쇄와 같아질 때 밀어낸다. 그 반복 속에서 '엄마가 가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아이에게 여과없이 전달되고, 자신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에 대한 미움이 아이의 마음에 싹 트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를 원하므로 본의 아니게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한편, 남편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외로워진다. 어쩌다 보니 아내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고,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다. 남편은 이방인이 되어 떠돌고, 결국 아내의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극적인 시나리오의 전말이었다.
"삶이라는 무대에 올려진 우리가 이런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그 방법은 남편인 당신이 아내인 나를 그 누구보다 최우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남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나에게 있어서 남편의 자리가 점점 공석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장모님 한테 더 잘할 껄 싶어 나도
결혼을 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남편으로서의 역할만 유효하고 딸이나 아들로서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결혼 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의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고 부모님이 요구하는 모임이나 처신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에는 아내로서의 나의 참여도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인 나는 결혼 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할 부모님이 더 이상 없었다.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지 않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고, 남편으로서 그가 참여해야 할 것도 당연히 없어졌다.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은 그랬다.
나의 어머니가 생존해 있을 때 그는 장모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남편에게 장모가 어려운 대상인 것처럼 나도 시부모가 어려웠다. 그 어려운 대상에 대해 쩔쩔매고 정신을 파는 동안 나의 어머니는 혼자 병을 앓다 급히 가셨다. 딸로서 좀 더 신경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 때, 내 앞에서 자신의 부모를 챙기는 모습이 싫었다. 더 이상 챙길 것도 없는 남편과 여전히 챙겨야 하는 아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지난 일인 걸 어떻게해"라는 말은 반박이 불가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그렇다고 쳐도 홀로 남은 나를 바라보는 것은 왜 못하는가? 나는 아직 지나간 사람이 아닌데......
남편의 가족, 나는 그들에게 며느리로 불렸다. 표면적으로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는 표현을 자주 썻지만 실제로는 아웃사이더였다.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딸을 길러본 시어머니가 그 만큼의 시간동안 며느리를 길러 본 적 없고, 엄마 밑에서 자란 며느리가 그 만큼의 시간동은 시어머니와 부대끼며 자라난 적이 없다.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아들이 데려온 손님, 남편의 가족 안에서 손님이었던 나는 말이나 행동에 예의라는 이름의 거리감을 내심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주로 속도 없이 웃거나, 대체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동조의 끄떡임을 취하거나, 경직된 자세로 어정쩡하게 함께 움직였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 늘 그러하듯이. 아무도 내게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진이 빠지고 힘든 일이었다. 남편과 나, 둘 만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본능적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낸 것에 대한 의미와 보상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그도 어떻게 그것을 구하고 줄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뭔가 서로 간의 균형이 깨져 있다고 느낄 뿐이다.
아이를 맡겼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네가 더 신경을 쓰던가
어정쩡한 두 사람,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둘 다 일에 짓눌려 바쁘게 살아가는 종족들이다. 아이는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조부모의 손에 맡겨진다. 아이와 가장 가깝게 서 있는 사람이 조부모이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이나 움직임은 그쪽을 중심으로 해서 발생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이의 조부모는 자신의 부모이니까 대화가 훨씬 자연스럽다. 살짝 짜증이 섞인 부모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편은 굳이 이유를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부모 역시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 듣는 아들에게 마음을 더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대적으로 불편한 며느리에게 진심을 숨긴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남편과 부모간의 대화는 많아지고 아내는 건너서 듣는 존재가 된다. 남편의 관심 대상은 1순위가 아이, 2순위가 부모, 3순위가 아내가 된다. "건너서 듣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이방인 티를 내지 말고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며느리로서 네가 더 다가서라" 3순위자가 1순위자가 되는 길은 그것 뿐인걸까?
아이를 데려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가 함께 사는 가정'을 만들면 될까? 아이를 돌보는 것에 있어서 부모님을 경유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일을 포기해야 하고 남편은 혼자 벌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 시피 시작한 가정에서 외벌이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은 쉽게 선택하기 힘들었다. 단지 돈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남편을 외벌이로 만드는 순간 아내는 경력단절로 인해 자립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육아를 하는 것에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완벽하게 독립된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육아가 아니어도 시댁의 대소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일은 여전하거나 더 늘어난다. 아내에게는 '엄마'라는 역할과 '며느리'라는 역할 만으로도 포화상태가 된다.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아내'라는 의미. 그것을 물으면 "아이는?"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이의 엄마가 아내의 자리를 묻는 것 자체가 미성숙한 것일까? 같은 답변이 반복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괜히, 결혼 했나봐
나는 무엇 때문에 그의 아내가 되려고 했을까? 엄마가 되기 위해서, 아니면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본질적인 고민이 생겨난다.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보다는 '현실'이라는데, 나는 이것에 대해 전혀 예측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한 것일까? 이미 엎어진 물이다. 되돌릴 수도 없는데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이제 나는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내의 자리가 내려놔 지지가 않는다. 손님을 데려온 당사자마저 자신의 손님을 챙기지 않는데, 편치 않은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당신이 나를 보지 않으면 나는 당신과 관련된 그 누구도 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든든한 지원군이 포진해 있는 남편과 뒤에 아무도 없이 혼자 싸우는 아내의 엇갈린 세레나데였다. "너를 좀 더 신경쓰려고 노력해 볼께" 이런 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은 ‘원치 않는 가교이자 애물단지’가 되어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늘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아이를 세워 놓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부모간의 시선, 특히 엄마 내지는 며느리로 살며 아내의 자리를 포기한 사람의 시선을 알리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엄마와 자식이 한 그룹이 되고 아버지는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는 이유가 아버지의 경제능력 상실에서 오는 가장으로서의 존재감 감소라고 알고 있고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평생 가장으로서의 짐을 한껏 지고 밖에 나가 자존심을 팔아가며 돈을 벌어다 준 남편에게 왜 아내는 다정스럽기는 커녕 원수보듯이 하는지, 살면서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끝도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는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나 역시도 그 어긋난 시선에 대해 생각만 했지 어떻게 시선을 조정할 수 있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냥 문제가 있다고 할 뿐. 남편과 아내, 아니 그 이전에 한 남자와 여자 두 사람간의 관계인식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아이는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너 정말 그걸 후회하는 거야?" 모든 게 엉망이었다.
'엇나가는 세레나데'라도 불러야 네가 어디서 노래하는지 알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 결혼을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 그 자체가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하나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어제까지는 아들이거나 딸이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지는 않는다. 그 두사람이 부모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친절하게 아들에서 남편으로 딸에서 아내로 변화하는 동안 기다려 주는 일도 없다. 그렇게 변화하기도 전에 사위 또는 며느리라는 역할이 먼저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아빠 또는 엄마의 역할도 중첩된다. 1인 다역에 반강제적으로 캐스팅된다. 배우도 하나의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적응을 하고 다음 캐릭터로 넘어가기 전에 이전의 캐릭터를 털어낼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선 우리에게는 그렇게 여유를 가질 틈이라는 게 없다.
우리는 그 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참 많이 싸웠지"라고 말이다. 그 싸움의 형식이 무엇이 되던 간에 결국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걸까?"라는 말을 품고 있다. 갑작스러운 역할 변화 속에 던져지더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면 친절하지 않은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배역에 압도당해 혼란스럽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한 싸움 끝에 깨닫게 된다. "모든 면에서 참 서툴었어. 너도 나도"라는 말을 담담하게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십년은 걸렸던 것 같다.
답도 없는 싸움의 연속,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엇나가는 세레나데'였다. 사랑을 노래하는 방법을 모르니 아무 방향에 대고 아무 가사나 얹어서 아무 때나 부른다. 상대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가 사랑의 노래라고 생각할지 아닐지도 모르고, 상대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시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그거라도 불러야 한다. 한 곳에 서서 계속 불러대면 부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두서가 맞지 않는 노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귀에 익어 따라 부르게 된다.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엇나가는 세레나데라도 듣게 될 지 모른다. 적어도 귀에 들리면 그쪽을 향해 설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