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여러가지 색깔

마음의 정기배송을 시작합니다.

by 얄리

남편과 아내는 두 사람의 사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엉켜버린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생각나는 것을 했다. 주로 아내가 제안을 하고 남편은 따랐다.


일단, 다 멈추고 얘기를 해 보자


두 사람은 다니던 회사에 각자 휴가를 내고 제주도로 향했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여행을 위한 일정 따위는 하나도 짜지 않았다. 바닷가 풍경이 잘 보이는 기다란 창문이 있는 복층형의 팬션에서 종일 머물렀다. 모든 것을 떠나서 두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 충분히 집중하며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서로 주고 받을 말이 많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거의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대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뜨기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이 더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잤다. 그리고 일어나 주변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팬션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들어와 TV를 켜고 나란히 앉아 멍을 때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해가 저물면 다시 밥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고 돌아오는 길에 오뎅탕을 끓일 재료와 술을 사왔다. 그것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일상적인 말을 조금 섞은 후 먹고 마신 후 다시 TV를 켜고 나란히 앉아 멍을 때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졸음이 오기 시작하면 조용히 씻고 침대로 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것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해도 무방했을 것들을 짐을 싸고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와 제주에서 하고 있었다. 마지막날, 겨우 팬션 주변의 쓰잘데기 없는 풍경들을 핸드폰으로 찍어 담은 후 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갔다. 막막했다.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었다. 이대로 끝인 걸까? 그냥 참고 사는 방법 밖에 없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상담을 받아 보는 게 어때?


부부간의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을 중간에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남편은 탐탁치 않아 했다. 하지만 이미 제주도에서 우리 둘 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겪었던 터라 마지 못해 그러자고 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을 뒤졌다. 두 사람이 어색한 표정과 몸짓을 하며 자그마한 상담소의 문을 열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상담실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더 있는 여자 상담사가 앉아 있었고 맞은 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상담사를 바라보고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는 상황, 말이 없는 남편보다 앞서 아내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나갔다. 남편은 본인이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내가 힘들어하니 이유라도 알고 싶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말만 꺼냈다. "일단, 부부가 함께 이곳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적어도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까지는 동시에 가졌다는 거니까요" 상담사는 이렇게 말하며 서로간의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이해가 필요하다며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문항이 빼곡히 적힌 설문지를 나눠 주었다.


그 다음주에 결과를 분석한 문서를 상담사가 해석해 주었다. 예상은 했지만 두 사람은 극과 극이었다. 현실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인 남편과 이상적이고 관계개선 중심인 아내는 각자의 영역 안에서도 가장 끝단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담사는 서로간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니 두 사람 간에 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일상 속에서 짧게라도 여유를 가져 보라고 했다. 이를 테면 마사지를 받아본다거나 하는,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상담소를 나왔다.


들어갔을 때 결과지 바뀌어 있던 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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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꺼도 아니고 앞에 커플 거더라


갑자기 폭풍 대화가 오갔다. 상담과 상담 사이에 간격을 두고 이전 상담 기록을 치웠어야 했다. 적어도 상담결과지의 이름은 확인을 했어야 하는 거다. 성격의 차이로 여기까지 왔으면 어떻게 그 차이를 극복할지를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 방법을 알았으면 상담비에 설문비용까지 내 가면서 여기 왔겠냐. 결론이 마사지를 받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라는 게 말이 되냐. 일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 간만에 두 사람 간에 의견이 일치되는 순간이었다. "돈 내고 이건 아니다"라는. 두 사람의 성향이 극과 극이어도 입사동기로 만나 결혼한 만큼 일에 있어서 가지는 가치관은 닮아 있었다. 이 시도는 단번에 접혔다.




일상을 떠나 보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았다. 여전히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마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알 때까지 아이를 두 사람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엄마이자 며느리 역할이라도 해야 했다. 집을 시부모님이 사는 곳 근처로 옮기고 일을 하고 와서는 아이를 데려가 씻기고 재웠다. 이방인이 되는 일이 전보다 더욱 잦아졌다. 좀 더 이방인이 아닌 척 하는 기술이 늘었지만 이방인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런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덜 이방인이 된 척을 하며 살다보니 점점 주변이 두 사람의 가정 안까지 치고 들어왔다. 아이를 매게로 해서, 부부의 공간과 삶까지. 남편은 원가족과 자신의 가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에 지쳐갔고, 아내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척 하는데 지쳐갔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로 독립된 가정이고 싶었다.


결국 12년 만에 이방인은 입을 열었고 충돌이 발생했다. 며느리의 반란이었다. 남편과 남편의 원가족이 있는 공간, 오래 전 부터 그곳에 터를 잡아왔던 까닭에 지역의 사람들조차 다 시부모의 지연으로 덮혀 있는 곳에서 나는 홀로 저항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 동네의 수근거림이 느껴졌다. 어느 새 몹쓸 며느리로 낙인 찍히고 고립되었다. 마녀사냥,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나만 사라지면 모든 게 평화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조부모와 부모 사이를 오가던 아이가 부모의 집에만 있게 되었기에 회사도 나갈 수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는 동안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외에는 집에 쳐박혀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떠나자. 이곳


너덜 너덜해져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말했다. "나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니야?"고 물었다. "너 없다고 아이 데리고 부모님 집으로 가는 일은 없어. 네가 떠나면 내가 혼자 키우다가 않되면 둘 다 망하는 거지. 다른 대안 없어" 부부는 급하게 집을 알아봤다. 아이와 엄마가 최대한 근접해서 있을 수 있도록, 전학을 가는 학교와 나의 근무지가 가까운 곳으로. 이방인은 그렇게 지옥같던 지역에서 사라졌다.




그 무엇보다도 갑자기 터가 바뀐 아이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해 아이가 학교에 적응할 때까지 붙어 다녔다. 수업을 듣는 시간 동안에만 출근을 했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를 데려왔다. 남편이 귀가를 하면 다시 남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회사에 나갔다. 두 사람은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서로 역할을 나눠 가졌다. 남편은 아내가 못 챙긴 생필품을 소진되는 시점에 맞춰 배달되도록 챙겼고, 집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함께 처리해 나갔다. 때때로 잠시 시간이 생기면 함께 차를 마시며 일상의 것들을 챙기고 서로의 스케줄을 체크했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둘은 입을 모았다. 일터가 멀었던 남편보다 아이와 가까운 곳에 있는 아내가 처리할 일이 더 많았다. 일터와 집과 학교를 오가며 정신없이 바빴던 아내를 위해 가끔 남편은 저녁의 자유를 주곤 했다. 잠시 집과 떨어져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같은 채바퀴를 돌는 것이 반복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2년만의 그 반란으로 우리의 가정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기 일보직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살아지는대로 꾸역꾸역 참고 버티는 것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아야 가정을 지킬 수 있을 상황이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의 답을 찾게 했다. 공조를 위해 서로의 일과를 털어 놓기 시작하면서 일과 속에서 생겼던 에피소드와 생각 그리고 감정들을 공유하게 되었고, 틈만 나면 나란히 산책하고 밥을 먹으며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미래는 어땠으면 좋을지를 얘기하게 되었다.




사랑은 여러 색깔이에요.
열정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내, 헌신, 희생, 다 사랑이죠


삶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았을 무렵, 특히나 십년의 시간동안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두지 못해 힘들어 하던 때에 상담대학원에 진학하여 자기 분석을 진행했었다. 일터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후로는 일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 외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그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남편이 있었다. 한때는 연인이었던 그가 가장이라는 역할에 아빠라는 역할에 집중하면서 아내를 바라보지 않는 것 같은 공허감을 떠 올릴 무렵,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말했다. "사랑이라는 게 여러가지 색깔이 있어요. 대부분 연인 시절의 뜨거운 열정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인내, 헌신, 희생 그 모두가 사랑이죠. 남편이 열정 말고 다른 사랑이었던 적 없었나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아내가 괴로워할 때, 그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원치 않는 자리일 때도 옆에 앉아 아내를 바라봤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가 충돌했을 때 아들로서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아내의 남편이기를 선택했다. 퇴근시간이 되기가 바쁘게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받아가며 집으로 달려왔고 아내와 역할을 나누는 것에 집중했다. 때때로 지친 아내를 위해 시간을 내어 놓았다.


열정이 아닌 다른 사랑, 그 모두에 그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상대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한결같은 얼굴을 하고. 언제쯤이면 자신이 나를 바라보는 것을 내가 알까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