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의 상속

나의 첫번째 친구로 등록

by 얄리
저 옷 입고 춤 출 때가 제일 멋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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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쩜 저렇게 무대 매너가 좋데


한밤 중에 이불을 나눠 덮고 앉아 ‘장국영의 고별콘서트’를 담은 비디오테잎을 돌려보며 나와 엄마는 방구석 팬미팅을 벌이곤 했다. 그러니까 이게 몇번째더라? 테이프가 조금 늘어진 느낌이 든다. 족히 수십번을 돌려 봤던 것 같다. 본 것을 보고 또 본다. 순서가 어떤지, 무슨 노래를 하고 어디쯤에서 쉬어가는 멘트를 하는지 이미 외우고도 남았다. 사실 그의 팬은 나다. 팬이라면 봤던 것을 다시 볼때도 매번 설렌다. 엄마는 그런 팬의 팬이었다. 똑같은 장면에서 흥분하는 딸의 말에 언제나 처음보는 것처럼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도 좋으냐? 나도 좋다.


처마로 둘러쌓인 하늘이 참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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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돌담을 감싸는 넝쿨도 멋져


휴일 대낯에 창덕궁, 고궁이 바라보이는 자리에 야외용 이젤을 세워두고 풍경에 홀딱 반한 눈으로 연신 붓을 움직인다. 화판 속 종이에는 내가 바라보던 풍경이 수채화로 옮겨지고 있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집에서 수채화를 그리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기가 촉촉한 팔레트와 물감을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너도 그려보고 싶어?” 아빠는 사용하고 있는 화구와 똑같은 구성의 화구를 딸에게 사 주었다. 아이에게는 좀 과했다. 전문가용일 필요까진 없었지만 아빠는 상관하지 않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로 도배가 되던 종이들이 쌓여가다가 어느날부터는 조금씩 형체들이 잉태되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아빠의 그림에서 본 풍경처럼 나의 종이에도 풍경이라는 것이 담기기 시작하자 아빠는 딸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과 직접 마주 보며 그리는 것은 달라. 직접 보면서 그리면 그걸 바라보는 마음까지도 담아지거든.” 아빠는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풍경을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함께 하니 좋구나!






이거 봐봐! 완전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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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박. 2차 대전 때 썼던 군함이야?


아들의 방은 군함들로 가득하다. 프린트 되어 걸려 있는 것도, 책장을 가득 채운 프라모델들도,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깔려 진 것도 모두 군함이다. 이른바 밀덕인 아들은 재현된 무기들을 보기 위해 전쟁영화를 보고, 나무위키에서 촘촘하게 관련 지식들을 섭렵하며, 내셔널지오그라피와 히스토리 채널 그리고 국방TV의 애청한다. 그런 아들이 유투브를 뒤져 찾아온 수많은 군함과 탱크 그리고 전차의 영상들을 수도 없이 플레이하는 것을 함께 보는 것은 흔한 일상일 뿐이다. 비슷하게 생긴 군함의 디테일을 알아보지 못해서 “어떻게 이걸 헷갈리냐?”는 핀잔을 먹고는 빈정상해서 “야! 나 군면제 잖아!”라며 투닥거리거나, 군함 프라모델 위에 놓인 파리크기만한 수십개의 비행기 중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 다른 군함 위에 올려놨다가 매의 눈초리로 비행기 행렬이 망가진 것을 발견한 아들에게 추긍을 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 역시도 일상이다. 그렇게도 좋으냐? 나도 좋다.


진해는 역시 군함 타보러 가는 것이고,
블라디보스톡은 전쟁 때 썼던
무기들과 기록 사진을 보러 가는거지


아들과의 여행 컨셉은 늘 이랬다. 일단 진해하면 벗꽃이 흩날리는 로망스 다리나 경화역은 들러리일 뿐, 흔들리는 사다리를 기어 올라 군함에 탑승하고 미로같은 내부를 활보하는 것이 여행의 하일라이트. 진해기지사령부, 미군진해함대지원부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무조건 필수코스에 포함되어야 마땅했다. 마찬가지로 블라디보스톡은 루스키 섬의 아크아리움이나 아르바트 거리보다는 전차와 무기가 모여있는 지상요새나 S56 잠수함이 인접해 있는 혁명광장이 메인. 아르세니예프 향토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구경하는 것이 블라디보스톡의 바닷가에서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이벤트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엔 아예 하루를 다 빼서 박물관에서 놀까?”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그럴까?” 모종의 계획이 수립되었다. 함께하니 좋구나!


탱크 만드는 거 다 되어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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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일루 와봐. 보여주께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빛을 속도로 움직인다. 어느새 화면 속에는 3D로 만든 그럴싸한 모습의 탱크가 등장한다. 친구들이 국영수 학원을 다닐 때 아들은 3D MAX를 가르치는 학원을 다녔다. 2등신의 단조로운 캐릭터를 만들던 것이 어느새 함께 구경했던 것과 유사한 탱크를 재현해내는 것으로 진화해 있었다. “오! 완전 실제같다. 다음엔 뭘 만들 생각이야?”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비행기를 만들지 군함을 만들지 고민 중이야.” 아들은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꾼다.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탐하고 체험하다가 그것과 관련한 미래를 만들어 간다. 나는 그 과정들을 조금은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하는 나날들이 좋았다. 네가 좋으니 좋았고 함께 해서 좋았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렇게 묻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뭔지를 찾고 직접 체험해보며, 자신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여 미래의 꿈까지 설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길을 가는 것도 힘들지만, 자녀가 원하는 것을 알고 가는 길을 바라봐주며 등을 밀어 주는 부모가 되는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다는 건 어느날 운명처럼 오기도 하지만 좀처럼 찾아지지 않을 때도 있다. 아버지의 그림물감에 본능적으로 손이 가던 내가 자연스럽게 미대를 가고 디자이너가 된 것처럼 미래의 꿈과 연관된 것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은 달랐다. 원하는 것을 찾기만 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시간은 계속 지연되었다.


조바심의 틈 사이로 세상의 룰이 비집고 들어왔다. 열심히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를 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채워야 한다. 원하는 것을 찾는 것에만 시간을 허비하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기준마저 채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 버리면 진짜로 답이 없어질 수 있다.


어정쩡한 후원자, 어쩌면 원하는 걸 찾는 시간을 준다는 핑계로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게으르고 안일한 부모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주변을 둘러 볼 때마다 지금이라도 아이를 푸쉬해야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왔다. 한편, 나는 아이를 믿어주지 않는 의심이 많은 부모인가? 남들이 가는 길을 답습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그렇게 하면 아들의 삶이 괜찮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게 최선인가? 다른 길은 없는가? 혼란스러웠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영어와 수학학원만 보냈다. 영어는 좋아하지는 않아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수학은 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어서 버티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수학을 포기했었어
싫어하는 걸 할 시간에 더 흥미있는 걸
더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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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방법이 있었어?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영어와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면 그 시간에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생각을 하는 동안 내 시선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 향했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모든 게임을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월드 오브 워쉽’ 그러고 보니 본 것 또 보는 영화는 늘 ‘베틀쉽’이었다. 프라모델도 한종류였다. 이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보이고 있었지만 흘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과 미래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짜여진 출퇴근길을 오가는 사람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뭔지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버티는 사람들 안에 내 아이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비교적 쉽게 찾고 별 어려움 없이 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그러리라고 막연하게 기대를 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대상을 함께 바라봐주고 아이의 손에 화구를 쥐어주며 밖으로 데려 나갔던 나의 부모님, 나는 그런 부모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을테냐?


뭔데 그렇게 재밌어? 같이 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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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에 썼던 군함, 볼래?


친구같은 부모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몰랐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십년 이상 된 사람들이고 새로 친구를 만들 일도 딱히 없어서 경험도 다 낡아버렸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면 친해진다.” 내가 ‘친구같던 부모’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엄마와 아빠, 두 분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니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보였다. 부모가 진로상담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쪽이 전문도 아니고.


아이가 좋아하는 전쟁사는 2차 대전 이후부터 우주전쟁까지가 범위였다.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는 유럽이나 미주지역이었고 오랜 유적이 많은 곳을 선호했다. 노트르담 성당이 불길에 휩싸일 때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러댔다.


밀덕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사회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옮아갔다. 요즘 국방 TV에서는 ‘바람은 불어도’라는 옛날 드라마를 한다. 아들은 그걸 다큐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들을 알 수 있다면서. “저때는 왜 저랬어?”하면 그때의 보편적이던 사고방식을 알려 준다. “엄마도 그랬어?” 화제는 그렇게 이어진다. 좋아! 자연스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