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자, 사랑 앞으로

금지할 수 없는 사랑은 오고

by 얄리
라면 먹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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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요즘이야 이 말이 ‘그린라이트’와도 같을 수 있는 말이 되었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라면을 먹자는 말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해 1시간 반을 지하철 안에서 시달리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뱃가죽은 이미 등에 달라붙어 허리조차 펴고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리는 당연스럽게 저녁을 함께 먹고 헤어지는 날이 많았다. 자주 가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1500원이면 라면 한 그릇과 커피믹스로 만든 따뜻한 차가 함께 나왔다. 대게 손님은 우리 두 사람과 파리새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갓 사회인이 된 우리에게 이 정도면 배도 채우고 수다도 떨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장소였다.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 자신과 자신의 주변이야기 등 수다를 떨다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곤 했다.


네트워크 회사에 기생하는 온라인 사이트 구축 대행사. 대표와 프리랜서 PM을 제외하면 정직원이라고는 디자이너 한명과 프로그래머 한명, 바로 나와 그 두 사람이 전부였다. 믿고 기댈 윗사람도 없고 쌓인 경력도 없는데다가 서로가 분야도 달라서 우왕좌왕하며 일을 해야했다. 그래도 IMF를 막 지나려던 때라 교통비와 식비라도 벌 수 있는 돈이 주어지고 내밀 수 있는 명함이라도 생겼다는 것은 과분한 것이었다. 비록 과천과 고양시 그리고 인천 등 원거리의 공공기관으로 옮겨 다니며 팔려가듯이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지만 사이트가 런칭되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야근이 많기도 했고 런칭이 임박해지면 프로젝트 룸에서 철야를 해야하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멘탈이 바닥을 칠 때가 많았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스마트하게 업무를 처리한다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칫솔을 입에 물고 신발을 질질 끌며 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현실 남매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 두 사람 사귀게 되는 거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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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라운드 사운드로) 푸하하하!


웃기는 소리였다. 대한민국 하늘 아래 여권없이 외국인이 체류하면 불법, 그 사람과 내가 결혼을 하면 그것도 불법이었다. ‘동성동본금혼제도’라는 게 있었고, 달랑 두명 뿐인 직원인 우리는 딱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애초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다 남자사람인 동료는 연애라고는 글로도 익히지 않은 순수한 연애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소개팅이라도 있는 날이면 자신의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옷차림은 기본이었고, 실컷 만난 여성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늦게까지 이야기까지 해놓고 애프터 신청은 고사하고 연락처도 받아오지 않은 채 며칠을 실실 쪼게기만 하면서 일을 하곤 했다. “일을 아주 열심히 해야겠어요. 돈이라도 있어야 누가 데려가지 이 상태면 가망없어요.”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7년간 연애를 해 본 가락이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다. 연애 해봤댔죠? 나 좀 도와줄래요?
연애하는 방법 좀 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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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맨 입으로요?


내가 직접 주선을 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을 읽어 깨우치는 것보다는 동영상을 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살아있는 동영상이지 않은가? 여기 바로 나. 거기다 질의답변에 있어서도 인터랙티브하다. 집안사람 하나 구제한다 치기로 했다. 여자가 알려주는 여자의 본심, 이를 테면 갑자기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면 점검해 볼 포인트, 느닷없이 공격적으로 나올 때 여자가 정말 듣고 싶어하는 말, 여자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취할 태도, 다른 여자에게 어떨결에 눈길을 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 갑자기 남자를 등지고 가버릴 때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행동 등 내 경험에 비추어 재현극처럼 상세히 풀어서 알려 주었다.


코칭이 빈번해 질수록 늦게 귀가하는 일은 잦아졌고 여자 혼자 밤길을 가는게 걱정스러워 데려다 주는 일도 늘었다. 가난으로 초라한 우리집지만 남매나 다름없는 그라서 게으치 않을 수 있었다. 그의 연애 이야기만 나눈 건 아니었다. 내 경험담 속에는 이전에 연애할 때 내가 숨겼던 내 본 모습에 대한 것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서로의 연대가 돈독해지면서 회사에서도 은근히 챙겨주거나 서로를 보호해주는 일도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와 첫 데이트 할 기회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아직 사귀자고 고백은 못했는데 자연스럽게 합석하면서 여자분의 마음을 좀 읽어달라고 했다. 인사동의 근사한 전통찻집에서 만났다. 1500원짜리 라면과 인스턴트 커피를 먹던 그가 맘 먹고 큰 돈을 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예정대로 자리를 비웠다.


저는 오빠랑 대학동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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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말씀 많이 들었어요.


다 안다. 그래. 이제 당신의 마음을 들켜줄 차례다. 은근히 돌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훔쳐 보려 애썼다. 순수한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돌아와 자리는 마무리가 되었고 그녀는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면서 그와 나를 두고 먼저 자리를 떴다. 다음 스탭을 어떻게 나가야 할지 회의가 이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이다.


한동안 그녀와 그의 연애는 둘만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내게 그녀와의 얘기는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예습을 시켜준 것 뿐 실전은 두 사람의 몫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니까. 대신에 회사에서 일어난 일, 각자의 이야기 등 다른 얘기들만 오갔다. 여전히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 집에 데려다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퇴근이 늦으니 그 시간에 여자친구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아 주말에 주로 만나겠거니 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십개의 계단이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달동네 같은 곳이라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거의 다 와가고 있을 무렵, 그는 문득 나를 잡아 세웠다.


이런 거 부탁해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안아보는 것도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그는 쭈삣거리며 다가와 어색하게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뿌리치는 게 맞았다. 머리는 분명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흔들지 말아요. 나


그는 더욱 꼭 끌어 안았다. 남자의 힘을 여자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안겨 있었을 뿐이다. 이러면 우리 둘다 불법이예요. 알만한 사람이 왜......




내가 입사 선배였다. 그는 나보다 일주일 늦게 입사했으니까. 디자인 팀장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동료라니. 그때부터였다. 그의 마음이 기울어 버린 건. 굳이 라면을 먹자고 한 건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 핑계로 오래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철야를 하면서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멘탈이 나가면 사람의 밑바닥을 보게 되기도 한다. 서로의 밑바닥에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배려라는 것이 남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흔한 연인관계가 아니었기에 숨길 것도 없었고, 가면을 쓸 일도 없었다. 괜찮은 친구로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연인이 아니어도.


그가 마음에 두었다는 여자의 자기 소개는 정말 팩트였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 위해 내가 낀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읽기 위해 그녀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순수한건지 눈치가 없는건지 알 수가 없었을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그녀는 눈치껏 그와 나를 남기고 빠져 주었다. 그녀에게 굳이 나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던 건 자연스럽게 첫 데이트를 해 보고 싶었던 그가 생각해낸 묘안이었다. 1500원에 라면과 차를 마시던 우리가 갑작스럽게 비싼 전통찻집에서 마주하고 있게 되는 건 누가봐도 이상했다. 혹시라도 마음을 들켜 버리면 내가 밀어낼까봐, 그러면 동료로도 더 이상 볼 수 없을까봐 걱정한거다.


안아보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이미 깔려있는 금지된 사랑, 그걸 뛰어 넘을 수 있을지, 그는 코치를 받는다는 핑계로 물어보던 것을 멈추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꼭 넘어야만 할지. 아닐지. 한번만 안아보기라도 하면 넘을 수 없다고 거절을 당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흔들리는 마음, 그건 함께 뛰어 넘어 볼 수도 있겠다는 싸인 같았다. 그에게는. 더 꼭 안고 놓치 않으면 된다. 두 사람만. 그러면 된다.




열외자 앞으로


한동안 우리 커플의 공식 주제가는 ‘김경호의 금지된 사람’이었다. 이 곡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연인이 울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많이 울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안되는게 어딧어?
다 되지!


한국에서는 1978년, 1988년, 1996년에 각각 1년 동안 특례법(혼인에관한특례법)을 시행하여 사실혼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구제하였고, 1997년 7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국회가 1998년까지 개정하라고 했는데도 시한을 넘기게 되어 효력이 상실되었다.공식적인 법률의 개정은 2005년에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