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가 나이기 위한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다.
내 삶에 있어서 글이란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일기'였다. 내 삶에 거대한 감정의 기복이 생겨날 때, 세상에 대고 떠들어댄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꾸역꾸역 그것을 삼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일종의 '배설'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내 안에 담아두고 모른 채 하기가 어려워졌을 때, 살기 위해 나의 밖으로 분출하기 위한 행위. 하지만 공유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나의 일기는 끊어졌다.
한동안 글은 '블로그'라는 그릇에 담겼다. 타인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공간으로 터를 옮기고 난 후 오직 공유를 전제로 한 글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2천여 개나 모인 글들을 훑어보았을 때, 그곳은 '글이 있는 공간'이었던 것은 맞지만 '자신의 글이 있는 공간'이라고 불리기에는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는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다고 봐야 했다. 다른 것이란, 내 안에 부지불식간에 들어앉아 있는 타인들이었다. 나의 일기가 끊어졌던 것은 내 안에 주인이어야 했을 나의 부재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려는 건 아니잖아?
'나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 뒤에는 '작가'라는 말이 붙었다. 뭔가를 하려면 의례히 붙은 타이틀처럼. 그리고 당연스럽게 '00가 되다'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뜬구름 잡는 고민이 밀려들었다. 써본 적 없는 소설의 플롯을 짜다 거대한 건축물에 압사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담담하게 운율을 읊을 시를 끄적이다 공허로운 무력감에 휘발되는 느낌이 들었다. 막막했다.
'나의 글이라는 건 꼭 그런 것이어야 하는 걸까?' 생각보다 나는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없는 평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평범함으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당황했다. 삶이 곧 현실이 되었던 시간 속에서 줄 곧 '00가 되다'라는 것에 얽매였던 것이 싫었던 내가, 또다시 그 틀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뭔가가 되고 싶지 않다면서 또다시.
쓸 수 있는 건, 자신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직 세상을 나만의 시각으로 관찰한 적 없는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겪어낸 적이 있는 나'였다. 비록 평범한 군상들 중 하나의 모습일지라도. 그 정도라면 '00가 되다' 따위를 굳이 고민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일기가 될지라도 써 보자" 쉽게 생각했다. 멈춰졌던 일기라도 쓰는 일이란, 내 안에 들어앉은 타인을 내 보내는 일이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자신의 글이란 딱 그 정도였다. '자신의 무엇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냥 '타인이 아닌 자신이 들어앉아 쓰는' 정도의 것.
지난날 멈춰졌던 일기를 열어 보았다. 혼자만의 독백이라도 했었던 날들의 기억이라도 더듬어 볼 요량으로. 그곳에서 이제 갓 성인이 된 불안정한 어른 아이와 마주쳤다. 우울하고 매우 지쳐 보였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거라 자포자기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그것들 말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 원하던 게 아닐 수도 있는 걸" 머리를 쓰담 쓰담해주었다. 여태껏 그러고 있었던 거구나. 참 오래도 그 아이를 들여다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은 가슴으로 쓰는 거래
글을 써 보기로 마음먹던 날 절친에게 망설임 끝에 털어놓았다. 그림을 그렸던 내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절친이 내게 털어놓았듯이, 글을 썼던 절친에게 '글을 써 보고 싶다'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서로가 초보이고자 하는 모습과 마주했다. 절친은 말했다. "글은 가슴으로 쓰는 거래. 이제 너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네가 되어 가는 것 같으니, 조금씩 그 감정에 머무른다고 생각하며 써 보는 것도 좋겠다." 허락을 받으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허락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기까지는 일기다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나의 글을 쓰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란, 어느 날 문득 "그래! 여기까지는 일기다"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때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타인에게 내어준 자신의 자리에 온전히 정착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아닐까? 더 이상 내 자리에 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나는, 그제야 가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모든 일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겠지. 사소함에 머무는 일이란 거대한 이념에 머무는 일보다 결코 더 쉬운 일이 아니다. 글로써 느꼈던 바는 아니지만 내 삶 속에서 '일로써' 그리고 '관계로써' 머물 때 느꼈던 것은 그랬다.
그렇게 글이란, 삶 속에서 타인에게 빌려주었던 나를 회수하는 일이었다. 내가 나이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