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기술 무효 선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착각

by 얄리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중후반까지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직군, 기업 규모, 고용형태, 자산현황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주변에서 만나는 직장인들이 털어놓는 회사 생활의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터에서 느끼는 위기감, 그것의 3단계는 대체로 이러했다.


1단계는 '달라진 자신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발현한다. 어느 날부터 일에 대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느낀다. 하루 반나절만 하면 끝났을 일이 일과시간이 다 차고 있을 때까지도 완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부터 썼던 부분을 계속 고치는 일을 반복하거나, 고쳐야 할 것은 놔두고 다른 것을 고치고 있거나,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는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가면 갈수록 장시간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에 겹다. 이렇다 보니 업무를 대할 때 자신 있게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두려워 자꾸 뒤로 물러서게 되는데, 이를 눈치챈 주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뺀질거리거나 무능하다'라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나를 생각하면 주눅이 든다.


2단계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면서 증폭된다. 해가 갈수록 고연령, 고직급, 고비용의 인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부담감을 느끼는 경영진은 처음에는 은근슬쩍 나중에는 대 놓고 자존심을 찍어내리는 말로 심리적인 위축감을 부추긴다. 업무시간 외의 업무를 부여하거나 주말에도 일을 할 것을 무언으로 강요하고 개인의 특성에 맞지 않는 일을 떠 앉기거나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이 아닌 것들을 끼워 넣는다. 그러지 않고는 내어주는 급여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부당함을 건의하려고 하면 "싫으면 다른 곳을 구하든지, 어디 갈 데는 있고?"라는 식으로 알아서 굽실대며 일하기를 종용한다. 때때로 의사결정 라인에서 고의적으로 배제하거나 조직에 당장 필요로 하지 않은 모호한 포지션에 앉혀 놓기도 한다. '견뎌보든가 아니면 말고' 강제로 해고를 시키는 것에 대한 법적 제재를 두려워하는 경영진들은 자진퇴사를 위한 군불 때기를 시작한다. 앉은 바닥이 뜨겁지 않은 척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단계는 주변을 보며 고착화된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 있는 동료와 상사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역할을 과대 포장하는 페이크를 쓰거나, '너는 짖어라 나는 안 들린다'며 모르는 척하거나,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쉽게 떨어내기 어려운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거나, 탈출할 방법을 찾고 디데이를 맞이하는 날이 올 때까지 무조건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고객사의 담당자였던, 협력사의 파트너였던, 과거의 동료였던, 가까운 친척 또는 가족이건 가릴 것 없이. 서로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음에 안도 내지는 공감하면서 못 마땅한 면이 보여도 묵고 한다. 어차피 상대도 자신도 버티는 중일뿐이다. 감옥 같은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도 대안이 없거나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 판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어책이다. '한 달만, 아니 일 년만 연장해도 그게 얼마인가?' 스스로를 타이른다.




이것이 단지 주워들은 것이기만 하면 괜찮겠지만 나와 함께 사는 동반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한 것이 문제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람이라도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지. 어쩌겠어? 연금이 나오는 날까지 최대한 자신을 내려놓고 참고 버티는 수밖에. 그런데 참 회사 가기 싫다"라는 동반자의 넋두리에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첫째, '나이가 들면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마치 순리처럼 몸 담았던 곳에서 쓸모가 없어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게 맞는 걸까? 정확히는 현재의 일터에 한정된 조건 하에서 그 쓸모를 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능력이란 없다. 현재의 직업은 나이가 드는 것에 취약한 분야인데 반해 나이가 들어야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난다면 현재의 업무 수행력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능력은 적합한 필요를 만났을 때 발의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 기준의 나의 장단점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둘째, '퇴직과 연금수령의 날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 버텨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연금은 노후를 대비하는 것이지 길고 긴 중년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비를 확보하는 것과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현재를 버티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아실현으로써의 다음 일을 찾기 위해 탐색을 하거나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단, 다음의 일이란 현재의 개념과 유사한 직장 기반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현재와 같은 업무방식과 시간 배분 그리고 수입 수준을 놓고는 탐색의 실효성이 없다. 버티는 게 답이라는 도돌이표를 찍기 딱 좋다. '다들 버티고 있다'라는 말은 틀렸다. 버티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내 앞엔 버티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셋째, '매일마다 정해진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회사에 가기가 싫다'는 말은 동의한다. 일이 많든 적든에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이 메어있는 일이란 소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동업을 시작한 이후로 전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사무실에 있다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더 오래 앉아있다고 해서 더 많은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쓰는 여러 가지의 일을 가지는 삶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장기간 집중해야 하는 일에 약하다면 단시간 치고 빠지는 일을 하는 건 어떨까? 일을 시키는 쪽이나 하는 쪽 모두에게 장기적 비용 지출과 장기적 시간 소모는 부담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거나 시간으로 돈을 사는 일이다. 로스는 어느 쪽이든 아까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이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버티는 방식의 삶이 나에게 맞지 않을 뿐이다. 나의 동의 여부가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나의 미래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그것에 합당한 설계를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게는 필요했다. 동반자와 이런 얘기를 해 보았을 때 결정적인 벽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찌감치 '일에 있어서의 다운사이징'을 해 버린 나와 그렇지 않은 동반자 간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현재를 버티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라는 건 복장 터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나오는 결과물과 같은 것을 필요로 하는 작은 기업이 요청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봐" 능력, 업무방식, 수익에 대한 다른 관점을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권해 봤다. "나는 나 나름대로 지금과는 좀 다른 두 번째 일을 생각해 볼게" 이건 나의 엉뚱한 삽질이 미래의 연장선에 있음을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고. 어차피 어떤 방향으로 가든 상관없이 버티기에 급급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버티기 한판을 삶에서 멀리하고 싶은 이유는 그것을 위해 바칠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내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버티기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 그저 열심히 산거다. 잘 살거나 즐겁게 산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렇게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음을 견뎌서 얻는 미래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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