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의 묘미

일이 덜어진 무게만큼 자유로운

by 얄리

내게 있어서 일이라는 것이 삶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그에 대한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일이었다. 단순히 경제적인 수입을 가져오는 것 이상이며 때때로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곳이거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인맥을 자연스럽게 맺게 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일에서 느끼는 권태로움은 삶의 전반은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서서히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의 약발이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전과 동일한 볼륨의 일을 한다는 것은 삶의 그릇에 넘쳐나는 내용물을 꾸역꾸역 구겨 넣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일상을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단위로까지 쪼게는 것으로도 부족해 양보하기 힘든 두 가지가 충돌하는 일들이 잦아졌고, 각각의 만족도는 반토막이 나기 일수였다. 본의 아니게 일에 있어서 전처럼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자 결과에 대한 기여의 비중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존재감도 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변화를 시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마저도 현재의 어려움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자칫 유지하고 있는 일과 삶의 어설픈 균형마저도 흔드는 일이 될까 봐 시도를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 아닌가?' 하는 자기 최면을 걸며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것조차도 견뎌내지 못하면 일이라는 궤도에서 튕겨져 나가 아내 또는 엄마로서의 역할 안으로 함몰될 것 같았다. 나라는 사람은 그 역할로서만 존재하기는 어려웠다. 공허함과 상실감을 마치 내 운명인 듯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부단한 자기 최면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워져 번아웃이 된 상태로 휴식을 취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함께 호흡을 맞춰 왔던 협력사 대표로부터 동업 제안을 받았다. "하던 일의 반만 해도 충분하다. 일이 전부가 아니라 일과 삶이라는 두 개의 바퀴를 동시에 굴릴 수 있는 그런 파트너로 함께 하자"는 말은 솔깃했다. 일과 생활 모두에서 압사당할 위기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 가지라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비해 인지도와 난이도가 떨어지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기본적인 체계마저도 부실할 수 있다는 것, 고객사나 직원과의 관계에서 전보다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 등 회사의 규모가 작은 것 때문에 오는 난관이 예상되었지만, 회사의 수많은 구성원들을 통제하기 위한 융통성 없는 운영 시스템을 따르는 것과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한 매출 압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아무리 충성을 다해도 자신이 경영을 한다는 것과 직원이 된다는 것의 괴리는 좁힐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차였다. 아마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앞으로 이런 제안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고 넘치는 경력과 나이는 이직에 있어서 결코 유리한 조건이 아닌 시점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내미는 손을 잡았다.


일에 있어서의 다운사이징,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았을 때 삶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것은 이것이었다. 근무시간 자체의 차이는 없었지만 심적인 부담에 있어서는 중압감이 반 이상 경감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것과 필요한 시기에 유연하게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심리적 중압감이 크면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스트레스가 일터에서 퇴근을 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시간 내내 머릿속을 점유하고 있게 된다. 심지어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속까지 침투하기도 한다. 그 중압감이 경감되었다는 것은 퇴근 후 머릿속에 일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전보다 2분의 1의 마음을 써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유다. 그리고 일상을 내 주관하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과 가정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고른 배분을 하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서를 바꾸거나 비중을 조절하는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실행할 자유가 생긴다. 삶에서 이러한 여력이 생겼다는 것은 업무를 대하는 태도, 타인을 대하는 마음, 세상의 흐름을 관찰하는 방식 등에 있어서 전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무의미한 선입견과 모호함을 전과 다른 경험으로 채워 넣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선택한 아래 동네는 저마다 지난 시절 자신이 몸담았던 일에 있어서 필요 이상의 몰입으로 번아웃이 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끼리 각자가 느꼈던 일에 대한 원칙을 공유하며 만든 것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내실을, 무조건적 매출 확대를 위한 구성원들의 희생이 없는, 일과 생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사적인 한계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그것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내팽개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이 일을 노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 있게 설계해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일이 생각을 방해할 정도로 일상을 압박해서는 안된다. 일에 있어서 업무적 성취가 주는 존재감의 체험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휘발된다. 그것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환경하에서 발생하는 것일수록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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